'업은 아이 삼 년 찾는' 해프닝
'업은 아이 삼 년 찾는' 해프닝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0.07.23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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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은 아이 삼 년 찾는' 실수 반복하지 않으려면
두뇌와 신체 활동 열심히 할수록 인지기능 향상
걷고 손발 움직이는 것도 집중력과 기억력 회복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 참 웃기는 말이라 여겼다. 업은 아이를 삼 년이나 찾다니. 무엇을 몸에 지니거나 가까이 두고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엉뚱한 데에 가서 오래도록 찾아 헤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절묘한 표현이다.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있으려고. 엄마가 열쇠나 지갑, 돋보기안경 등을 찾지 못해 난감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릴 때마다, 우리 4남매는 ‘또 그러시느냐’고 키득거리고는 했다. 엄마는 당황하고 민망해하면서도 “너희도 늙어봐라”는 말씀으로 핑계를 대신하셨던 것이, 3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예순의 중반에 접어든 나에게도 자주 그런 건망증이 발생하고는 한다. 더불어 또래 친구나 지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 동질감을 느끼며, 복잡해진 사회와 환경 탓으로 슬그머니 이유를 돌리고 있다.

햇볕이 쨍쨍한 날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친구와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항상 그가 기다리는 편이었기에, 그날은 내가 먼저 나가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찍 나서다보니 예정 시간보다 여유가 많아, 몇 정류장을 앞두고 미리 내려서 천천히 걷기로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발장단을 맞추었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차창에 비치는 햇살과 정면으로 눈이 부딪혔다. 선글라스 생각이 떠올랐다. 깊숙한 숄더백에 손을 넣어 안경집을 꺼냈다. 어쩐 일인지, 빈 케이스뿐이었다. 버스에서 안경을 벗어 손가락에 걸고 핸드폰을 만졌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렇다면, 일어서면서 좌석에 두고 내렸다는 말인가. 낭패였다. 평범한 선글라스가 아니라 양쪽 시력이 다른 나의 눈에 맞춘 안경인데.

버스가 떠나버린 것은 이미 서너 정류장 전의 일이었으니, 따라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음으로 그 자리에 앉은 승객이 얼마나 웃었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래, 선글라스도 2년이 지나면 자외선 차단효과가 떨어진다지. 어쩔 수 없이 다시 안경점을 찾아야 되겠다며,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손때 묻은 안경집을 가방에 밀어 넣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콧등 위에 걸쳐진 맹랑한 잠자리가 배를 쥐고 까르르르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줌마,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마구 놀려대는 것 같았다. 어이가 없었다. 업은 아이가 아니라, 마스크 위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선글라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었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한 편의 콩트 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허탈하고 부끄러워 달리지도 않은 꼬리부터 감추고 싶었다. 이런 해프닝이 반복되는 것이야말로 치매로 가는 지름길은 아닌지. 우스개로도 나의 경험담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난감해하고 있을 때, 기다리던 친구가 도착해 아무 일 없었던 듯 헛웃음을 삼키며 벤치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긴 마스크 착용으로 주변의 감각들이 무디어진 것은 분명하다. 이목구비(耳目口鼻)는 신경이나 조직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입과 코 등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으니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귀에 걸린 마스크 걸이로 불편한 무게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후각은 말할 것도 없고, 청각에도 소리가 여과장치를 거친 것 같은 거리감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저지른 실수까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마스크에게 떠넘기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낯이 뜨겁고 벌레가 기어가는 듯 스멀거리는 데에 합리화를 시켜보려는 얄팍한 마음뿐.

치매예방은 50세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강산이 변하고도 남은 시간이 지났건만, 지금부터라도 두뇌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뇌는 쓸수록 좋아지고, 신체 활동을 많이 할수록 인지기능이 향상된다는 보고가 있다. 부지런히 걷고,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 집중력과 기억력 회복에도 뚜렷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책을 읽거나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니, 다시 한 번 책장을 둘러보아야겠다.

30여 년 전, 엄마를 향한 천진난만했던 야유가 이렇게 부머랭(boomerang)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줄이야. 더 이상 '업은 아이 삼 년 찾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사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