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의 '월급봉투' ... 그 속에 한국인의 삶도 묻어있다.
그때 그 시절의 '월급봉투' ... 그 속에 한국인의 삶도 묻어있다.
  • 박영희 (안젤라) 기자
  • 승인 2020.07.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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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부터 영수증을 보관해 온 장재수씨
'안 버리니 모아졌다'~~~
서류를 정리하다보면 모든 생각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정재수씨.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고 있다.   박영희 기자
서류를 정리하다 보면 모든 생각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장재수 씨.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고 있다. 박영희 기자

장재수(79·대구 달서구 용산동)씨는 TV시청료를 비롯한 전화요금, 아파트관리비, 전기요금, 마트 영수증, 월급봉투, 각종 고지서, 그날 그날의 메모 등 수많은 종류의 영수증을 보관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구매 직후 받아든 영수증을 아무 생각 없이 찢어버리거나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다. 보통 수집가라면 돈이 되는 것을 모으는데 비해 자타 수집광이라고 부르는 이 분은 가정생활에서 나오는 영수증을 포함한 모든 고지서를 버리지 않고 모아오고 있다. 그분이 모아온 영수증엔 추억과 역사와 삶의 애환이 서려 있다.

그때 그 시절의 급여 명세서  박영희 기자
장재수 씨가 지금까지 모아온 '그때 그 시절'의 급여 명세서들. 박영희 기자

 

세월의 흔적을 볼 수있다.  박영희 기자
수많은 영수증들 속에서 장 씨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볼 수있다. 박영희 기자

장재수 씨는 1943년 경북 예천에서 13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장씨의 소년 시절은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 속에 시골에서의 전기불 이용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기술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귀담아 듣고, 청운의 꿈을 안고 대구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입학은 했었는데 학교 본관에는 미군들이 주둔해 있었고, 학생들은 야산 비탈진 산을 깎아 만든 곳에서 1학년을 보내야만 했다. 1960년~1990년대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 대부분은 졸업하자마자 은행이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아야만 입학할 수 있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이시고 목소리 또한 중장년의 신뢰감을 주고 있습니다. 혹시 무슨 비결이라도?

▶ 어릴 때 꿈은 아나운서였습니다. 모 방송국에 응시도 했었지만 사투리 때문에 그만 꿈을 접어야만 했었죠.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친구들과 만나 대구 근교의 숲길을 걷기도하고 식사도 합니다. 또한, 30여 년 전부터 순수 양조식초로 초콩을 만들어 아침으로 한 숟가락씩 먹고 있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긍정적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비결이죠.

각종 영수증과 메모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박영희 기자
1977년부터 모아온 각종 영수증과 메모지, 월급봉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박영희 기자

 

-언제부터 수집하게 되었나요?

▶ 1968년 회사에 들어가서 경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경리를 보면서 증빙서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집에 와서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모은다는 생각보다 버리지 않으니 모이게 되었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멀쩡한 것도 너무 쉽게 버리는데,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물건의 소중함을 알기에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잘 산지도 불과 1세대를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한국국한진흥원에 기탁한 고서 확인증.  박영희 기자
한국국한진흥원에 기탁한 고서 확인증. 박영희 기자

 

-주로 어떤 것을 수집하셨나요?

▶ 그날 그날 메모한 것, 전화영수증, TV시청료, 월급봉투, 종가에 관한 신문 스크랩, 고서, 아파트관리비 등 지금까지 등 내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엔 '시니어매일' 종이신문도 창간호부터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밖에도 고서 180여 권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상태고, 전화료와 TV시청료 영수증은 2019년 '대구경북 최고, 최초를 찾아라’ 기네스 공모전에 도전해서 최종 선정된 상태랍니다. 선정된 최고 최초는 책자로 발간되며, 대구경북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록 보유자에게는 인증서 및 소정의 부상이 수여된다고 합니다. 2019년 11월 말 시상식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늦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꿔 놓는군요.(웃음)

-영수증이나 메모지 등을 모으실 때 사모님과 의견충돌은 없었나요?

▶ 집사람은 내가 하는 일에 협조적입니다. 고맙죠. 내가 못하는 아기자기한 식물을 키우며 13대 종부 답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속마음은 몰라도 ㅎㅎㅎ) 요즘은 나는 나대로 바쁘고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바빠서 서로 뭘 하고 다니는지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건강하면 됩니다.

-언제 직장을 그만 두셨나요?

▶ 첫 직장으로 화성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퇴직을 할까 했는데 IMF로 부도가 나는 바람에 퇴직 아닌 퇴직을 하게 되었죠. 승승장구하던 회사도 IMF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잠시 쉬다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삶의 활력을 주기 위해 조그만 사업을 하게 되었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얼굴마비(와사증)로 일을 접게 되었어요.

'국보 제 181호 홍패'가 2013년도 달력으로 제작되어 나왔다.  박영희 기자
'국보 제 181호 홍패'가 2013년도 달력으로 제작되어 나왔다. 박영희 기자

 

-국보 제181호 장양수 홍패’가 있다고 들었는데?

▶ ‘국보 제181호 홍패’는 고려 희종 원년(1205년)에 진사시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내린 교지입니다. 크기는 가로 93.5cm, 세로 45.2cm로 황색 마지 두루마리에 쓰여 있습니다. 아깝게도 앞부분이 없어져 완전한 내용은 파악할 수 없지만, 고시에 관여했던 사람의 관직과 성이 기록되어 있어요. 1975년 10월 13일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었으며, 경북 울진군 울진읍 월계서원 국보관에 보관되어 있답니다.(문서 형식은 중국 송나라 제도에서 받아들인 듯하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패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과거제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월계서원은 울진 장씨들의 관시조가 모셔진 곳입니다.

-향후 계획은?

▶ 앞으로도 계속 집에서 나오는 모든 메모나 영수증은 보관할 생각입니다. 공간만 넓다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내 스스로 건강을 잘 지켜서 사는 날까지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자영수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는 시대에 장재수 씨가 보관해온 종이 영수증은 시대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급격한 시대적 변화 속에 종이 영수증은 추억으로 사라질 추세다. 불과 한 세대도 가기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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