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00대 문인에 선정된 시인 구상의 문학세계
세계 200대 문인에 선정된 시인 구상의 문학세계
  • 제행명 기자
  • 승인 2020.07.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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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의 문학세계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구상문학관 안내 표지 구상  제행명기자
구상문학관 안내 표지의 구상. 제행명기자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문학을 할 것인가? 나의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항상 나는 자문과 회의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자기 진실의 욕구가 오늘날까지 나로 하여금 자질에 대한 실망을 되씹으면서도 시를 붙잡고 시를 쓰는 이유라 하겠다. 문학과 문학인은 결국 존재적인 측면과 문학의 효용적인 측면, 이 두 가지 속성의 분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합 속에서 존재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나와 남을 위하여 함께 있는 것이 된다(수필집 '우리의 삶, 마음의 눈을 떠야‘에서)

구상문학관  제행명기자
구상문학관. 제행명기자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구상문학관에는 구상(1919~2004)의 삶 문학사상 문학세계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 전시되어 있다. 그가 기증한 도서, 생전에 사용하였던 용품들을 볼 수 있다. 구상의 본명은 구상준이다.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베네딕도 수도원 교육사업)를 따라 원산 근교인 덕원에서 자랐다.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원산여자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이후 함흥 '북성매일신문' 기자가 된다. 그는 북한 원산문학가동맹에서 펴낸 첫 시집 '응향'에 '길' '여명도' '밤' 등을 발표 북한 문단에 나온다. 그 장정은 이중섭이 맡았으며 표지그림은 그의 '군동상'이었다.

하지만 북한 신문과 방송은 응향을 규탄하는 결정서를 발표했다. 동시에 이 시집이 예술지상주의일 뿐 아니라 출신 성분이나 행동이 반동적 회의적 공상적 퇴폐성을 띠고 있다고 7가지죄목으로 몰아 붙였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구상은 위기를 넘기고 표현의 자유가 없는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1947년 가족 친구를 남겨둔 채 홀로 남으로 넘어온다.

그리ㅅ스도 폴의 강 시비 제행명기자
그리스도 폴의 강 시비. 제행명기자

 

월남 후 그는 최태웅이 편집하던 '해동공론'에 '북조선 여담'이라는 제목으로 사건의 경위를 발표하였다.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일하면서 문학지 '백민'에 '발길에 채운 돌멩이와 어리석은 사나이와' 라는 시를 발표하며 서울문단에 입참한다. 1948년 '유언' 1949년 '사랑을 지키리' 1950년 '문예'지에 '구상무상' 등을 내놓으며 남한 문단에 기반을 굳힌다.

1950년 6.25가 터지자 구상은 많은 일화를 일으킨다. 대전 대구 부산 등지에서 임시로 발족한 문충구국대의 선봉에 선다. 육군 정보국 제2과에서 북한특보의 책임을 지고 '봉화'(일종의 북으로 보내는 지하신문) 제작을 맡았다. 그는 전란의 충격 때문에 시련에 처한 서정주를 비롯한 동료문인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 9.18 수복 1주일 전에 아직 인민군이 포진하고 있던 서울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지프를 타고 임시 전선신문인 승리일보를 거리에 뿌리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압록강 혜산진까지 올라간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4후퇴 피난길행렬이 생긴다. 국민동원령이 내릴 즈음 구상은 승리일보 기자증을 발급해 동료 문인을 피신시키고 정작 본인은 마지막 순간에 서울을 벗어난다. 북한에서 피난 행렬에 섞여 내려온 김이석과 양영문 그리고 작곡가 김동진 등이 그가 준 기자 신분증으로 살아남았다.

구상은 피난지 대구 부산에서 누구보다도 종군기자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아울러 그는 피난지에서 첫 시집 '구상시집'을 펴낸다. 자리를 옮겨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부장으로 있을 때 그는 '고현잡화' '첨언부언' '성외춘추' 같은 칼럼을 통해 신랄하게 자유당 정권을 비판한다. 이 무렵 고향 친구 이중섭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환도 후 부산이나 대구에 있던 문인들은 거의 서울로 돌아간다. 그러나 구상은 대구에 남아 글을 쓰고 효성여대 청구대학 등에서 강의를 맡는다. 1953년 사회평론집 '민주고발' 펴낸다, 1955년 천주교가 경영을 맡게 된 대구 매일신문의 상임 고문을 맡았다. 당시 최석채 주필이 쓴 사설이 문제가 되어 대낮에 깡패들이 신문사를 습격 인쇄기를 비롯하여 기물을 부순 사건이 일어났다. 구상은 경향을 오르내리며 국회증언과 사태수습에 노력하였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민주 창망'이라는 칼럼에 잘 나타나 있다.

구상의 정신 제행명 기자
구상의 정신. 제행명 기자

1956년 청구출판사에서 두 번째 시집 '초토의 시' 를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초토의 시'로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은 뒤 대학을 오가며 왕성한 집필활동에 나선다.

1962년 경향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논설위원 겸 도쿄지국장을 역임한다. 1965년 희곡 '수치' 시나리오 '갈매기 소묘' '단군'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1967년 ‘밭 일기’ 100편을 발표한다.

1970년 미국 하와이대학 교환 교수로 초빙된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월간문학에 '요한에게' 등을 발표한다. 하와이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열정은 수그러질 줄 모른다.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는다. 1980년대 시집 수필 시론집 등이 10여 권 발행된다.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4년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적인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구상은 10여 권이 넘는 시집과 40여 권 저서가 있다. 1996년 중앙대학교 교수직을 물러난 후에도 대학원 강의 문학 강연 등 지치지 않는 문학열을 보여준다. 1986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집 '타버린 땅'이 프랑스어로 출판된 이후 구상의 작품은 영어 독어 일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 번역 되어 세계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으며 문학을 사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상의 작품 연보  제행명기자
구상의 작품 연보. 제행명기자

 

구상의 작품세계는 기독교적인 존재론을 기반으로 미의식을 추구하는 한편 기독교적 구원의식을 바탕으로 전통사상과 선 불교적 명상 및 노장사상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정신세계를 수용해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적 경향이 짓다. 또 시적 기교와 이미지에 주력하기보다. 풍부한 의미와 암시를 자아내는 평범한 시어를 택해 존재와 형상에 대한 의식을 형이상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한다. 구상이 왜관에 정착지를 택한 것은 북한 덕원에 있던 베네딕도 수도원이 왜관에 새로운 본당을 세우므로 이곳에서 20여년 ‘강’ 연작시 100편을 발표할 정도로 구상시의 원천이었고 관수재( 파성 설창수 글씨 목각)는 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고 다듬는 관수수심(觀水洗心)으로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문학관을 세우게 된 것이다. (구상문학관, 두산백과, 초토의시 인터넷 참고)

구사의 반려인생
구상의 반려인생. 제행명 기자
구상이 기증한 27000여권의 도서 제행명기자
구상이 기증한 2만7천여 권의 도서. 제행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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