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의 '밥 푸는 할아버지'
박남규의 '밥 푸는 할아버지'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7.22 10:00
  • 댓글 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울림봉사센터, 밥 푸는 모습
대구시 달서구 어울림봉사센터, 박남규 님의 배식 모습

 

박남규의 ‘밥 푸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지만 머리는 희끗하고 목도 어깨도 자라목처럼 굽었다. 그래도 어울림봉사센터에선 밥 푸는 할아버지다. 밥 푸는 일이 내 담당이 된 건 3년이 넘은 것 같다.

2015년 7월 30일,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 내과에서 청천벽력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약은 없습니다. 원인 치료를 하려면 골수이식이 방법이나, 나이가 많아 생명을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병명을 적은 메모지를 받고서는 사지에 힘이 쭉 빠졌다. 3일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좋은 음식을 찾아먹고 하루 1시간 학산을 걷기로 했다. 남은 귀중한 시간은 봉사를 하며 이웃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정했다.

달서구 자원봉사센터에 전화를 해보았다. 우리 집 가까운 곳에 무료급식 센터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곳에 전화를 하였더니 어울림봉사센터 대표라는 분이 내일 한번 나오라고 그랬다.

백혈병 진단받고 5일째 되는 날 8월 5일, 나의 봉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의사가 언제 급성으로 진행될지 모르니 응급상황이 생기면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오라며 항암 치료를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거부하였다. 힘이 점점 없어지고 숨이 차기 시작했지만 봉사일은 해나갈 수 있었다. 수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 급식봉사를 위해 나갔다. 처음엔 식당 바닥을 쓸고 밀대로 걸레질을 했다. 봉사자의 손이 모자랄 때는 설거지도 하고 잔밥을 버리고 여러 일들을 하게 되었다. 힘이 조금 모자랄 뿐 마지막 길에 이렇게 봉사하며 장애인과 독거노인들께 식사를 마음껏 드리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해졌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 날이 조금은 불안했으나 행복했던 시간이다. 꺼져가는 마지막 불을 이곳에서 태워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힘든 시간이었으나 행복했다. 약 150명의 어르신과 휠체어 타고 오시는 분들을 만나는 시간은 행복이었다.

그해 12월, 동지를 앞두고 새알을 비벼 팥죽을 끓여 드리던 날이 기억난다. 얼굴이 핼쑥한 머리 하얀 할머니가 팥죽을 드시고 고맙다며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야윈 할머니 손을 잡으며 “할머니 팥죽 맛있게 잡수셨나요?” 했더니 “그래 팥죽은 맛있는데 가슴이 와이래 먹먹 하노.” 그러신다. 나는 애써 인사를 나누고는 저 할머니를 내년에 볼 수 있을까, 내 가슴은 더 먹먹했었다. 시간이 아깝고 곧 그날이 닥쳐올까 봐 나는 제안을 했다. “대표님, 다음 주부터 장보러 가는데도 봉사할까요?” 그 후 장보러 갈 때도 도와드렸다. 그리고 배식 때는 밥 푸는 일을 맡았다. 밥 푸는 자리매김이 되어 갈 무렵 응급실로 실려 갔다. 1년은 잘 버티었는데, 소식 없이 어울림봉사센터 급식소를 떠났다. 서울대병원까지 가지 못하고 대구가톨릭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6개월 길면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행운의 의사를 만나 골수이식을 서둘렀고 한 달 만에 기증자를 만났다. 하늘의 도움으로 기적의 골수이식을 했다. 2017년 6월 20일 무균실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만 64세의 나이로 골수이식을 받는 행운을 얻었다.

그 후 6개월여 치료 후 봉사센터를 다시 찾았다. 건강이 회복되어 50명 분 밥솥을 번쩍 들어 밥을 푼다.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반가웠다. 하늘나라 문턱에서 되돌아온 것은 어울림 무료급식 센터에서 좀 더 밥을 푸고 봉사하고 오라는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장애를 입은 고향친구도 만났고 친구의 아버님도 만났다. 젊을 때 직장에서 일했던 사장님도 만났고 이웃에 살던 형님도 만났다. 내 인생 최고의 자랑스러운 자리에서 따뜻하게 손잡을 수 있는 곳, 밥 푸는 자리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한창 밥을 푸다 들리는 소리 “곱빼기 세 그릇”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끼로 하루를 견디시는 그분들을 보노라면 힘자라는 날까지 어울림자원봉사센터에서 밥을 푸며 함께 하기를 다짐한다. 나눔이 나에게 행복의 옹달샘이 되었다.

골수이식 후 시를 쓰고 낭송을 배워 요즘은 화원 교도소에, 경로잔치에, 시낭송으로 봉사를 한다. 나를 위해 골수를 기증하신 분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밥을 푼다. 새 생명을 아주 귀한 곳에 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9년 대구 자원봉사활동 체험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당선작

 

다음 생의 입구까지 다녀온 것 같은 수기다. 무릇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날벼락처럼 닥친 불행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초연함이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아픔을 마주하는 자세가 지혜롭다할까. 저마다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남은 시간 봉사하며 살겠다는 작가의 긍정적 마인드가 희망의 서광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처럼 운도 결국 본인이 만드는 법. 유연한 의지가 기적을 일으킨 것이겠다.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 처하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대처 방법이 달라지고 더불어 결과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서운 병마를 이겨내고 봉사 활동을 이어가는 지금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고마우랴. 밥과 삶은 동의어다. 그래서 ‘밥 푸는 할아버지’가 더욱 감사히 읽힌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