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된 우표수집, 그 '고물'들과의 만남
40년 된 우표수집, 그 '고물'들과의 만남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7.27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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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들에 비해서 한수 아래란 생각이 깔려있었다.
찬찬히 뒤져보면 의외로 옥석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멀쩡한 것을 반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카터 미국대통령 방한기념 우표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방한기념 우표. 이원선 기자

고물(古物)은 옛 물건 또는 헐거나 낡은 물건을 일컫는 단어로 쓸모없이 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편승하여 고물상에 근무하는 사람들 또한 고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40년도 훨씬 지난 과거의 어느 한때 고물상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며 근무했다. 따지고 보면 고물상에 근무할 따름이지 고물 취급을 받을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늘 뭇사람들에 비해서 '한 수 아래'란 생각이 깔려 있었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이라 하지만 오늘날 고물은 똥값이라 천대다. 하지만 그 천대받는 고물 수집이 한때는 시시한 직장생활 못지않은 수입원이었다. 당시 고물 수집을 하던 어르신들은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고, 시집 장가를 보냈다고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새벽녘 담당구역을 한 차례 훑어오면 일당으로는 꽤나 쏠쏠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어르신은 본인의 담당구역을 권리금(프리미엄)을 받고 넘기기까지 했다.

고물이라고 해서 다 못 쓰는 물건은 아니다. 오래된 차의 망가진 부속품을 폐차장에서 구하듯 고물상을 두루 섭렵하면 의외로 쓸 만한 물건들이 많다. 멀쩡하게 생긴 칼이 들어오고, 구두가 들어오고, 사기로 된 접시가 무더기로 들어온다. 찌그러진 냄비는 냄비 나름으로 쓰임새가 있고, 박스는 이삿짐 싸는 데 보탬이 된다고 종종 사러 오기도 했다.

귀중한 책자들이 간간히 흘러 들어오고 듣도 보도 못한 골동품들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횡재를 한 기분에 간단한 막걸리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고물상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막걸리 파티가 끝난 다음날 주인이 찾아와서 순전히 실수라고 찾아 갈 때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남북 정상회담 기념우표. 이원선 기자
남북 정상회담 기념우표. 이원선 기자

고물도 원래부터 고물은 아니다. 80여 세 어르신의 무릎에서 ‘뚜~ 둑’하는 소리가 나고, “80여 년을 쓰고 보니 이제 고물이 다 됐다”는 한탄처럼 아주 못쓰게 된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고물 취급 받는 것도 있다. 옷이나 책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옷은 가격표가 떡하니 붙어 있는데도 고물 취급을 받는다. 책도 이와 같아서 먼지만 진득하게 묻었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듯 멀쩡한 것들이 고물상으로 들어온다. 이런 까닭에 고물상을 찬찬히 뒤져보면 의외로 '보물'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종이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일어 뚜껑을 열고 안을 살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누런색 편지봉투가 묶음 묶음으로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순간 다른 이의 비밀을 훔쳐보는가 싶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용이 무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지만 차마 펼쳐 볼 수가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주소만 보더라도 거의가 한문이었다. 중요한 행정서신이나 한학에 조예가 깊은 어르신들이 주고받은 서신 같았다. 단지 붓으로 쓴 것이 아닌 것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음을 느꼈을 뿐이다.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단은 사무실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비록 고물로 취급받아 들어왔지만 상자의 형태로 보아 고인의 유족이 유품을 정리하다 잘못 내다버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전례에 비추어보면 주인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일종의 배려라기보다 귀중품을 지키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냥 그대로 다른 짐들과 함께 둔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제지공장으로 가는 차에 실려 또 다른 생명을 얻을 경우 모든 것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이 찾고자 왔을 때 마당 가득 쌓인 고물을 헤치는 수고로움을 덜려는 마음도 없잖아 작용한 때문이었다.

육영수여사 기념우표. 이원선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추모우표. 이원선 기자

일주일이 지나고 2주 째로 접어들었지만 나타나리라 여겼던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주인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은 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귀중품이고 옥석이 들었다고 해도 주인이 찾지 않는다면 고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구석자리에서 얌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상자를 끄집어내어 찬찬히 살폈다. 한사람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품어 마지막을 조용히 준비하는 모습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했다. 여전히 편지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설령 관심을 있다고 해도 한문과 한글이 뒤섞인 문장을 풀이하기에는 지식이 한참이나 못 미쳤다. 그래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워 망설이는 중에 우표에 눈길이 갔다.

작은 종이에 불과한 우표의 능력은 대단하다. 봉투에 붙는 순간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물을 건너고 산을 넘는다. 때로는 배를 타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가기도 한다. 그런 끝에 기어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슬픔을 담고 죽음을 품었을지라도 찰거머리처럼 악착같다. 누군가에게는 눈물바다를 만들만큼 가혹한 사연을, 또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품어 감격을 느낄 만큼의 꿈의 사연을 전한다. 왠지 모르게 우표의 숭고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도 했다. 그런 우표의 마지막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침을 발라서 떼려고 했다. 쉽지가 않았다. 어떤 것은 단번에 떨어졌지만 또 어떤 것은 얼마나 단단히 붙었는지 어림도 없었다. 흡사 등나무와 칡이 얽힌 듯 싶었다. 칼이 동원되는 등 얼마나 끙끙 거렸을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애처롭게 쳐다보더니 “물에 담가 보세요!”한다.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이에게 한 줄기 광명처럼 빛난다. 즉시 세숫대야를 가져오고 물을 담은 뒤 빈 편지봉투를 담갔다. 그리고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봉투와 분리된 우표가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그동안 찢어질까 마음을 졸인 것에 비하면 말 그대로 거저 먹기였다.

우표자체가 한폭의 수묵화다. 이원선 기자
우표 자체가 한폭의 수묵화다. 이원선 기자

이후 고물이 들어오면 편지봉투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밤을 새워서 우표를 사는 수고로움에 비하면 좀 험해서 그렇지 비용이나 시간 면에 아주 그만이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은 통째로 버린 우표책자 한 권을 발견했다. 꽤 많은 양의 우표를 보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표만 따로 모을 게 아니라 우표가 붙은 봉투째로 수집했어야 했다. 우표만 수집한다는 것은 문서를 수집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우표가 붙은 봉투를 수집했다면 기록을 수집하는 것으로 시대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우표를 대할 때면 부끄럼이 앞선다. 봉투에 붙은 우표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쇠붙이로 된 소인을 탕탕 내려친 전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년월일'을 알 수가 없다. 멀쩡한 것을 반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표는 편지를 배달하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우표에는 그 당시의 크고 작은 역사와 산하가 지닌 아름다움, 시대의 흐름을 담고 있다. 대통령의 순방, 체육대회의 개최, 인류의 달 착륙, 명산의 아름다움, 도로의 개통, 유명 다리의 재조명, 한국의 새들, 한국의 꽃들, 아름다운 산하, 한국의 건축물, 한국의 서원 등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우표가 가지는 값어치를 연대별로 찬찬히 살펴보면 시대별로 화폐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해방 기념엽서. 이원선 기자
조선해방 기념엽서, 5전이란 화폐단위가 인상적이다. 이원선 기자

요즘은 우표 모으기 취미가 많이 사라졌다. 그만큼 매력이 없어진 까닭이다. 우표 보기도 쉽지 않다. 편지나 소포를 붙이고자 우체국에 가면 종이우표 대신 전자우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짜리가 붙는지 영수증을 보지 않는다면 알 수가 없다. 우표 수집도 한층 쉬워져서 통신판매를 신청하면 잔고가 남아있는 한 꼬박꼬박 집으로 배달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십수 년을 우표 수집가로 활동하다 보니 현재 몇 장을 소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세월에 편승하여 불어날 뿐이다. 물론 가치도 따져보지 않았다. 그저 아마추어로 소장할 뿐이다.

후일의 어느 날 그 옛날의 편지꾸러미처럼 유품정리 중에 휩쓸려 고물상으로 직행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 한 때나마 말없는 친구로 늘 측근에서 동행해 왔으니 말이다. 아무리 귀한 우표도 언젠가는 고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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