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주현미 '추억으로 가는 당신'
[장서 산책] 주현미 '추억으로 가는 당신'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07.06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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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한국가요 50선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

‘추억으로 가는 당신’의 지은이 주현미는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국을 개업해 운영하던 중 흘러간 히트곡을 녹음한 ‘쌍쌍파티’를 내며 가수로 데뷔했다. 글을 정리한 이반석은 ‘주현미밴드’ 음악감독, ‘주현미 TV’ 프로듀서 및 베이시스트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현미가 선정한 50곡을 QR코드를 통해 들었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얽힌 사연과 노래 가사를 정리해본다.

1장 청춘은 봄 맞더이다

봄날은 간다(1953): 작사가 손로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처럼 남긴 말이 이 노래의 모티프가 되었다. “로원이 장가드는 날 나도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장롱에서 꺼내서 입을 거야. 내가 열아홉에 시집오면서 입었던 그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손로원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다가 1953년 전쟁 막바지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완성했다.(20쪽)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향기 품은 군사우편(1954): 3절로 이루어진 각각의 이야기는 전쟁에 나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세 명의 아내가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엌일 하던 아내, 방앗간에 있던 아내, 공장에서 야근하던 아내….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사랑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60쪽)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네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돌아가는 방앗간에 받은 님 소식은
충성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네
옛 추억도 돌아갔소 얼룩진 한 자 두 자
방앗간의 수레도 같이 울었소
 
밤이 늦은 공장에서 받은 님 소식은
고지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네
늦은 가을 창 너머로 떠오는 저 달 속에
그대 얼굴 비치어 방끗 웃었소

소양강 처녀(1970): 1968년 서울 을지로에 있었던 ‘한국가요 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라는 단체의 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윤기순은 무료로 레슨을 해주는 작곡가들을 고향인 소양강에 초대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민물고기를 잡는 어부였고, 고향집에서 매운탕과 토종닭을 대접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모임의 회장이었던 반야월은 바다처럼 넓은 소양강에서 시상을 떠올렸고 그때 느낀 감정을 옮겨 이 노래의 가사를 완성했다. 이 가사를 접한 이호는 직접 작곡하겠다고 자청했다. 노래는 당시 가수 지망생이었던 김태희가 선택되었다.(65쪽)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달 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처녀 뱃사공(1958):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인 윤부길이 이끄는 유랑극단 ‘부길부길쑈’는 6.25전쟁이 휴전으로 멈춘 직후 전국을 떠돌며 원맨쇼, 팬터마임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함안 지방의 공연을 마치고 지금의 가야리에서 대산면 쪽으로 이동하던 중 강을 만난 일행들은 나룻배에 몸을 싣는다. 윤부길은 나룻배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이 처녀라는 사실에 의아해 하고 분명히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 뱃사공은 갓 스물이 넘은 박말순 혹은 18세인 박정숙이라는 이름의 자매 중 한 명이고, 둘은 교대로 뱃사공 일을 했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군에 입대해 소식이 끊긴 오빠를 대신해 나그네들을 싣고 강을 건너는 뱃사공이 된 것이다. 여동생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오빠 박기준은 전쟁 중 전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윤부길은 곧바로 노랫말을 만들었고, 한복남이 곡을 붙였다. 거기에 당시 최고의 신민요 가수였던 황정자가 노래를 불러 ‘처녀 뱃사공’이 탄생했다.(74~75쪽)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앙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에 수집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내 얼굴을 만지면
공연히 내 얼굴은 붉어만 져요
열아홉 꽃과 같은 여학생들이
웃으며 서양 말로 소곤거리면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2장 목이 메일 정도로 사랑했다오

마포종점(1968): 작사가 정두수는 단골 설렁탕집에서 우연히 전해들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의 노랫말을 지었다. 가난한 연인이 방세가 싼 마포종점의 한 옥탑방에서 함께 지냈다. 남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여자는 남자를 뒷바라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자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여자는 실성해서 매일 마포종점에서 연인을 기다리다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한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94~95쪽)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 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 하나
궂은 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강남달(1929): ‘낙화유수’는 1927년 단성사 극장에서 개봉되어 인기를 끈 무성영화의 제목이다. 영화의 내용은 경상남도 진주를 배경으로 한 젊은 화가와 사랑에 빠진 기생의 사랑 이야기이다. 좋은 가문에서 자란 화가인 남자 주인공은 기방에서 기생 춘홍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면서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기생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게 된다. 영화 속 슬픈 사랑은 당시 무성영화 변사였던 김영환의 부모님이 겪은 이야기이고, 이 영화의 주제곡이 ‘강남달’이다.(130~131쪽)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멀고 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적막한 가람 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강남에 달이 지면 외로운 신세
부평의 잎사귀에 벌레가 우네
차라리 이 몸이 잠들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배신자(1969): 우리의 전통가요들이 주로 슬픔을 속으로 참아내며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인 것에 반해 ‘배신자’는 제목 그대로 떠나간 사람에 대한 원망을 가득 담아 배신자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그 당시에는 다소 파격적인 가사였다. 제목부터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탓에 수많은 이별 노래 중에서도 이 노래가 술자리 애창곡이 된 것 같다. 배신자는 배호의 노래가 아니라 도성의 노래이다.(139쪽)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행복을 짓밟아놓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3장 어머니의 품을 닮은 노래

엽전 열닷 냥(1955): 한 남자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대장군 장승을 돌아보며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난다. 당나귀에 몸을 실은 낭군을 떠나보내는 여인 향자는 노잣돈으로 엽전 열닷 냥을 건네준다. 현재의 화폐 가치로는 150~300만원 정도이다. 1절의 ‘알성급제’라는 말은 과거시험에서 합격한다는 뜻으로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뜻한다. 2절에 나오는 ‘금방’은 조선시대에 소식을 알리기 위해 벽이나 문에 붙이던 방 중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써서 알리는 것을 ‘금방’이라고 불렀다.(177쪽)

대장군 잘 있거라 다시 보마 고향 산천
과거 보러 한양 천 리 떠나가는 나그네에
내 낭군 알성급제 천 번 만 번 빌고 빌며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주던
아 엽전 열닷 냥
 
어젯밤 잠자리에 청룡 꿈을 꾸었더라
청노새야 흥겨워라 풍악 따라 소리쳐라
금방에 이름 걸고 금의환향 그 날에는
무엇을 향자에게 사서 가리
아 엽전 열닷 냥

번지 없는 주막(1940): 1940년 여름, 이 노래의 작사가인 박영호와 태평레코드 직원들은 백두산 등정에 오른다. 궂은 날씨에 가파르고 험준한 등산길이 이어지다가 지친 몸을 쉬어 가려고 한 주막에 들렀다.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로 엉성하게 지어진 집이었지만, 주막 주인은 나그네들을 극진하게 대접한다. 도토리 술을 한잔 마시며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던 박영호는 노랫말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고 ‘번지 없는 주막’이 탄생되었다.(187~188쪽)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흐늘어진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석유등 불빛 아래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처량쿠려
새끼손을 걸어놓고 맹세도 했건만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그늘 아래 가슴 조이며
속삭이던 그 사연은 불 같은 정이었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튼 그 시절이
그립구려 그리워요 정녕 그리워

물방아 도는 내력(1954): 6.25전쟁 직후, 우리 국민들의 좌절과 슬픔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곡이다. 모두가 동경하던 서울의 삶, 상경해서 인생 역전을 꿈꾸던 사람이 많던 시절이었다. 반면에 벼슬도, 명예도, 서울도 싫다며 고향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던 사람도 많았다, 그 시대상을 반영한 이 노래는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1절 가사에 ‘기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우리는 흔히 길쌈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길쌈이라는 말은 무명, 모시 등의 직물을 짜는 것을 말하는데 낮에 밭에 나가 할 일이 아니다. ‘김을 맨다’는 말을 경상도 방언으로 ‘기심을 맨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김은 잡초를 뜻한다.(190~193쪽)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에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꾹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4장 추억으로 가는 당신

여정(2018): 이 곡은 세월이 흐른 뒤 인생을 돌이켜보며 느끼는 만감(萬感)을 여정으로 표현한 노래이다.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마치 떠가는 구름과도 같다. 우리네 인생살이에 무엇 하나 쉬웠던 적이 없었다. 저만치 사라지는 구름에 힘들었던 일들을 실어 보내는 것은 어떨까? 이 노래를 통해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보면 좋겠다.(219쪽)

아무리 예쁜 꽃도
세월 가면 지듯이
나도 언젠가 어디론가
구름 따라 흘러가겠지
머물다 가는 인생길에
아쉬움도 있겠지만
가야 할 길 나그네 길
흘러 흘러가는 길
 
들에 핀 예쁜 꽃도
언젠가는 지겠지
나도 언젠가 어디론가
구름 따라 흘러가겠지
잠시 왔다가 가는 길에
사랑도 있었지만
머나먼 길 가고 없어도
강물은 흘러가겠지

낙화유수(1942): 낙화유수(洛花流水)를 직역하면 물에 떨어지는 꽃을 가리킨다.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할 때 쓰기도 하고, 떨어진 꽃잎과 흐르는 물을 여자와 남자에 비유하여 남녀 간의 애틋한 정을 나타낼 때 쓰기도 한다. 이 고사성어는 당나라 시인 고변(高騈)이 지은 시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에서 유래했다.

落花流水認天台(낙화유수인천태) 꽃이 떨어지고 물이 흐르니 세상 넓음을 알고
半醉閑吟獨自來(반취한음독자래) 술에 반쯤 취하여 한가하게 시 읊으며 홀로 왔다네.(238쪽)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서야
세월의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러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나는 어릴 때부터 대중가요를 불렀다. 초등학생때 친구들과 모여서 ‘가련다 떠나련다’(유정천리)를 부르다가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지을 때는 저녁마다 하모니카로 유행가를 불었다. 교사가 된 뒤에는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노래 많이 부르기’로 내기한 적도 있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었다. 가사와 곡조와 박자를 모두 외워서 불러야 했다. 그래도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았다.

이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면서 그 옛날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사연을 알고 노래를 부르니 노래의 의미가 더 분명해졌다. 주현미의 노래를 들으며 과연 ‘트로트의 여왕’ 답다고 생각했다. ‘주현미 TV’처럼 수익을 떠나 한국가요를 정리하고 노래하는 가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노래방에 가본 지도 까마득하다. 노래방 반주에 맞춰 ‘희망가’를 목청껏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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