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가는 당신’의 지은이 주현미는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국을 개업해 운영하던 중 흘러간 히트곡을 녹음한 ‘쌍쌍파티’를 내며 가수로 데뷔했다. 글을 정리한 이반석은 ‘주현미밴드’ 음악감독, ‘주현미 TV’ 프로듀서 및 베이시스트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현미가 선정한 50곡을 QR코드를 통해 들었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얽힌 사연과 노래 가사를 정리해본다.
1장 청춘은 봄 맞더이다
봄날은 간다(1953): 작사가 손로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처럼 남긴 말이 이 노래의 모티프가 되었다. “로원이 장가드는 날 나도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장롱에서 꺼내서 입을 거야. 내가 열아홉에 시집오면서 입었던 그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손로원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다가 1953년 전쟁 막바지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완성했다.(20쪽)
향기 품은 군사우편(1954): 3절로 이루어진 각각의 이야기는 전쟁에 나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세 명의 아내가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엌일 하던 아내, 방앗간에 있던 아내, 공장에서 야근하던 아내….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사랑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60쪽)
소양강 처녀(1970): 1968년 서울 을지로에 있었던 ‘한국가요 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라는 단체의 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윤기순은 무료로 레슨을 해주는 작곡가들을 고향인 소양강에 초대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민물고기를 잡는 어부였고, 고향집에서 매운탕과 토종닭을 대접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모임의 회장이었던 반야월은 바다처럼 넓은 소양강에서 시상을 떠올렸고 그때 느낀 감정을 옮겨 이 노래의 가사를 완성했다. 이 가사를 접한 이호는 직접 작곡하겠다고 자청했다. 노래는 당시 가수 지망생이었던 김태희가 선택되었다.(65쪽)
처녀 뱃사공(1958):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인 윤부길이 이끄는 유랑극단 ‘부길부길쑈’는 6.25전쟁이 휴전으로 멈춘 직후 전국을 떠돌며 원맨쇼, 팬터마임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함안 지방의 공연을 마치고 지금의 가야리에서 대산면 쪽으로 이동하던 중 강을 만난 일행들은 나룻배에 몸을 싣는다. 윤부길은 나룻배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이 처녀라는 사실에 의아해 하고 분명히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 뱃사공은 갓 스물이 넘은 박말순 혹은 18세인 박정숙이라는 이름의 자매 중 한 명이고, 둘은 교대로 뱃사공 일을 했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군에 입대해 소식이 끊긴 오빠를 대신해 나그네들을 싣고 강을 건너는 뱃사공이 된 것이다. 여동생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오빠 박기준은 전쟁 중 전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윤부길은 곧바로 노랫말을 만들었고, 한복남이 곡을 붙였다. 거기에 당시 최고의 신민요 가수였던 황정자가 노래를 불러 ‘처녀 뱃사공’이 탄생했다.(74~75쪽)
2장 목이 메일 정도로 사랑했다오
마포종점(1968): 작사가 정두수는 단골 설렁탕집에서 우연히 전해들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의 노랫말을 지었다. 가난한 연인이 방세가 싼 마포종점의 한 옥탑방에서 함께 지냈다. 남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여자는 남자를 뒷바라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자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여자는 실성해서 매일 마포종점에서 연인을 기다리다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한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94~95쪽)
강남달(1929): ‘낙화유수’는 1927년 단성사 극장에서 개봉되어 인기를 끈 무성영화의 제목이다. 영화의 내용은 경상남도 진주를 배경으로 한 젊은 화가와 사랑에 빠진 기생의 사랑 이야기이다. 좋은 가문에서 자란 화가인 남자 주인공은 기방에서 기생 춘홍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면서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기생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게 된다. 영화 속 슬픈 사랑은 당시 무성영화 변사였던 김영환의 부모님이 겪은 이야기이고, 이 영화의 주제곡이 ‘강남달’이다.(130~131쪽)
배신자(1969): 우리의 전통가요들이 주로 슬픔을 속으로 참아내며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인 것에 반해 ‘배신자’는 제목 그대로 떠나간 사람에 대한 원망을 가득 담아 배신자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그 당시에는 다소 파격적인 가사였다. 제목부터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탓에 수많은 이별 노래 중에서도 이 노래가 술자리 애창곡이 된 것 같다. 배신자는 배호의 노래가 아니라 도성의 노래이다.(139쪽)
3장 어머니의 품을 닮은 노래
엽전 열닷 냥(1955): 한 남자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대장군 장승을 돌아보며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난다. 당나귀에 몸을 실은 낭군을 떠나보내는 여인 향자는 노잣돈으로 엽전 열닷 냥을 건네준다. 현재의 화폐 가치로는 150~300만원 정도이다. 1절의 ‘알성급제’라는 말은 과거시험에서 합격한다는 뜻으로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뜻한다. 2절에 나오는 ‘금방’은 조선시대에 소식을 알리기 위해 벽이나 문에 붙이던 방 중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써서 알리는 것을 ‘금방’이라고 불렀다.(177쪽)
번지 없는 주막(1940): 1940년 여름, 이 노래의 작사가인 박영호와 태평레코드 직원들은 백두산 등정에 오른다. 궂은 날씨에 가파르고 험준한 등산길이 이어지다가 지친 몸을 쉬어 가려고 한 주막에 들렀다.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로 엉성하게 지어진 집이었지만, 주막 주인은 나그네들을 극진하게 대접한다. 도토리 술을 한잔 마시며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던 박영호는 노랫말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고 ‘번지 없는 주막’이 탄생되었다.(187~188쪽)
물방아 도는 내력(1954): 6.25전쟁 직후, 우리 국민들의 좌절과 슬픔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곡이다. 모두가 동경하던 서울의 삶, 상경해서 인생 역전을 꿈꾸던 사람이 많던 시절이었다. 반면에 벼슬도, 명예도, 서울도 싫다며 고향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던 사람도 많았다, 그 시대상을 반영한 이 노래는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1절 가사에 ‘기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우리는 흔히 길쌈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길쌈이라는 말은 무명, 모시 등의 직물을 짜는 것을 말하는데 낮에 밭에 나가 할 일이 아니다. ‘김을 맨다’는 말을 경상도 방언으로 ‘기심을 맨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김은 잡초를 뜻한다.(190~193쪽)
4장 추억으로 가는 당신
여정(2018): 이 곡은 세월이 흐른 뒤 인생을 돌이켜보며 느끼는 만감(萬感)을 여정으로 표현한 노래이다.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마치 떠가는 구름과도 같다. 우리네 인생살이에 무엇 하나 쉬웠던 적이 없었다. 저만치 사라지는 구름에 힘들었던 일들을 실어 보내는 것은 어떨까? 이 노래를 통해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보면 좋겠다.(219쪽)
낙화유수(1942): 낙화유수(洛花流水)를 직역하면 물에 떨어지는 꽃을 가리킨다.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할 때 쓰기도 하고, 떨어진 꽃잎과 흐르는 물을 여자와 남자에 비유하여 남녀 간의 애틋한 정을 나타낼 때 쓰기도 한다. 이 고사성어는 당나라 시인 고변(高騈)이 지은 시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에서 유래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대중가요를 불렀다. 초등학생때 친구들과 모여서 ‘가련다 떠나련다’(유정천리)를 부르다가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지을 때는 저녁마다 하모니카로 유행가를 불었다. 교사가 된 뒤에는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노래 많이 부르기’로 내기한 적도 있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었다. 가사와 곡조와 박자를 모두 외워서 불러야 했다. 그래도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았다.
이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면서 그 옛날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사연을 알고 노래를 부르니 노래의 의미가 더 분명해졌다. 주현미의 노래를 들으며 과연 ‘트로트의 여왕’ 답다고 생각했다. ‘주현미 TV’처럼 수익을 떠나 한국가요를 정리하고 노래하는 가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노래방에 가본 지도 까마득하다. 노래방 반주에 맞춰 ‘희망가’를 목청껏 불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