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의 ‘즐거운 제사’
박지웅의 ‘즐거운 제사’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8.12 1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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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픽사베이

 

박지웅의 ‘즐거운 제사’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할머니는 삼대가 적선積善을 해야 여름 제사를 피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기제사가 음력 유월이다. 냉장고는커녕 선풍기도 없던 시절,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던 때다. 십리 바깥의 오일장에서 제수를 마련하면 어떻게 관리하고 음식 장만은 또 어떻게 하였을까? 불편과 달리 어린 날의 기억은 잔칫집처럼 흥성스러웠다. 내 전생도 착하지 못했는지 삼복 한가운데에 시아버지 기일이 있다. 지난 주말, 우리 집의 제일 큰 행사인 기제사를 모셨다. 제사를 없애거나 초저녁에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우리는 자시子時의 예법을 고수한다. 주인공 얼굴을 유일하게 아는 남편과 모르는 나와 아들딸이 침묵 속에서 조용히 진행했다. 그날은 우리 집 에어컨도 최선을 다했다. 부친의 ‘포근한 곁’을 느꼈는지 음복하는 그이 표정이 밝았다.

반어법은 문장의 뜻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이다. ‘즐거운 제사’는 시제詩題부터 흥미를 유발시킨다. 형용사 ‘즐거운’과 명사 ‘제사’의 조합이 낯설 수 있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엄숙한 자리 아닌가. 하지만 망자와 제관의 촌수에 따라 슬픔, 그리움이 희석되긴 하겠다. 시종일관 현재 시제時制로 풀어나간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저분’은 젓가락의 방언이다. 사투리가 맛을 살린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활유법이자 직유법인 묘사가 신선하다. 우린 제물을 진설할 때나 엎드려 절을 올릴 때 층간 소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시인은 '선친의 순한 이웃들'까지 챙기는 여유로움이 있다. 첫 행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수미상관을 이룬다. 이러한 작법은 완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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