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링-행복한 가정] 큰 딸의 비극
[카운슬링-행복한 가정] 큰 딸의 비극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7.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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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가족의 인생사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 나이 60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5개월 전에 황당한 일을 겪어서 마음이 편치 않고 웃음을 잃고 우울에 빠져있습니다. 의사와 면담을 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도 온 가족이 같이 받습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집이 바로 안 되겠나 싶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둘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 3학년 딸이 있습니다. 남편은 전문직 박사로 직장에서 무게있는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딸이 언제가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입원 치료를 하고 해외여행도 보냈지만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봅니다. 이렇다 할 계기도 없었는데 아침 일찍 창문 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였는데 뭔가 전율이 짝 와서 뒤돌아보니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차 싶었는데 아이가 투신한 후였습니다. 11층에서 떨어진 아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나도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딸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 태어나서 8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1남4녀로 내가 막내입니다. 큰 언니는 내가 학교도 들어가지 전에 시집을 갔고 나는 형부를 신부라고 불렀을 만큼 어렸습니다. 곧이어 둘째 언니가 시집을 갔고, 오빠도 큰언니 집에 가서 재수를 하였고 대학(건축과)을 장학생으로 나와 둘째 형부의 소개로 결혼을 했습니다. 셋째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큰언니 집에 가서 양재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잠시였고 교환원으로 취직이 되었지만 연애를 해서 바로 결혼해서 살았습니다. 셋째 언니도, 오빠도 다 언니집에서 혼사를 치렀고, 오빠는 결혼하여 안양에 살면서 딸 하나를 낳았고 그동안 건축사에 합격하였습니다. 올케와 딸을 큰언니에게 맡기고 돈을 벌러 중동으로 떠났습니다. 큰언니 집에 우리 가족 넷이 있었던 것입니다. 3년 쯤 있다가 중동에 있던 오빠가 들어와 올케와 딸은 옮겨갔고 엄마와 나는 큰언니 집에 남았다가 나는 원룸을 얻어 나가 살았습니다. 선도 여러 군데 보았지만 혼사는 잘 되지 않았고 나는 서른이 넘어(그 당시는 만혼) 혼인을 하였습니다. 물론 언니네 집에서 모든 일을 치렀습니다.

우리 친정은 시골이었고 큰언니는 도시로 시집을 가서 작은 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니의 고생도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달팠는데 그래도 도시라고 농사는 남을 주고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얹혀 살아갔습니다. 사실 나도 언니네 집에서 음악대학을 나와 언니가 적금을 깨어 차려주는 피아노 교실을 운영하였고 그 후 혼사를 치러 딸 둘을 낳고 살고 있었는데 15년 전 어머니도 큰언니집에서 돌아가셨고 5개월 전 나는 큰딸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이런 벌을 받나 싶기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가 예고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안 보내주고 서울 오빠네 집에 가서 사무실에 나가면서 건축사 일을 배웠는데 그 곳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습니다. 후회되는 일도 많습니다. 다 소용없는 일이지만 나는 나를 낳은 어머니도 원망했고 큰언니에게도 섭섭한 점을 다 이야기하면서 심지어 지옥에 가라고까지 하였으니...... 그러고 나니 또 마음이 아픕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언드립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무슨 말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니 다행입니다. 꾸준하게 도움을 받으면 곧 전처럼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한계상황이란 것을 겪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따님의 죽음 같은 것도 그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비극이 없다면 누가 살기 힘든 세상이라 하겠습니까?

많이 해 봤겠습니다만 마음을 가다듬고 가닥 가닥 마음을 정리하십시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할 수 없는 일이었어. 할 만큼 다 했잖아? 내가 잘 못한 것이 아니다 라고 자신에게 계속 타일러 주십시오. 본인이 죄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남은 식구들도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남은 가족 간의 화목을 생각하시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 혼자 같으면 딸과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내 몸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남자의 아내고 한 소녀의 어머니입니다. 그들의 아픔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더욱 굳세게 버티고 이겨내야 합니다. 자식이 죽었는데 무엇이 소중하며 귀하고 웃을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속으로 흐르는 눈물은 누가 알기나 하겠습니까?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여러 사람과 소원했던 관계도 회복해야지요? 큰언니도 나이도 있지 싶은데 동생이 겪는 아픔을 같이 겪고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옷 다 입히고 용돈 주고 대학교도 시켜주었는데 내가 언니한테 너무했다고, 모든 동생들이 모두 언니한테 기대고 살았으니 언닌들 편하게 살았겠냐고, 미안하다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한테도 도움이 됩니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서운한 점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오래 살수록 섭섭하고 또 풀리고 섭섭하고 풀리고 하는 것이지요. 보지 않아도 소규모 공장을 하면서 남편 눈치 보랴, 시댁 눈치 보랴, 더욱 노력했을 언니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온 가족이 그곳에서 혼인을 다 치렀고 어머니까지 돌아가셨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애쓴 이도 큰언니 같습니다. 우리는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안 청소를 하려면 안 입던 옷도, 안 쓰던 그릇도, 신지 않던 신발도 버리듯이 마음에 있는 공기청청기을 돌려 갖가지 떠다니는 쓸데없는 부유물들, 미움이나, 원망, 자책감, 자괴감도 한 번에 다 날려 버립시다. 그렇지 못하면 마음의 고통은 또 올 수 있으니 깨끗이 날려 버립시다. 혼자서 어려우면 교회나 성당에 도움을 청하십시오. 충분히 도와 주실 것입니다. 속이 개운하게 청소하시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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