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일상, 달라진 휴가를 받아들이자
달라진 일상, 달라진 휴가를 받아들이자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07.06 10:0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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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조여오던 일상의 시간표에서 불가능한 활동과 불필요한 계획을 지우고 넉넉해진 시간을 받아든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당분간은 오가는 일이 쉽지 않을 남미 아르헨티나쪽에서 본이과수 폭포(2019년 8월 촬영)   강지윤 기자
2019년 8월 남미 아르헨티나쪽에서 본 이과수 폭포.  강지윤 기자

해마다 여름철이 시작되기 전부터 휴가 일정을 짜고 여행지와 숙소, 교통편을 예약하고 볼거리, 즐길거리에다 그 고장의 먹거리까지 검색한다. 해외 여행이라도 계획했다면 대이동의 행렬에 합류하기 위해선 제법 비장한 각오까지 하고 출발해야 한다. 공항 카운터에서 수속을 밟아 항공권을 받고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길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가벼운 짐과 함께 온 가족이 무사히 비행기에 올라 자기 좌석을 찾아 앉고 나면 긴 한숨이 나온다. 여행 전의 그 모든 번거로움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는 마음. 그게 바로 휴가가 우리에게 선물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여름 휴가철이면 흔히 경험하던 일상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에서 움직이는 것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선뜻 발걸음하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가 던진 충격은 우리는 일상을 전혀 다르게 바꿔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름휴가도 예외는 아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하루 평균 인천공항 출입국자는 18만7천754명이었으나 올해 5월엔 4천449명으로 급감했다. 공항 이용은 98%가 줄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는 대한항공과 외국항공사 10곳이 쓰고 있는 카운터가 200곳이 넘지만 실제 문을 연 곳은 채 10곳이 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되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멀리, 함께, 긴 시간을 들여 보내는 휴가는 당분간 어려울지 모른다.

자고 일어나 휴대폰을 보면 밤새 새로운 확진자의 동선이 뜨고 지켜야 할 수칙이 따라온다. 마스크를 쓰고 3밀(밀접, 밀집, 밀폐)을 피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그러나 마음의 거리는 가깝게.... 아이들 등교는 미뤄지고, 취미활동이나 실내 운동도 여의치 않고, 영화관람이나 전시회, 박물관 관람,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도서관도 대출이나 가능하지 열람은 아예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있는 집은 온라인 수업과 학교 수업이 들쑥날쑥 엮이다 보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 등교하는 날은 발을 구르는 일이 잦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면... 했다. 하지만 상황이 종료되리라는 희망은 멀어졌다. 지구 반대편의 급속한 확진자 수 증가보도도 잇달아 날아든다. 이 상황에 적응하고 살아야겠구나 비관 속에서도 감염병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작은 움직임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든다.

하나금융연구소가 5월 21일 발간한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자전거 판매점 매출은 전년 1분기 대비 45%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세를 보였던 2월과 3월에는 각각 36%, 69%나 증가했다. 실제 자전거 이용자는 훨씬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거치대에 보관되어 있던 자전거뿐 아니라 아이들이 커서 더 이상 사용할수 없게 된 자전거를 형제나 이웃끼리 물려받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이동수단에서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여가활동을 즐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3월부터 개학이 조금씩 미뤄지며 아이들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주부들은 하루하루 지루하지 않게 보내느라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진달래꽃 뜯어다 화전 부쳐 먹기, 싸게 파는 끝물 딸기 사다 딸기라떼 만들기, ‘확찐자’ 탈출하기 위해 매일 줄넘기 1천 개 하기, 다 읽은 동화책이나 장난감 중고마켓에서 사고 팔기, 다육이나 작은 꽃화분 사다 기르기, 베란다 구석에 손바닥 정원 만들기 등등.

강지윤 기자
부산 동래구 소재 인공 암벽장에서 '동암 스포츠 크라이밍 동호회' 회원들이 연습하고 있다. 강지윤 기자

주민센터나 문화센터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강의나 활동에다 몇 가지 친목모임 일정으로 바쁘던 중년들은 일시에 모든 활동이 정지된 후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마스크와 모자, 썬글래스 등으로 '복면'을 하고 산에 오른다. 시니어들이 주를 이루던 등산 대열에 젊은 30~40대도 합류하고 아이들까지 일가족 등산도 자주 눈에 띈다.

최근 들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1천만에 육박한다는 보도처럼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야외 인공 암벽장에서 실시하는 스포츠 클라이밍(sports climbing) 교육에 청소년부터 시니어까지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육체를 단련하고 집중력을 기르며 활동을 통해 맛보는 성취감이 크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의 줄임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직장과 일이 개인적 삶보다 우선되어 왔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휴가와 해외여행은 동의어와 비슷하게 쓰이고 여름휴가는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세상의 질서를 지키라 한다.

모임이나 회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는 온라인으로 대신한다. 어려워진 경제활동으로 지갑은 가벼워지고, 각자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들락거리던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부는 집안 살림정리에 들어 가고 쓰지 않은 책이나 물건은 중고마켓에서 필요한 이를 찾아간다. 때로는 이웃과 친구끼리 물려 받고 물려 주기도 한다.

강지윤 기자
도심 빌딩 7층에 자리한 요가원 '리아슈람' 베란다의 손바닥 정원. 다육이의 모습이 앙증맞다. 강지윤 기자

사다놓은 고구마가 비닐봉투 속에서 새순을 풀어낸다. 빈 그릇에 물을 채워 책상에 올려 두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모인 화분이 햇볕과 바람을 찾아가다 보면 베란다 한 켠이 손바닥 정원이 된다. 밀린 다림질감을 찾아 다리며 잊고 있던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노라니 그동안 헛되이 집 밖으로 나돌았구나 생각된다는 친구도 있다. 책장에 꽂힌 채 노랗게 변색된 책을 다시 읽으며 책의 내용보다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의 성장을 봤다는 사람. 삼시 세끼 챙기는 아내의 노고가 눈물겹더라는 남편들의 얘기도 들린다.

앞만 보고 달리며, 오로지 더 멀리, 더 높이 날기를 원하던 열망이 한순간 어이없이 무너지고 형체없는 적에 우리 모두는 속수무책이다. 바쁘게 조여오던 일상의 시간표에서 불가능한 활동과 불필요한 계획을 지우고 넉넉해진 시간을 받아든다. 넉넉해진 시간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고 여유는 편안한 눈을 갖게 한다. 둥둥 떠다니던 마음이 가라앉고 작고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여름 휴가를 위해 설레던 마음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짧은 글귀를 들려준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