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가 사제로 첫 발을 내디딘 익산 나바위 성지
김대건 신부가 사제로 첫 발을 내디딘 익산 나바위 성지
  • 강효금
  • 승인 2020.06.28 19:2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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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양식인 한옥에 서양의 고딕 양식이 더해진 독특한 나바위 성당은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밤이 되면 회랑 위로 팔각형 창이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사진 이성호 작가
우리 전통양식인 한옥에 서양의 고딕 양식이 더해져 독특한 나바위 성당은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밤이 되면 긴 회랑 위로 팔각형 창이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이성호 작가

 

충남 논산시 강경역에서 금강을 따라 내려오면 평야가 펼쳐진다. 평야 가운데 자리잡은 야트막한 '화산'(華山). 우암 송시열이 아름답다하며 이름붙인 화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너른 바위가 있다. 나바위다.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자리잡은 나바위 성당은 ‘너른 바위’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김대건 신부님의 고귀한 순교 정신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김대건 신부님 성상  사진 이성호 작가
김대건 신부님의 고귀한 순교 정신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  이성호 작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1836년 12월 열다섯 나이에 조국을 떠나 마카오로 향했다. 병약한 몸에 사제 수업이 쉽지 않았지만,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열정과 조국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간절했다. 1845년 8월 17일 사제서품을 받은 뒤, 8월 31일 목선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도착지는 제물포였지만 풍랑을 만나 제주도 용수리 포구에 표착했다. 배의 수리를 마치고, 10월 12일 예정지인 제물포와는 떨어진 금강 하류 황산포 나바위 화산 근처에 도착했다.

 

치유의 경당 앞에 세워진 고난의 예수상. 경당에 들어가며 몸과 영혼의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사진 이성호 작가
치유의 경당 앞에 세워진 고난의 예수상. 경당에 들어가며 몸과 영혼의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이성호 작가

 

스물다섯의 김대건 신부는 이곳 나바위에 발을 내디디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거센 풍랑 속에서 그는 '하느님의 섭리'를 떠올렸으리라. 조선의 고통받는 백성과 이 땅에 세워질 하느님 나라. 자신이 받은 소명을 되새겼으리라.

 

김대건 신부님 순교 기념탑. 상해를 떠나 바닷길로 들어올 때 타고 온 라파엘호의 크기를 본떠서 세웠다. 목선의 길이 15자가 순교비의 높이가, 넓이 6척이 순교비의 둘레가 되었다.  사진 이성호 작가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상해를 떠나 바닷길로 들어올 때 타고 온 라파엘 호의 크기를 본떠서 세웠다. 목선의 길이 15자가 순교비의 높이가, 넓이 6척이 순교비의 둘레가 되었다.  이성호 작가

 

성체조배실.  우리 전통양식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진 감실이 포근함을 준다.    사진 이성호 작가
성체조배실. 우리 전통양식을 그대로 살려 만든 감실이 포근하다.  이성호 작가

 

김대건 신부가 타고 온 '라파엘 호'의 이름처럼, 대천사 '라파엘'은 병든 이를 치유해주는 천사로 알려져 있다.  나바위 성지를 걸어 나오며 성당이 주는 포근함에 젖어 몸과 마음에 생기를 얻었다. 이제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음 순례길을 향한다.

 

예수성심상. 두 팔을 벌려 지치고 힘든 우리를 안아주는 모습에 절로 고백이 흘러나온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사진 이성호 작가
성당 입구에서 만난 예수성심상. 두 팔을 벌려 지치고 힘든 우리를 안아주는 모습에 절로 고백이 흘러나온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성호 작가

 

 

이 기사 안의 사진은 이성호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성호 작가는

경북 고령 출생

현재 계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아트학과 재학 중

개인전으로

2019 가톨릭 성지, 1898갤러리, 서울

2017 정미소 프로젝트, 대심정미소복합문화공간, 예천

2016 ,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5 , 갤러리 나우, 서울

2012 청도 유등축제 초대전,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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