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우환(識字憂患), 정말 아는 것이 병일까?
식자우환(識字憂患), 정말 아는 것이 병일까?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6.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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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에 주둔할 당시 찾아가 스스로 신하가 되었다.
10배가 넘는 군사임에도 황급히 30여 리 밖으로 후퇴를 명한다.
대업의 포기는 물론 그 피해는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일을 그르쳤을 때 사람들은 아는 것이 병, 즉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말한다. 또한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부모님의 성화에 시달리다가 할 말이 없을 때 불쑥 던지는 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식자우환’이란 사자성어가 그렇게 허술하게 통용될 정도로 가벼운 말일까? 한자를 있는 그대로 풀면 ‘글자를 아는 것이 화를 불렸다’라는 뜻으로 병을 들먹거리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식자우환’이 갖는 유래와 그 참뜻은 무엇일까?

식자우환의 사자성어는 삼국지에서 유래되었다. 3세기 중엽인 후한 말경은 혼돈의 시대였다. 천서를 읽었다는 태평도인을 중심으로 장각이 난을 일으키고 이들은 누런 두건을 쓴다고 하여 황건적이라 불렀다. 이후 십상시가 난을 일으키고 이를 제압하고자 동탁이 달려와 황실을 점령한 뒤로는 힘의 대결이다. 삼국지 최고의 싸움꾼으로 여포가 등장하고 뒤를 이어 관우와 장비, 조자룡 등등 걸출한 영웅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따라서 문보다는 무가 강한 때였다. 이때만 해도 유비는 뽕나무 그늘에서 짚신이나 삼고 돗자리나 짜서 팔던 시골의 무지렁이란 허물을 온전하게 벗기 전이다.

떠돌이 생활에서 막 정착기로 접어들던 시기에 유비는 인생일대의 기재를 만난다. 그가 바로 영천군(潁川郡) 장사현 출신인 서서(徐庶)다. 자는 원직(元直), 원래 이름은 서복(徐福)으로 선복(單福)이란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젊어 한때는 검술을 익히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학문에 정진하였다. 사마휘, 제갈량, 최균(崔鈞, 최주평) 등과 교유했다. 그는 나름대로 주군을 찾다가 유비가 신양에 주둔할 당시 찾아가 스스로 신하가 되었다.

그가 특출하게 재능을 나타낸 때는 번성전투에서였다. 유비가 그의 도움으로 조조가 보낸 조인을 잇따라 격파하고 번성을 차지하자 조조는 다시 조인으로 하여금 오만대군으로 성을 에워싸버린다. 성 안에 갇힌 유비군은 항복이 아니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다. 게다가 조인은 조조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 생, 상, 두, 경, 사, 경, 개의 이름이 붙여진 여덟 방향의 출구가 있어 이 중 생, 경, 개로 들어가면 살지만 상, 경, 휴로 들어가면 다치고 두, 사로 들어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기록이 있다.)을 보란 듯 성문 앞에 펼쳐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를 내려다보는 유비의 심정은 속수무책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해성처럼 나타난 서서는 저런 진법 정도는 여반장으로 깨뜨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조자룡을 불러 생문을 알려준 뒤 곧바로 치고 들어가되 이길 생각 따위는 버리고 혼란만 주라고 신신당부 출전시킨다. 무신 조자룡이 서서의 지시대로 500여 기의 기마병을 이끌고 생문으로 진입하자 곧장 북이 울리고 진법이 발동한다. 하지만 조자룡의 기마병은 적진의 한가운데를 비스듬하게 휘둘러서 무인지경으로 적진을 유린한다. 뒤이어 청룡언월도를 옆구리에 걸쳐 꼬나든 관우가 500여 기의 기마병으로 측면을 후리치기 시작한다. 다시 북이 울리고 진법이 바뀌려는 찰라 이번에는 장팔사모를 치켜든 장비가 털북숭이 구레나룻을 빳빳하게 세워 “여인 장비가 여기 있다” 500여 기의 기마병을 통솔하여 적의 머리 부근을 우지끈 눌러온다. 그러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적병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진법이 완전히 흐트러진다. 이에 적병들이 중심을 잃어 우왕좌왕할 적에 성문이 활짝 열리는가 싶더니 나머지 군사가 봇물 터지듯 밀려와 악다구니로 달려들자 조인은 10배가 넘는 군사임에도 황급히 30여 리 밖으로 후퇴를 명한다.

소식을 접한 조조가 까무러지듯 놀란다. 하지만 조조는 치세에는 간웅이지만 난세의 영웅이다. 즉시 진법의 허와 실을 보충하는 한편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따지고 보면 원인 분석 따위는 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내 유비의 진영에 현자가 있음을 알아냈고 그가 곧 서서라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서서의 지략을 흠모한 조조는 어떻게든 그를 데려오고자 한다. 이후 몇 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실패만 거듭하자 그의 모친을 이용하기로 한다. 다행히도 그의 모친은 허창(許昌, 지금의 허난성 쉬창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으며 곧바로 볼모로 잡혀왔다. 모친이 허창으로 잡혀오자 조조는 아들인 서서에게 서신을 보내 허창으로 오도록 유인케 했다. 하지만 서서의 모친은 유비는 한고조 유방의 황실 종친으로 한나라의 중흥을 꾀하고 있으며 나의 아들은 그런 유비를 도와 충성을 다하거늘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다. 이에 조조는 궁리 끝에 신하 정욱의 간계를 받아들여 평소 모자간에 주고받던 편지를 구해 여러 날에 걸쳐 연습을 한 뒤 모친의 필체를 모방한 가짜 서신을 완성한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여 칭송을 받았던 서서는 노모의 서신을 받고는 안위가 걱정되어 유비와 눈물로 작별하고 허창으로 향한다. 유비는 서서가 작별을 고하자 태산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이에 헤어지는 날 오리를 배웅하고도 모자라 다시 오리를 배웅한다. 마침내 서서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 때 길을 재촉하던 서서가 다시 돌아온다. 재차 서서를 만난 유비는 기쁨이 넘쳐나 그의 두 손을 꼭 잡자 서서는 유비에게 한 사람을 천거한다. 이때 천거된 사람이 바로 남양 융중, 삼고초려로 유명한 제갈량으로 공명이다. 여전히 아쉬워 제갈량에 대해서 묻자 서서는 그를 보름달에 자신은 반딧불에 비유한다. 서서의 추천으로 제갈량의 등장은 싸움은 군사의 수가 아닌 지략의 대결임을 보여준다. 이후 역사는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에 의해서 위, 오, 촉으로 나누어진다.

한편 서서는 유비에게 설사 조조에게 가더라도 주공을 위해서는 하잘 것 없는 계책일망정 계책 하나 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서서는 죽을 때까지 조조에게만은 모든 재주를 감추어 입을 다문다. 글을 배운 현자로서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서 철저하게 약속을 지킨 것이다.

서서를 만난 모친은 모자상봉의 기쁨보다는 노여움을 앞세운다. 그것은 효보다는 충이 앞선다는 것이다. 모친은 “너는 어찌하여 글을 배워 천문지리를 통달했다고 자부하더니 필부필부의 하찮은 간계마저 알지 못한단 말이냐!”고 꾸짖고는 “여자가 글씨(자)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女子識字憂患)라 한탄 한 뒤 대궐의 기둥에 머리를 받아 자결한다. 모친의 죽음을 눈 앞에서 맞은 서서는 이후 유비와의 약속을 더욱 철저하게 치키리라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렇다고 조조가 서서를 놓아 줄 수는 없었다. 조조 자신을 위해 계책 하나 내지 않지만 재차 유비의 수하로 들어간다면 대업의 포기는 물론 그 피해는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일 서서는 적벽대전을 맞아 유비와 손권이 화공을 펼쳐 조조의 모든 배와 수군을 불태워 버릴 것을 알았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에 봉추 방통을 찾은 그는 화공을 입에 담으며 방통을 협박한다. 그때 서서는 나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 것이며 단지 자신의 살길만은 열어달라고 한다. 이에 방통은 한 지역을 지명하며 반란의 조짐이 있으므로 진압을 핑계로 가라고 한다. 그러자 서서는 방통의 계책대로 움직여 적벽대전의 아비규환을 피해간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식자우환’이란 사자성어는 함부로 입에 올린 단어는 아니다. 덮어놓고 아는 것이 병이라고 떠벌리기에는 품고 있는 역사가, 모친을 생각하는 효가, 충을 바라는 모정이 너무나 진하게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