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이 함께하는 여름 "코로나가 고맙네~"
조손이 함께하는 여름 "코로나가 고맙네~"
  • 김동남 기자
  • 승인 2020.07.06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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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씨가 손자와 함께 낙동강 탐사에 나서고 있다. 김동남 기자
김진태 씨가 손자와 함께 낙동강 탐사에 나서고 있다. 김동남 기자

 

김진태(69·경북 안동시) 씨에게 2020년 여름은 특별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있다. 6월 초순부터 격주제로 등교하는 초등학교 4학년 손자가 낙동강 탐방 보고서를 과제로 내야 한다며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에는 김 씨와 손자는 낙동강 주위를 자전거로 달리거나 걸으면서 함께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

손자와의 자전거 데이트 첫날 김 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낙동강 둔치를 따라 세워져 있는 수많은 표지판을 손자에게 가르쳐 주는 일이었다. 손자는 표지판 아래에 달려 있는 '볼라드 주의'란 팻말을 가리키며 무슨 뜻이냐고 물어 왔고 국가지점번호는 왜 필요한지도 의문을 가졌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던 이런 설치물들의 용도와 쓰임을 손자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김 씨는 따로 공부를 해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 몰래 스마트폰에 있는 꽃 이름 검색 앱을 활용해 둔치에 피어 있는 꽃들의 이름을 막힘없이 알려주기도 했다. 손자는 당연히 할아버지 최고라며 엄지척을 했다.

김 씨는 올 여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여름이라고 흐뭇해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수학학원이다 영어학원이다 다양한 학원순례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을 손자가 이렇게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반갑다고 했다.

손자의 탐사보고서에는 붉은토끼풀 근처에는 어김없이 흰 토끼풀도 사이좋게 자라고 있다는 것과, 꽃창포와 아이리스는 물을 좋아하는지 주로 물가에 서식함을 알게 된 것도 관찰의 결과라고 적혀 있었다.

김 씨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는 손자와 이 기회에 제대로 된 낙동강 탐사를 해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씨는 손자와 올 여름 함께할 더 특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안동은 임하댐과 안동댐이라는 큰 댐이 시내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유일한 도시이다. 안동댐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안동 시내를 남과 북으로 갈라 시내 중심지를 길게 관통하고 있고 시내 어디서 출발해도 바로 낙동강의 둔치와 자전거 길을 만날 수 있다.

김 씨는 이런 도시의 특성을 활용, 손자와 함께 매일 자전거로 낙동강 주변을 달릴 계획을 짰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과제도 해결하고 신선한 공기와 자연 속에서 건강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면 호기심과 운동량이 가장 왕성해지는 시기이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몰입되어 있는 손자를 위해 하루 두 시간 정도 달릴 수 있는 동선을 그렸다. 안동댐에서 월영교를 지나 낙천교까지 오면 대강 8km 정도의 거리이다. 낙천교 아래에 있는 야생화단지를 둘러보고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고니들을 잠시 감상한 다음 다시 안동대교까지 달려와서 옥동으로 난 새 길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오면 대강 두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칠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되자 손자는 둔치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두 사람을 하루도 빠짐없이 둔치로 달려오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최근에 갓 태어난 듯한 11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오리 가족이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의 삶을 생생한 모습으로 현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오리 가족과의 만남은 낙동강 탐사 중 최대의 수확이었다.

손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려다 김 씨도 낙동강 주변의 자연 환경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물이 빠져 나간 구간에는 거북등처럼 바닥이 갈라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과 깨진 유리병, 스티로폼 등 온갖 오물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물이 다시 차오르기 전에 소속되어 있는 봉사단 친구들과 이곳을 찾아와 쓰레기를 수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낙동강을 깨끗하게 보존해야 하는 이유와 나쁜 환경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손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손자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김 씨의 특별한 여름나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낙동강 전 구간에 만들어져 있는 자전거 길을 언젠가 손자와 함께 종주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두 조손은 오늘도 나란히 낙동강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