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달]J 교수의 남북교류와 호국(護國)
[호국보훈의달]J 교수의 남북교류와 호국(護國)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6.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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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30년과 호국
남북한 학술 교류(1990, 이태리 밀라노). 정신교 기자
남북한 학술 교류(1990, 이태리 밀라노). 정신교 기자

지방 국립대학 교수인 J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연구실을 정리하던 중에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1990년의 여름은 뜨거웠다. 올림픽 게임의 성공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인지도가 올라가고,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와 더불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중국이 개방되면서 많은 국민이 눈길, 발길을 해외로 돌렸다.

모교에서 전임강사 발령을 받은 J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와의 공동연구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해 6월에 첫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과채류를 주로 냉장법으로 저장하였는데, 유럽에서는 기체 조성을 조절하여 과채류를 장기 저장하는 CA(Controlled atmosphere) 저장법이 개발되었다. 과수 재배와 청과물 저장, 품질 전공의 3인이 FAO를 방문하고 이태리와 중국의 관련 연구 동향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J 일행은 먼저 FAO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업무와 회의를 마치고 중국대사관을 찾아가서 비자를 신청하였다. 당시 중국과는 미수교 상태이어서 국교가 체결되어있는 제3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서툰 영어로 안내를 받아서 선배 교수님들을 모시고 다니고 업무를 보느라 J는 혼쭐이 났다.

CA 저장 연구 현장을 견학하기 위하여 열차를 타고 누렇게 밀이 익어가는 롬바르디아 평원과 시저가 건넌 포강을 지나서 밀라노에 도착하였다. 햇살이 빛나는 유리 천장 아케이드와 고색창연한 건물들, 두오모 대성당, 형형색색의 진귀한 과일들, 선남선녀들을 마치 꿈꾸듯 구경했다. 밀라노 대학과 과채류 저장 가공연구소를 방문하여 연구 현황과 실험 기기들, 각 공정 요소마다 장치들이 조화롭게 갖추어진 시제품 공장을 견학하였다. 디자인과 패션의 도시답게 실험 장치와 공정들의 색과 모양이 뛰어나고 실용적이었다. 이어서 북부 아펜니노 산맥 기슭의 과수원을 방문하여 CA 저장과 가공 설비 및 시판 가공제품들을 조사하였다.

마지막 날, 연구소장이 주최하는 만찬에서 J 일행은 북한 과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과수 전공 학자들과 안내역의 세 사람이 3 개월 간 출장 와 있었다. 붉은 김일성 배지를 달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북한 학자들과 통성명을 하고, 우리 교수님 두 분과 북한 학자들, 그리고 안내역 젊은 사내와 J가 마주 앉았다.

“반갑습니다, 남조선 동무들!”,

“조국 통일을 위하여 다 함께 건배합시다.”

대화가 시작되면서 좌석에는 저절로 벽이 생겼다. 해방과 전쟁 이전의 서울과 평양을 얘기하는 전전(戰前) 세대와 눈만 껌벅이는 전후(戰後) 세대, 그리고 서로 경계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젊은 사내와 J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들이었다. 얼굴이 붉고 살집이 좋은 그는 생화학 전공이라고 소개했다. 전전 세대의 스스럼없는 이야기와 웃음소리에, 전후 세대는 눈치를 보며 들락날락하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공허한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이후 J 교수 일행은 로마로 돌아가서 신청한 비자를 받아서 북경과 시안의 과채류 저장 연구와 가공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중국에서는 장기 저장과 유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북경의 대로들은 넓고 시원스레 뚫려 있었으며 외제 승용차와 우마차, 자전거들이 같이 통행하고 있었다. 신형 386 컴퓨터로 출장보고서와 북한 인사 접촉 및 미수교국(중국)방문보고서들을 작성하면서 J는 여름을 보냈다.

FAO 국제공동연구사업은 국내 기업에 기술이전 되어서 ‘배의 장기 저장’에 적용되어 대박이 났다. 관련 학회가 만들어지고, 신선식품의 포장과 유통 기술 개발과 보급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해 8월(1990. 8. 1.), 우리 정부는 남북 상호 교류와 자유 왕래, 남북 교역 및 문호 개방에 관한 7.7 선언의 후속 조치로 남북교류협력법(법률 제4239호)을 제정하고 배포하였다. 이어서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건설되어 남북한 협력에 의한 수출 상품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였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댓가로 대북경수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후 수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리어 체재와 이념을 초월한 자주적 통일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가 논의됐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과 핵실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주변의 국제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긴장을 고조시켰다. 우리 정부도 통일안보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서 감시와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결국,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폐쇄되어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1996년도 통일안보교육(위; 판문각, 아래; 북한 식품). 정신교 기자
1996년도 통일안보교육(위; 판문각, 아래; 북한 식품). 정신교 기자

2010년 11월, 북한은 남한의 민간인 거주 지역인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였다. 해외 출장 중에 소식을 접한 J는, ‘자유와 민주는 지킬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는 신념으로 귀국하는 길에 곧장 늦깎이 무도에 입문하였다.

새로 정권이 바뀌어서 남북 정상들이 형제처럼 마주 대하고, 북미 정상회담이 거듭되면서 사람들은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들떠서 기뻐했다.

2020년 5월,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30주년을 맞아서 실질적으로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도록 이 법률의 포괄적인 개정 작업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우리 정부와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고 압박하면서 모든 남북 통신 연락 채널을 단절하고 군사적 위협까지 언급하고 있다.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순국선열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소임(所任)을 다하여야 하겠다.

검도 수련(2012, 대구 중앙도장). 정신교 기자
검도 수련(2012, 대구 중앙도장).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