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오이냉국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오이냉국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0.06.15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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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는 달고 시원한 성질
오이 먹고 태기 생겨 ‘도선’ 태어나
오이 냉국. 노정희 기자
오이냉국. 노정희 기자

유년의 텃마루에는 대나무 소쿠리 가득 ‘무리’가 앉아 있었다. 무리는 여름철 내내 단골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주렁주렁 열렸다. 텃밭, 다랑밭 등 농작물 심고 난 자투리땅이며 둔덕에는 호박 넝쿨, 무리 넝쿨이 잡목을 붙들고 번져갔다. 넝쿨을 뒤적이면 곳곳에 무리가 발견되었다. 목마를 때는 우걱우걱 씹어 먹고, 먹기 싫으면 반을 뚝 잘라 얼굴이며 팔뚝에 문질렀다. 작은 무리는 소금물에 ‘지’를 담고, 노각(늙은 오이)은 껍질을 벗겨 소금에 절였다가 고추장 무침으로 밥상에 올랐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밭일하고 오신 아버지 밥상에는 냉국이 올랐다. 시원한 우물물 퍼 와서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무리 채와 다진 마늘, 깨소금 뿌려 국 대용으로 먹었다. 할머니, 아버지께서 ‘무리’라고 지칭한 것이 바로 ‘오이’였다. 요즘 오이냉국은 미역 넣고, 단촛물 만들어 새콤달콤하게 먹는다. 그 흔하디 흔한 오이냉국은 퓨전에 밀리고, 얼음 음료에 밀려 이젠 별식으로 먹어야 할 판이다.

오이에 대한 기록은 신라의 고승 ‘도선’이 탄생하는 과정에 등장한다. 처녀가 냇가에 놀러 나갔다. 냇물에 오이 하나가 두둥실 떠내려오기에 건져 먹었더니, 그 후 태기(胎氣)가 생겨 아이를 낳았다. 그가 바로 도선이었다. 오이는 함부로 대할 식재료가 아니다.

오이는 달고 시원한 성질을 가졌다. 이뇨와 해독작용을 하며 열을 식혀준다. 약선(藥膳)에서는 오이와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식품이 식초와 땅콩이다. 식초를 아예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약으로 먹을 때는 동용금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냉국의 새콤한 맛은 어떻게 내야 하나, 매실액을 넣으면 된다. 매실은 피로 해소를 돕고 항균 작용을 하므로 식중독이 많이 발생하는 여름에 먹으면 훨씬 효과적이다.

냉국에 미역을 넣으면 또한 여러 모로 이상적이다. 미역에 들어있는 칼슘 섭취와 더불어 섬유질이 많아 변비 예방에 좋다. 동의보감에 ‘미역은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무독하다. 속열을 버리고 혹의 결기(結氣)를 다스리며 이뇨작용이 있다’고 나와 있다. 오이 냉국에 들어가는 재료는 더위 물리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배합으로 이루어졌다. 오이냉국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물리쳐 줄 음식이다. 예전에 먹었던 간편한 오이 냉국 만들기를 재현해 본다.

오이 냉국. 노정희 기자
오이냉국. 노정희 기자

 

-오이 냉국 간편하게 만들기

1. 생수에 조선간장과 매실액을 넣어 간을 맞춰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마른미역은 불렸다가 팔팔 끓는 물에 데쳐서(해조의 비린내를 없애준다) 사용한다.

3. 오이는 채 썬다.

4. 그릇에 재료를 담고, 먹기 직전에 국물을 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