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에서 DG로 大邱에서 大丘로
TK에서 DG로 大邱에서 大丘로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0.06.09 1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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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국토를 8도로 나누었다. 각 지역에 이름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그 지역의 제일 큰 고을의 첫머리 글자와 두 번째 큰 고을의 첫머리 글자를 취해 지역 이름으로 삼았다. 따라서 우리 지역은 신라 천년의 수도인 경주(慶州)의 '慶' 자와 두 번째 큰 고을인 상주(尙州)의 '尙' 자를 취해 경상도(慶尙道)로 명명했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조선 8도인의 기질을 평하면서, 경상도인의 인품과 기개를 두고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높고 큰 산이라는 뜻으로 '지조가 곧고 꿋꿋한 성격'이란 평이다. 대구경북은 나라가 어려울 때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모범을 보인 곳이다.

일제가 경제 침탈로 나라에 빚을 지우자 이에 맞서 김광제·서상돈 선생이 주도하는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곳이 대구경북이다. 또한 36년의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에서 저항하고 항거하며 많은 희생자를 낸 곳 또한 대구경북이다. 그뿐만 아니라 6·25 전쟁의 백척간두에서 낙동강 전선을 온 몸으로 막아내 나라를 지켜낸 곳이 대구경북이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자유당 정권이 야당 후보의 연설을 듣지 못하게 중·고등학생을 등교시키자 학생들은 분연히 교문을 박차고 나와 학원의 자유를 외쳤다. 이 사건이 4.19학생의거로 이어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  

대구와 경상북도는 분리되기 전 경북이었고,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진 후에도 긴밀한 연을 맺고 있다. 대구, 경북의 영문을 Taegu와 Kyeongsangbuk-do로 표기했다. 머릿글자를 따서 지금도 TK라 부른다.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 바뀌어 Daegu와 Gyeongsangbuk-do가 된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입에 익어서인지 아직도 된소리로 '태구'와 '켱북'으로 읽히니 못마땅하다. 강한 말은 경상도 기질을 살리는 듯하지만 억세게 들리며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인 느낌이 든다. 된소리인 TK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DG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TK가 주는 어감은 강하게 들리며 DG가 주는 어감은 여성스럽고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T는 D로, K는 G로 바꿔 DG로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 했다.

대구(大邱) 지명은 오랜 옛날 신라 경덕왕 때부터 大丘로 사용해왔다. 조선조에 이르러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유학의 비조인 공자의 이름이 구(丘)라서 같은 이름을 피하자는 유림의 과잉 친절로 수난을 당한다. 큰 언덕 구(丘) 자에 부방 변(阝)을 붙여 땅이름 구(邱)자로 별 의미가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큰 언덕이란 뜻의 대구(大丘)로 복원시키는 것은 대구 지명의 뿌리를 이해시키고 대구 지명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일이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는 한 뿌리였다. 지금은 자유경쟁 체제로 글로벌화하고 있다. 행정의 효율적인 운영과 자유경쟁시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구와 경북을 하나로 합치자는 안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지방장관까지도 지지하고 있으니 적극 추진해볼 일이다. 두 지역이 합치게 되면 대구 경북은 방대한 행정체계가 통합되고 지역의 우선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성장 동력을 높여 다른 지방과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다. 또한 대구 경북이 상호 경쟁 체제에서 힘을 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증대하여 다른 지역에 앞서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구경북이 하나가 될 때 大邱에서 大丘로 Taegu에서 Daegu로 Kyeongsangbuk-do에서 Gyeongsangbuk-do로 이름이 자리매김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