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65)-외로운 길
녹슨 철모 (65)-외로운 길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6.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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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은 해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그는 마지막으로 부대를 한 바퀴 돌았다. 의무실을 나와 도로로 내려서서 후문을 지나 정문 쪽으로 담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왼편에는 헬기 비행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정문이 있다. 그 정문에는 헌병 초소가 있는데 초소 안에 한 사람, 초소 밖에 또 한 사람 이렇게 둘이 근무하고 있었다. 태원을 보자 "멸공!” 하는 구호를 외치며 받들어 총 자세로 경례를 했다. 이 녀석들은 웃기는 놈들이다. 후문에 보초를 설 때는 태원을 보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정식 경례를 하지 않았다. M-16을 든 왼손을 어깨에 얹은 채로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곤 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사적인 인사를 했다. '지금 퇴근하세요?' 라든가 '이제 오세요?' 혹은 '많이 덥죠?' 하고 아주 군인답지 않는 군기 빠진 인사를 하곤 했다. 태원이 처음 전방에서 군단에 왔을 땐 이놈들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놈들의 그런 태도가 그들 나름대로의 친근함의 표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고 지낼 수 있었다. 대신 저희 대장 차나 장군 차를 타고 정문에 들어서면 놈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규정대로 예를 갖춰 경례하는 바람에 그나마 참을 수가 있었다.

정문은 그렇게 군인들에게는 위엄이 있고 엄숙한 장소였다. 태원은 정문을 뒤로 하고 본부를 쳐다보며 그곳에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와 군단장기에 경례를 하였다. 이 부대를 떠나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그렇게 한 것이다. 언덕을 올라가면 군단 시멘트로 만든 군단 지휘부가 나왔다. 저 문을 얼마나 드나들었던가? 태원은 평소와 다르게 정문 쪽에서 현관문 쪽으로 와봐서 그런지 마치 처음 보는 문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직각으로 난 길을 계속 따라 걸었다. 낙엽이 붉게 물든 감나무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보초병들은 이미 다 철수하고 없었다. 며칠 전 감을 다 따버렸기 때문이다. 태원은 참모장이 감을 따면 그 감을 사병들에게 나눠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추수된 감들은 서울의 장님들 집으로 다 갖다 바치고 말았다. 법무부를 지났다. 거기에는 군법회의장이 있었다. 그동안 매달 재판의 변호인을 하기 위해 태원이 드나들던 곳이다. 영내 독신 장교 숙소를 지나 다시 의무대 앞에 섰다. 뒷산의 단풍이 아름다웠다. 의무실 주위의 코스모스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이 태원의 가슴에 비수처럼 고통스럽게 내리꽂혔다. 인간의 가슴을 도려내듯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간에 아름다움은 비극의 뿌리가 된다. 바라만 보아도 인간의 가슴을 베어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은 그것을 가지려고 시도하는 인간을 마침내 비극에 이르게도 하는 것이다.

 

태원은 그의 진료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남들이 몰라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의 책상 앞에 앉았다. 일과 끝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문득 아직 이름도 짓지 않은 그의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연이어 병주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져 올랐다. 볼이 빠알갛던 소녀, 그리고 이제는 아기 엄마다. 눈물이 났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어 이 영상을 지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방긋 웃는 모습이다. 깔깔깔 하고 웃는다. 가슴이 뛴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는 일어서서 매직펜을 들었다. 벽에 유선영이라고 썼다. 그리고 권총에 탄창을 끼웠다. 권총을 든 손이 떨렸다. 태원은 총구를 글씨가 쓰인 벽을 향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귀가 멍멍한 소음이 들렸다. 총알이 벽을 튀어 천장을 맴돈 후 땅바닥에 떨어졌다. 시간이 없다. 태원은 그의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에 권총을 갖다 댄 후 방아쇠를 당겼다. 굉장히 큰 돌덩이가 가슴에 부딪치는 충격을 느꼈다. 외로웠다.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모두들 안녕! 여보, 정말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 하지만 이것밖에 택할 방법이 없었어!"

 

내가 현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여러 사람이 엉겨 소란스러웠다. 소위 5부 합동조사 때문이었다. 나는 태원의 시신을 검시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태원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피를 대량으로 흘린 탓인지 무척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왼쪽 가슴에 총알 사입구가 있었고 명찰은 화약 냄새가 밴 채 그을려 있었다. 가슴 가까이 대고 쏘았다는 흔적이다. 등 쪽으론 총알이 차고 나간 큰 구멍이 있었다. 법무관이 나를 보고는 스스로 목을 긋는 모습을 한다.

"자살이겠죠?"

확인이라도 하는 듯한 신호였다. 나도 모르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아래로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아직도 피가 뚝뚝 듣고 있었다.

“음, 두 발이군.”

"왜 두 발이나 쐈을까?"

"아마 권총이 서툴러서 그랬던 것 같아. 저 벽에 한 발 오발한 자국이 있잖아. 문이 잠겨 있던 걸로 봐서 자살한 것 같아. 탄환을 장전하다가 한 발은 오발한 것 같아.”

헌병대 수사관들이 저희끼리 사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태원의 옷을 벗기고 그의 위생병과 함께 구멍 난 그의 몸뚱이를 솜과 거즈로 메워주었다.

"형, 아까운 솜과 거즈 많이 쓰지 말아요.”

태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제서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동은 태원의 사인이 자살이란 결론을 내고 흩어졌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숙제로 두고 그의 권총에서 채취된 지문이 그의 것임이 확인될 때까진 발표를 미루기로 하고 각자 사라져 갔다. 그러나 벽에 쓰인 '유선영'이란 글씨의 의미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계속 조마조마하였는데 그렇게 넘어가자 안도의 숨을 내쉬고 태원의 시신을 앰뷸런스에 싣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육군 규정대로라면 태원은 이미 사람이 아니므로 트럭에 싣고 와야 한다. 하지만 그의 직책에 대한 마지막 예우로서 앰뷸런스에 태운 것이다. 항상 자신이 앞자리에 선임 탑승하다가 이제는 시체가 되어 차 바닥에 누워 가는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후송병원으로 오던 중 통일로 한가운데 태원이 서 있는 모습도 보였고 바로 내 옆자리에 능청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도 느껴졌다.

 

대자리 서울시립화장장에 군단의 여러 장교들이 모여 있었다. 태원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처음으로 화장장에 가본 것인데 마치 지옥과 같았다. 아마 고인들을 위로하느라 나오는 소리겠지만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독경 소리와 찬송가가 오래 듣고 있자니 마치 지옥 악마들의 합창처럼 들렸다. 몸을 태운 시신은 흰 뼈가 되어 절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명태나 오징어 혹은 돈을 뼈 위에 던져주었다. 고인의 노잣돈이라고 주는 모양인데 그 돈은 절구공이를 거머쥔 인부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명태나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절구를 찧고 있었다. 돈을 더 던져주는 경우에는 뼈를 더 곱게 빻아준다. 절구 소리와 뼈가는 소리가 염불과 어울려 이곳이 지옥임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윽고 태원의 차례가 되었다. 일동은 들것에 실려와 화덕 앞에선 태원을 둘러섰다. 군에서 자살은 범죄 행위다. 그래서 자살자는 국군묘지로 갈 수 없다. 군법에 자살 실패자는 상처가 나으면 처벌하게 되어 있다. 오늘 태원은 죄인 신분이 되어 비록 국군묘지로는 갈 수 없어도 군단에선 최고의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참모장 박 준장, 인사참모 변 대령, 군수참모 예 대령, 법무참모 최 중령, 본부대장 김 중령, 군종참모 하 중령 그리고 학군단 장교들과 법무부 법무관들 그리고 의무실 요원들이 조문하러 모였다. ‘요단강 건너서 만나세’를 군목인 하 중령이 선창하고 일부 기독교 장교들이 따라 불렀다. 다음으로 ‘반야심경' 독송이 있었다. 법사인 송 대위였다. 이윽고 화구가 열렸다. 태원의 시체가 불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때 참모장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일동 차렷! 경례!"

모두들 마지막 떠나는 그들 동료의 주검 앞에 인사를 보냈다. 쾅 하고 철문이 닫치자 의무실 박 하사는 그 자리에 풀썩 하고 쓰러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그들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나도 심한 욕지기를 느껴 밖으로 뛰쳐나가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마저 나가 버리면 태원은 외롭게 그의 몸을 불사르고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차마 그를 혼자 둘 수가 없었다. 나라도 마지막 그의 길벗이 되어주고 싶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모두 다 나간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여군 중위 한 사람이 이쪽을 보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보니 이미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환영인지 실제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태원의 아내였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울지도 않고 불타는 화덕 앞에 서서 활활 타오르는 남편의 몸을, 아기 아빠의 시신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우는 것조차 잊어버린 사람처럼 멍하게 타는 불꽃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그녀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가 그 불타고 있는 화덕 속의 태원을 말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불같던 그가 불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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