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의 섬, 세부(CEBU)에 빠지다①
천연의 섬, 세부(CEBU)에 빠지다①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06.02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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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0여 개 섬나라 필리핀의 세부(CEBU)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
Ⓒunsplash(by Emjeii Beattie)
Ⓒunsplash(by Emjeii Beattie)

비행기 출발이 또 지연이란다. 지난 제주도 여행 때도, 태국과 대만 갈 때도 그랬다. 우리에게 저가 항공(LCC)은 늦장 출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 이지만 저가 항공이 무슨 큰 벼슬도 아니고 늦게 출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얄밉기만 하다. 항공료가 저렴한 만큼 불편함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걸 익히 알고는 있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지연 출발이니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대구 공항 대기실은 시간 때울 곳도 마땅찮다. 구멍가게 수준의 면세점 하나 달랑 있는 게 전부이다 보니 스마트폰을 뒤적이거나 탑승구만 쳐다보며 출발할 때까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지겨워할 즘 탑승 수속이 시작되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가슴에 성호 십자를 그리며 공항을 이륙한 지 2시간이 지났을까?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대는 비행기 때문인지 온몸이 쑤신다. 눈치껏 잠시 일어서기라도 하면, 승무원이 잽싸게 달려와 제지를 한다. ‘이 녀석아! 가만히 앉아 있어. 저가 항공이 다 그렇지. 이 롤러코스터를 그냥 즐기라고…’ 하는 눈빛과 함께 사무적인 말만 하고 휑하니 사라진다. 옐로카드(Yellow Card) 한 장에 중죄인이 되어 괜히 허리를 곧추세워 스트레칭만 반복할 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유럽까지 갔었건만 고작 두 시간여 만에 몸이 힘들어하는 게 나이 탓인 듯하여 씁쓸하기까지 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비행기는 세부-막탄 국제공항(Mactan-Cebu Internation al Airport)에 내려앉는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과 일탈의 해방감으로 공항 활주로의 불빛은 설렘으로 다가오고 비행기 출입구가 열리면서 온몸을 감싸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아열대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안도감에 다시 한번 십자를 그리며 세부(Cebu)와 마주한다.

창문 넘어 비집고 들어 온 따가운 햇살이 지프니(Jeepney)의 경적과 함께 세부의 아침을 깨운다. 옆 침대의 벵칠이는 벌써 깨어나 무언가에 빠져 있다. 녀석이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조만간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는 징조다.

지난 타이베이(Taipei) 국립 고궁박물원(Taiwan National Palace Museum)을 여행할 때이다. 신기한 유물에 넋을 놓고 관람하던 중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을 가해 온 것이다. 장개석(蔣介石, 1887~1975) 총통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유물별 특징과 그 시대의 사회상 등 중국 역사를 통째로 가져와 퍼부어 버린 것이다. 막무가내식 공격에 멘붕 상태로 한참을 끌려다녀야만 했다. 동서양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등 시공간을 넘나드는 최신 무기로 공격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첫날 여행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탐색전이다. 산토니뇨 성당(Basilica Minore Del Santo Niño)에서 그들의 종교를, 마젤란 십자가(Magellan’s Cross)와 산 페드로 요새(San Pedro Fort)에서 그들의 역사를, 전통시장과 현지식당에서 그들의 일상과 부대끼며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숙소 앞 마피아(Mafia) 택시에 올라 시내 투어에 나선다.

택시 안은 시끄러운 음악으로 클럽을 방불케 한다. 운전기사의 나이에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도 다르다. 젊을수록 빠른 템포의 노래가 많다 보니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운전기사를 힐끗 쳐다보니 지저분한 턱수염을 한 얼굴에 낡은 반소매 옷을 입은 마피아다. 소리를 줄여 달라고 하자 싱긋이 웃으며 “한국인이냐? 너희는 부자라 좋겠다.”라며 시부렁거리더니 혹시 밤에 여자가 필요하면 자기한테 연락하라고 한다. ‘여자?’ 이 녀석이 아침부터 무슨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를 지껄이나 싶어 못 들은 척하자 명함까지 내민다. 잘못했다가는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할 듯하여 “고마운데, 오늘 밤 한국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하자 더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과거와는 달리 우리나라를 ‘잘 사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현지인이 많다. 좋은 뜻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느끼지만 나쁜 생각을 가지고 말을 건넨다면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까 싶어 무척 조심한다. 산토니뇨 성당(Basilica Minore Del Santo Niño)에 도착하여 잔돈을 팁으로 주면서 “돈 많이 벌어라! 한국인 모두가 부자는 아니다.”라고 웃으며 한마디를 던지자 마피아도 손 인사를 건넨다.

성당 주변은 색 바랜 건물의 옛 거리와 함께 시청, 박물관 등이 모여 있는 세부의 중심지이지만 오가는 차와 노숙자 그리고 노점상들로 혼잡하기 그지없다. 편의점 앞을 지나갈 무렵 아기를 업고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노숙자 여인이 수줍은 눈빛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어 초콜릿과 생수 한 병을 건네주며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른 꼬마들이 순식간에 모여든다. ‘아차’ 싶어 초콜릿 몇 개를 주고선 달아나듯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혼돈의 세상에서 평화로운 또 다른 세계로 건너온 느낌이다.

산토니뇨(Santo Niño)는 아기 예수(The Holy Child)를 일컫는다. 성당은 1565년 아기 예수상이 발견된 곳에 수사(Friar) 안드레스 우르다네타(Andrés de Urdaneta, ?~1568) 일행이 지었다. 발견된 아기 예수상은 1521년 마젤란이 세부의 추장인 라자 후마본(Rajah Humabon. 1491~?)의 부인에게 세례 선물로 준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성당은 화재 등 많은 고초를 겪은 후 1740년 1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교회이며 세부인(人)의 정신적 쉼터이기도 하다.

산토니뇨 성당(Basilica Minore Del Santo Niño)의 순례자센터(Pilgrim Center) 전경. 임승백 기자
산토니뇨 성당(Basilica Minore Del Santo Niño)의 순례자센터(Pilgrim Center) 전경. 임승백 기자

산토니뇨 성당은 야외광장을 중심으로 순례자센터(Pilgrim Center), 박물관(Museum), 촛불 봉헌대(Dagkotanan), 예배당(Chapel), 수도원(Convent)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순례자센터에선 금방이라도 하얀 사제복을 입은 교황이 테라스의 문을 열고 나타날 것만 같다. 광장 바로 옆 촛불 봉헌대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촛농만큼이나 세부인의 절실함이 타들어 가는 빨간 촛불들의 향연장으로 장관을 이룬다.

야외 광장 옆 촛불 봉헌대(Dagkotanan)은 빨간 촛불의 향연장이다. 임승백 기자
야외 광장 옆 촛불 봉헌대(Dagkotanan)는 빨간 촛불의 향연장이다. 임승백 기자

순례자센터 건너편에는 예배당과 수도원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유럽풍 건물의 입구를 지나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관광객과 신자들이 옆 정원과 수도원 건물까지 가득 차 있다. 아기 예수를 알현한 탓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성당 밖의 그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편안해 보인다. 늘어선 참배객들 앞에 화려한 옷으로 장식한 아기 예수는 토실하고 맑은 눈빛의 영락없는 아이이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한다.

아기 예수(The Holy Child)라는 의미의 산토니뇨(Santo Niño). Ⓒwikipedia.org
아기 예수(The Holy Child)라는 의미의 산토니뇨(Santo Niño). Ⓒwikipedia.org

예배당 옆 회랑 중앙에는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나타날 듯한 정원이 분수대와 함께 고풍스럽게 잘 가꾸어져 있다. 더위도 식힐 겸 정원 의자에 앉아 지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기 예수에게 묻는다. ‘아기 예수님! 당신은 어찌하여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착한 이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요? 당신이 진정 존재한다면 이들을 굽어살피소서. 도대체 언제까지 시험하고 무게만 잡으려고 하나요? 이들을 돌보지 않으면 당신 엄마한테 이를 테다.'

교회와 수도원 사이에 있는 고풍스러운 정원. 임승백 기자
교회와 수도원 사이에 있는 고풍스러운 정원. 임승백 기자

뜨거운 하늘 향해 떠 있는 풍선을 파는 이의 기다림과 기도하는 이의 갈망을 바라보며 회색빛 건물을 따라 밖으로 나선다. 산토니뇨 성당 바로 옆 수그보 광장(Plaza Sugbo)에는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이 세부에 도착한 기념으로 세운 마젤란 십자가(Magellan's Cross)가 자리하고 있다. 세부는 마젤란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마젤란은 포르투갈인으로서 스페인 국왕 카롤루스 1세를 꼬셔 240여 명의 선원과 함께 남아메리카 남단을 거치는 새로운 항로(마젤란 해협)를 개척하고 엄청난 고생 끝에 1521년 4월 세부에 도착하게 된다. 세부인에게 가톨릭과 신문물을 전파하며 기세등등하던 마젤란은 세부 왕과 짝짜꿍이 되어 평소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지금의 막탄섬인 라푸라푸(Lapu Lapu)를 공격하게 되지만 라푸라푸 왕의 지략으로 마젤란은 1521년 4월 27일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막탄(Lapu-Lapu City)섬의 쉬라인(Shrine)에는 아직도 외세의 침략에 당당하게 맞서 싸운 라푸라푸 왕의 동상이 세워져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마젤란이 죽은 후에도 스페인의 종교와 문화가 원주민들 삶 속 깊숙이 파고들어 필리핀인의 삶의 근간이 되었으며 지명이나 언어 그리고 종교 등 일상생활에서도 500여 년 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식민지의 영향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알 수가 있다.

팔각형 정자 모양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마젤란 십자가와 함께 천장 벽화가 찾는 이를 압도한다.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들로 인해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철창에 기대어 잠시 마젤란의 행적에 대해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벵칠은 느닷없이 우리를 15~16세기 중세 유럽과 중국으로 유인하여 데리고 다닌다. 필리핀 이야기만 해도 될 것을 굳이 인도, 중국, 스페인 등 관련국 상황까지 거침없이 퍼부어 버린다. 우리는 더위와 함께 넋이 나간 듯 해박한 지식에 혀를 내두르며 마젤란의 십자가를 짊어진 무게만큼이나 힘들어하며 건물 밖으로 피신을 하고야 만다.

마젤란 십자가(Magellan's Cross)와 천장 벽화. 임승백 기자
마젤란 십자가(Magellan's Cross)와 천장 벽화. 임승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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