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소음 공해
산책로 소음 공해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6.02 0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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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소음과 소음 공해

토요일 이른 아침에도 봉무공원(대구 동구 봉무동)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이 차 있다. 봉무공원에는 나비와 곤충의 생태원과 야생식물 표본들이 많아서 가족 단위의 나들이도 많다. 단산지 둘레의 산책로(3.5km)는 대부분 숲속으로 나 있어서 그늘이 시원하고 감태봉 등산로와도 연결된다.

호숫물이 맑아서 수초가 깔린 바닥이 보이고, 숲 그림자가 어리어 에메랄드색으로 빛난다. 후미진 덤불에서 길고양이들이 나와 물가에서 아장거리는 아기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열심히 팔을 흔들면서 숲길을 시원스레 걷고 있다. 촉촉한 황토의 질감이 발바닥에서 다리, 척추를 타고 온몸에 퍼진다. 운동 시설이 갖춰진 숨공원을 지나는데, 난데없이 맞은 편에서 ‘쿵작쿵작’ 하는 트로트 메들리 가락이 들리더니, 이내 양손에 스틱을 움켜쥐고 허리춤에 워크맨을 찬 부부가 지나간다. 잔잔하던 호숫물이 일렁거리고, 노란 금계국이 화들짝 놀라는 듯하다.

편백 나무숲에 바람소리, 물소리, 스님 독경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린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통신사의 CF이다.

CF 보기 https://youtu.be/yhUjLawrz7E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각종 소음으로 인하여 갈등과 시비가 자주 일어난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밀집된 주거 공간에서 생기는 층간소음은 이웃사촌을 원수지간으로 만들고 법정에까지 서게 한다. 그러나 소음들이 합쳐져서 일정한 주파수의 스펙트럼을 가진 비교적 낮은 강도의 신호로 발전하면 사람들에게 편안한 감정을 주게 되는데, 이를 백색소음(白色騷音, white noise)이라고 한다. 모든 파장의 빛들이 섞이어 흰색이 되는 것을 백색광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처마 끝의 낙숫물 소리와 계곡이나 산골에서 물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같은 자연의 소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백색소음은 뇌파의 β파를 줄이고 α파와 동조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한다.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커피숍이나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한국산업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백색소음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강하고, 스트레스를 낮춰준다고 한다. 최근에는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백색소음 관련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도 개발되었다. 젊은 엄마들은 아기가 잠들기 전에 시냇물 소리나 새 소리와 같은 백색소음을 들려주거나, 태교 음악으로도 활용한다. 그렇지만 장시간 노출되면 아기의 청각 기능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백색소음에 영상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더해서 뇌를 자극하여 심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을 ASMR(Autonom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고 한다. 자연의 소리 이외에도 속삭임, 연필 소리, 비스킷, 과일 깎는 소리와 같은 생활 소음과 관련 영상이 활용되는데, 가수 서태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뮤직비디오 ‘MOAI’에 이를 활용하였다. 현재 유튜버에 다양한 ASMR 비디오들이 올려져 있는데, 이어폰을 착용하면 더욱 생동감 있게 즐길 수 있다.

보행이나 등산을 하면서 이어폰을 착용하고 음악을 듣는 것도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는 때문이다. 일부 시니어들은 약해진 청각 기능 탓인지 아예 휴대용 라디오나 스피커를 틀고 다녀서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자연생태계에도 심각한 피해를 준다. 국립공원, 도립·군립공원과 같은 자연공원에는 소음을 유발할 수 있는 도구를 지니고 입장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자연공원법 시행령 제26조).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나의 즐거움이 남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공공장소에서 음악은 유무선의 이어폰을 활용하여 즐기도록 하자.

금계국 꽃이 화창한 단산지 둘레길. 정신교 기자
금계국 꽃이 화창한 단산지 둘레길.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