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순의 ‘손’
최계순의 ‘손’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6.24 10:0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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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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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순의 ‘손’

 

잘 아는 사람 중에 근검절약이 심하다 못해 돈을 움켜쥐고 사는 이가 있다. 생활이 어렵다 보니 그것이 한(恨)이 되어 수십 년의 직장생활에서 구두쇠 행세를 하며 그녀는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나 대부분 부동산에 다 묻어 두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는 현금이 잘 돌지 않는다. 그녀는 생활하면서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산다. 부식비며 기타 잡비는 최소한도로만 쓰기 때문에 가족을 위한 외식도 없고 의복도 잘 사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은 그녀는 간혹 그동안 ‘헛살았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때’라는 것이 있다. 젊을 때 아이들과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하고 즐겁게 보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고 나이를 먹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 움켜만 쥐고 살았던 그 손의 아귀가 때로는 앙칼스러워 보인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여자로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미욱함이 가슴 답답하도록 미련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해지는 법’에 대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병이 생기면 초창기에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도 수십 번 수백 번 하지만 다들 예사로 흘려듣다가 큰일이 나서야 그때부터 병을 다스리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기름도 잘 넣어 주고, 엔진도 잘 갈아주고, 바퀴도 이상이 없는지 잘 점검하여야만 차가 먼 길을 잘 갈수 있어요.” 내 행복을 위하여 내 건강을 위하여 아름다운 내 삶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거저 얻는 것이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 돈을 모으는 것에 집착하면서 평생을 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민들 대부분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자녀 결혼 시키는 것을 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 다들 나눠 가지는 것에 인색하다. 마음을 나누고 미소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인간관계는 달라진다.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것만 욕심내면 친구도 선후배도 없다. 돈이라는 것에 목을 매달고 살다 보니 그녀에게는 변변한 친구도 없다. 욕심만 내니 누가 선뜻 다가갈 것인가. 갈고리 같이 긁어모았던 돈의 의미가 그녀의 인생 가운데서 많은 것들을 앗아 갔다는 것도 그녀는 모른다. 나이가 지긋하게 들면 베풀지 않는 손의 힘은 작은 도량과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손에 조금씩 힘을 빼고 따뜻한 사랑을 담아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것, 위로해 줄줄도 아는 것,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일인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세상의 모든 이치에 대하여는 이해 못할 부분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세상을 알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살아 왔기에 내 자식 귀한 것도 남의 자식 귀한 것도 헤아릴 줄 알고, 남의 처지도 잘 헤아리면서 우리는 철이 들어간다.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하여 호스피스 간호를 한 일이 있다. 거동이 불편하여 기저귀를 차고서 남의 손에 의하여 대소변을 받아 내는 그들을 보면서 미래에 닥칠 일이 생각났다. 누구나 처음에는 부모님에게 의지하여 기저귀를 차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또 다시 어른이 되고 죽을 때 기저귀를 차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이다. 그런 일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너무나 서글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젊음도 잠깐이고 이 시절도 가면 다들 노후가 닥칠 터인데 남의 일로만 돌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서 평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위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삶이라는 인생의 바퀴도 녹이 슬고 닳게 되어 있는 것일진대 죽어서 가져가는 것이 돈이 아닐진대 다들 그 돈이라는 이름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얽어맨 채로 목매여 살고 있다. 그 돈으로 인하여 인생이 삭막해지기도 하고 윤택할 수도 있다. 그 균형이 깨질 때는 불행과 탐욕의 결과를 빚기도 한다. 나이 들어 손에 힘을 빼지 못한다면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손 안에 쥔 욕심과 손밖으로 보내는 여유가 다 같이 균형을 맞출 때 성숙한 한 사람으로 나이를 먹는 일일 것이다.

작은 손짓 몸짓에 내 주위를 밝게 할 수도 있고, 꽉 쥔 손에 의하여 불행과 탐욕까지도 초래하여 행복을 파괴하는 일을 종종 본다. 손의 강약을 잘 조절하여 따뜻함과 약속을 주고, 어려운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인정의 손길은 얼마나 아름다고 가슴 벅찬 감동인가.

콩나물 장사를 하여 근검절약 모은 재산 전부를 학교에 희사한 정직한 할머니의 손도 있고, 자식의 앞길을 위하여 손발이 다 닳도록 헌신하는 부모의 손도 있다. 그리고 신을 바라보며 봉사와 기도의 손을 다 바친 성직자들의 손길도 있어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아름다운 손과 미련한 손과 욕심의 손을 생각해 보면서 제대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손은 어떤 모양인가를 되돌아본다.

 

제12회 전국공무원문예대전 행정안전부장관상 수상작품

 

손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나뭇잎을 닮았다. 작은 바람, 옅은 햇살, 가는 빗방울, 희미한 달빛… 모든 자연현상 앞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며 유한한 자기 몫의 삶을 노래하는 나뭇잎처럼 우리의 손도 그런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손을 쓰지 않고 되는 일이란 없다. 주부의 손이 거칠수록 그 집 세간들은 빛나기 마련이고 농부의 손이 거칠수록 농작물은 튼실한 열매를 줄 것이다. “마음을 나누고 미소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인간관계는 달라진다.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것만 욕심내면 친구도 선후배도 없다.” 작가의 말처럼 손은 더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기도 잘해야 한다. 움켜쥐고 살다가 때를 놓쳐 후회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는 맥락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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