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강원도 원주의 폐사지-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
(12) 강원도 원주의 폐사지-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5.25 21: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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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영월 동강을 지나 충주호를 빠져나온 남한강의 물길은 충주에서 달천을 더하고, 원주에서 섬강의 물줄기를 더하면서 여주와 양평으로 흐른다.

원주의 남한강 유역은 통일신라 시대 9주 5소경 중 하나인 북원경(北原京)으로, 고려시대부터는 흥원창이라는 굵직한 조창(漕倉)이 있어 영서지방의 행정과 물류, 경제의 주요 거점으로 사람과 물산이 넘쳐났던 곳이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으로 문물이 융성하고 경제적 여건이 양호한 이곳엔 절집이 100개가 넘었으며 신라 말에서 고려에 걸쳐 거대한 사찰이 들어섰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북상하고 퇴각하는 길이였기에 유난히 이 지역의 절들이 많이 폐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폐사지 중 천 년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흥법사지가 남아 있다.

영화로운 세월을 누리고 한 줌의 재로 스러지기까지 천 년을 넘긴 사찰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폐사지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절터가 남아있는 원주로 달려갔다.

 

법천사지

원주 법천사지 전경. 오주석 기자
원주 법천사지 전경. 오주석 기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명봉산 기슭에 있는 법천사의 옛 절터이다.

법천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져 고려 시대에 크게 융성한 사찰이며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중창되지 못했다. 법천사지의 면적은 14만2천122㎡이며 법당 등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오주석 기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오주석 기자

현존하는 석조물로는 고려 시대인 1086년에 건립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59호)와 법천사 당간지주, 1965년 발굴이 이루어져 출토된 불상 광배, 불두, 파불, 배례석, 연화문 대석, 용두, 석탑재 등이 탑비 전지 옆 요사지에 남아 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오주석 기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은 지금 경복궁 고궁박물관 야외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오주석 기자

이전에는 탑비 옆에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있었으나, 지금은 경복궁 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거돈사지

원주 거돈사지 전경. 오주석 기자
원주 거돈사지 전경. 오주석 기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신라 말~고려 초의 절터이며 사적 제168호이다.

약 7천500여 평의 절터에 있는 금당지에는 전면 6줄, 측면 5줄의 초석이 보존되어 있어 본래는 20여 칸의 대법당이 있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금당지 중앙에는 높이 약 2m의 화강암 불좌대가 있고, 금당지 앞에는 보물 제75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또, 절터에 있는 민가의 우물가에는 탑 옆에서 옮겨왔다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그 크기는 135cm×85㎝이며, 전면과 측면에 안상을 조각하였고 상부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오주석 기자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오주석 기자

3층 석탑으로부터 북쪽 약 50m 지점에는 보물 제78호로 지정된 원공국사승묘탑비가 있다. 비문은 해동공자 최충이 지었고 글씨는 김거웅이 썼으며, 1025년(현종 16) 건립되었다.

원주 거돈사지 탑비. 오주석 기자.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 오주석 기자

이 비석 서쪽 60m 지점에는 원공국사승묘탑이 있었으나, 민족항일기에 서울에 사는 일본인의 집으로 옮겼던 것을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부도는 고려 시대 부도의 정형으로서 보물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은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오주석 기자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오주석 기자

그리고 절터에서 약 30m 아래에는 높이 9.6m의 거대한 미완성품 당간지주가 있는데 돌을 운반하던 남매 장사 중 남동생이 죽게 되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하며, 남동생이 옮겨오다가 둔 하나의 지주는 지금도 현계산 동남쪽에 있다고 한다.

원주 거돈사지에는 수령 천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오주석 기자
원주 거돈사지에는 수령 천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오주석 기자

거돈사터를 지켜온 느티나무는 천년 수령에 7.2m의 몸 둘레를 자랑하고 있으며 대찰이었던 거돈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이 느티나무만 알고 있다.

 

흥법사지

원주 흥법사지 전경, 오주석 기자
원주 흥법사지 전경, 오주석 기자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터였으나 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경작지로 변했다.

고려사에는 937년(태조 20) 당시 왕사였던 진공대사 충담이 입적하자 940년 진공대사의 부도가 있는 원주 영봉산 흥법사에 태조가 직접 비문을 지어 진공대사탑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흥법사가 신라 때부터 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오주석 기자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오주석 기자

흥법사의 폐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삼층석탑(보물 464호), 진공대사탑(보물 365호), 진공대사탑비, 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104호)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보물 463호)만 남아 있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는 귀부 및 이수만 남아 있다. 오주석 기자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오주석 기자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비문의 탁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비문의 탁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인 1931년 염거화상탑은 서울의 탑골공원으로 옮겨지고 진공대사탑과 진공대사탑비의 비신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을 되찾아 지금은 3점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승탑과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있다. 오주석 기자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승탑(우)과 염거화상승탑(좌)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 있다. 오주석 기자

 

폐사지처럼 산다  (詩 정호승 시인)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서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 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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