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 부부의 지독한 사랑!
직박구리 부부의 지독한 사랑!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5.20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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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이 손톱 밑의 가시가 되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앓이다.
“거 봐요 사랑에 빠졌다니까요?”
삐죽삐죽 몸을 일으키던 잔디가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잔지밭 위에서 열애에 빠진 직박구리 부부. 이원선 기자
잔지밭 위에서 열애에 빠진 직박구리 부부. 이원선 기자

나이에 밀려 백수가 된지도 여러 날이다. 그동안 쫓기던 시간들이 이제는 남아돈다. 시간 죽이기를 궁리 끝에 신천 걷기를 택했다. 이른 아침식사를 끝내고 카메라를 챙겨들면 2시간 정도는 너끈하다. 카메라를 꼭꼭 챙기는 건 사진을 처음 배울 당시 사진 잘 찍는 방법 중 하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여름날이었다. 퇴근 후 태양이 서산으로 설핏 기울 즘에 신천에서 놀던 수달을 만났지만 기록에 남기지 못했다. 당시 물위를 미끄러져 가던 수달은 빈손인 나를 향해 비웃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몸통 돌리기까지 선보였다.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손톱 밑의 가시가 되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앓이한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카메라는 항상 휴대한다. 어떻게 보면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휴대폰이 있는데 유별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 스피드와 게임의 능력을 과시했다면 지금은 사진의 능력을 과시하는 휴대폰이다. 화소와 줌 기능이 기존 카메라에 못지 않은데 왜 터부시하나 항변인 듯싶다. 게다가 현관을 나서는데 비까지 흩뿌려 우산까지 준비하란다. 난감지경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우산을 비스듬하게 챙겨든다.

신천에 도착하자 짙은 안개는 앞산을 지우개로 지운 듯하고 수면은 거울처럼 매끈하다. 늘 하던대로 희망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언제 맡아도 물비린내를 품은 신천의 향기는 시선하다. 하루살이무리가 눈앞을 어지럽히지만 과히 싫지는 않다. 마스크로 인해 숨이 가쁘다 싶으면 왜가리의 꽁무니를 쫓고, 심심타 싶으면 백로의 피라미 사냥장면을 구경하면 된다. 결코 지겹지 않은 아침 산책길이다. 혼자서 터벅터벅 걷는 길은 희망교를 넘어 신천의 서쪽둔치를 내쳐 대봉교로 행했고 신천술래잡이(숨바꼭질) 놀이터공사 현장의 끝 지점에 이르렀을 때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실로 뜻밖의 광경이었다. 2개의 검은 물체가 푸른 잔디위에 너부러져 있었고 정체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짙은 회색빛이 온몸에 진득한 걸로 보아 분명 ‘직박구리’란 새였다. 악다구니가 강한 새로 정평이 났으면 대담하기가 짝이 없는 새다. 까마귀가 독수리를 몰아낸다면 직박구리는 그런 까마귀를 몰아내는 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깡패 새’다. 생김새조차 흉측해보여 어디를 가던 환영받지 못하고 밉상은 도맡아 놓은 새다. 하지만 아무리 못났어도 100개 중 1개쯤은 장점이 있다. 역광에 비치는 녀석의 날개는 과히 환상적으로 새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황금날개’라 극찬이다.

그런 직박구리 두 마리가 빗방울이 흩뿌린 차디찬 잔디밭 위에 죽은 듯이 나란히 누워있는 것이다. 정말로 죽은 것일까? 죽음이란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자 구름 낀 하늘처럼 까닭 없는 슬픔이 가슴가득 서린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태어났다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더 슬픈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남편이 아프다는 소리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든 유골상자 앞에서 “잘 가란 인사도 못하고 얼굴 한번 쓰 담질 못 했는데...”하고 울부짖는 어느 할머니처럼 말이다. 한낱 조류의 죽음에 불과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죽음 또한 존엄해야할 엄연한 죽음이다. 사람이라면 장사라도 치를 텐데 가엽어서 어떻게 한다.

발걸음이 좀체 떨어지질 않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또 흘렀을까? 죽은 듯 보이던 녀석들의 몸에서 미미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팔딱팔딱 가슴위로 가는 숨결이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다 죽어가는 가 보다” 아니면 부부 중 한 쪽이 죽어가는 듯, 그도 아니면 동료 중 한쪽이 죽어 가는 듯 보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파르르’떠는 날갯죽지에서 연민의 정이 두께를 더해 또 다른 슬픔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울컥한다.

문득 텔레비전을 통해 본 원숭이와 오랑우탄의 자식사랑과 부부애, 동료애의 재현인 듯싶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껴안아 젖을 물리고, 볼을 비비고, 어르고 달래기를 근 삼사일 간, 그제야 미동도 없는 시신 앞에 죽음을 인정하고 땅에다 고이 내려놓는다. 그 뿐만 아니라 배우자나 동료의 죽음 앞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자리를 뜨지 못하는 장면들이 뒤이어 주마등처럼 겹친 것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숭고한 죽음 잎에 카메라조차 들이밀기가 뭣하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지만 아랑곳 않는다. 이원선 기자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지만 아랑곳 않는다. 이원선 기자

이제 저들의 죽음을 어떻게 하나, 고민이 깊어질 즘 아주머니 두 분이 지나가다가 보고는 “뭐 예요?” 묻는다. 시선은 ‘직박구리’에 고정한 채 “두 마리가 죽어 가는지, 아니면 한 마리의 죽음을 다른 한 마리가 깨우는지 모르겠네요!”하자 “거 별일이네!”하며 한참을 바라보더니 “아저씨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사랑에 빠졌네요! 콩깍지기 씌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래요!”하며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낸다. 아주머니의 답을 확인이라도 하는 듯 죽은 듯이 누워있던 두 녀석이 주둥이를 꽉 문채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몸을 뒤집는다.

“거 봐요 사랑에 빠졌다니까요?”

아주머니의 일침에 저기 당황스럽고 난감하다. 그럼 이들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에 빠졌단 말인가? 7일간의 달콤한 사랑 끝에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인 사랑 말이다. 아니면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백년해로의 행복한 사랑 같은지도 모른다.

악한 마음만 먹는 다면 눈앞에 펼쳐진 직박구리의 사랑쯤은 한 순간에 가장이 아닌 진짜 죽음으로 몰아갈 수가 있다. 두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직척의 거리에서의 사랑이다. 손만 뻗치면 한 손아귀에서 두 생명이 단박에 끊어 질수도 있는 거리다. 아무리 대담하고 자신만만하다지만 이는 죽음을 도외시한 사랑이다. “날 잡아 잡수세요!” 그들은 여전히 부리를 교차해서 입을 꽉 깨문 채 몸만 뒤척이며 퍼덕거리고 있다. 참 난감지경이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 저런 목숨 건 사랑을 해 봤을까? 신언서판을 벗어나고 재물, 명예, 가문을 벗어난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콩깍지를 덮어써 봤을까? 그러고 보면 한참이나 헛다리를 짚은 내가 한심스럽고 아주머니의 예리한 눈살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아가페(Agape)적 사랑, 에로스(Erōs)적 사랑, 스트로게(stroge)적 사랑, 필리아(philia)적 사랑, 플라토닉(platonic)적 사랑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랑 중 어느 것 하나 남자는 여자에 비해 둔감해서 비교가 안 된다. 정신연령으로 치면 적어도 4~6년은 뒤떨어져 보인다. 이는 유년시절 여자애가 남자애 손에다 슬며시 사탕을 건네주면 남자애는 한입에 날름 삼키고는 곧장 잊어버린다. 우정인 듯 순정의 표현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가 되면 여자애는 순정으로 받아들여 미래를 설계하는데 말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0여년이 지난 동기회에서 여자동기가 “너는 내가 중학교시절 내가 너에게 쪽지 보낸 것 봤어!”하고 물었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 설사 봤다고 해도 장난이려니 넘겼을 것이다. 헌데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확인까지 하려 든다. 둔감한 머스마(남자)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머쓱해서 머리만 긁적일 때 “다 지난 일인데...!” 얼버무린다. 지금이 딱 그 짝이다. 같은 장면에서 내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아주머니는 사랑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게 정 맞다. 머리 뒤가 왠지 뜨겁게 느껴진다.

슬며시 자리를 뜰 때를 같이하여 안개를 뚫은 햇살이 잔디밭을 훑어온다. 이미 주위는 하나둘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그제야 고개를 쭉 내밀에 주위를 훑어보던 두 녀석이 사랑이란 콩깍지를 벗었는지 앙다물었던 부리를 풀고는 포르르 날아오른다. 화려하게 펼쳐졌던 열애의 무대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잔디위에는 그들의 진한 여운이 찐득하게 남아 흐른다. 관객들이 떠나자 무대 위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삐죽삐죽 몸을 일으키던 잔디가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둘이 좋으면 좋았지! 아닌 밤중에 홍두께처럼 이 무슨 날벼락, 어휴 지독한 사랑이다. 하마터면 화상 입을 뻔했네!”

역광에 빛난 황금날개(연출 된 장면임). 이원선 기자
역광에 빛난 황금날개(연출 된 장면임).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