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맑고 향기로운 도량 길상사, 그리고 김영한과 백석의 러브스토리
⑪ 맑고 향기로운 도량 길상사, 그리고 김영한과 백석의 러브스토리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5.18 08: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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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과 백석의 이루지 못한 사랑
무소유의 실천,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사찰 「길상사」

◆ 김영한과 백석의 이루지 못한 사랑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길상사라는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 있다. 1997년에 세워졌으므로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최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설립 이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맑고 향기로운 사찰 길상사. 오주석 기자
맑고 향기로운 사찰 길상사 일주문. 오주석 기자

길상사는 한(恨) 많은 한 여인이 평생 모은 재산을 무소유의 실천을 행함으로써 맑고 향기로운 근본 도량으로 태어났다. 그 여인이 바로 김영한(1916∼1999)이다. 그는 열다섯 살에 결혼했으나 남편이 우물이 빠져 죽어 청상이 됐다. 갈 곳 없는 영한은 권번 기생으로 나섰다.

영한은 계란형의 미인으로 가무는 물론 시, 서화가 뛰어나 곧 최고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연히 당시의 많은 지식인이 그녀를 연모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뛰어난 재주를 아까워하던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를 후원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자 2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함흥으로 돌아왔다. 은인을 옥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고급 요정이 사찰로 변신한 길상사의 극락전. 오주석 기자
고급 요정이 사찰로 변신한 길상사의 극락전. 오주석 기자

그곳에서 그는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였던 백석(백기행) 시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둘은 만난 지 하루 만에 동거를 시작해 석 달 간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에 백석의 아버지는 아들을 영한으로부터 떼놓고는 다른 여자와 강제 혼인시켰으나, 백석은 혼인날 밤 도망쳐 먼저 서울로 와 있는 영한과 다시 만나 한동안 동거했다.

그러나 영한은 젊은 백석의 앞날을 걱정해 헤어지자고 했고, 그런 영한에게 백석은 러시아로 떠나자고 졸랐다. 이에 영한이 숨어버렸다. 마침내 백석은 혼자 러시아로 떠났고 둘은 영영 생이별해야 했다. 해방된 다음 백석은 북한으로 돌아왔다.

길상사는 사찰이라기 보다 도심 속의 공원이다. 오주석 기자
길상사는 사찰이라기보다 도심 속의 공원이다. 오주석 기자

그새 영한은 서울에서 요정을 열어 큰돈을 벌었다. 이후 영한은 ‘대원각’을 열어 1960, 70년대 막후에서 '요정정치 시대'를 펼쳐갔다. ‘대원각’은 당시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였고 지금의 ‘길상사’다.

영한은 살아 생전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 하루 동안 곡기를 끊고 방 안에 앉아 불경을 외우며 그를 기렸다고 한다. 또한 수억 원을 쾌척해 백석문학상을 제정, 문학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에 백석과 다하지 못한 이승의 사랑을 저승에서 잇고자 소원했다.

길상사 7층석탑과 관음보살상. 오주석 기자
길상사 7층석탑과 관음보살상. 관음보살상은 천주교인인 최종태 교수가 제작하여 기증했다. 오주석 기자

◆ 무소유의 실천,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사찰 ‘길상사’

1987년 영한은 미국에 있던 법정 스님을 찾아 그의 전 재산을 쾌척하겠다고 했다. 당시 가격으로 1천억 원이 넘었다. 그러나 무소유의 삶을 살던 법정 스님은 이를 거절했다. 이후 무려 10년 동안 이어진 무소유의 실천 의지로 결국 대원각은 법정 스님이 머무는 암자의 본사인 송광사에 희사되었고, 길상사로 개사하기까지 송광사 서울분원이 되었다.

길상사. 오주석 기자
과거 대원각 요정의 기생들이 생활하던 작은 집에는 지금 스님이 계신다. 오주석 기자

1997년 길상사 개사식에서 영한은 "천억 재산이 어찌 백석의 시 한 줄에 비할 수 있으랴"고 고백함으로써 세기의 로맨스가 마침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길상사라는 이름은 개사식 때 미국에서 돌아온 법정이 영한에게 선물한 '길상화 보살'이라는 법명에서 유래한다.

길상화 보살(김영한)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인 1999년 11월 14일 목욕재계 후 길상사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시와 그리고 사람을 온 가슴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백석이 사랑한 자야를 노래한 시처럼 하얀 겨울에 눈이 내리던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졌다.

무소유를 주창한 법정스님이 계셨던 진영각에는 스님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오주석 기자
무소유를 주창한 법정스님이 계셨던 진영각에는 스님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오주석 기자

2010년 법정 스님도 여기서 입적했다. 법정 스님이 처음 출가하신 사찰인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다. 출가한 사찰과 한때나마 같은 이름을 사진 사찰에서 입적하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지금 길상사에는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가 있고, 사당에 김영한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진영각에 법정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와 길상화를 모신 사당. 오주석
길상사 창건주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와 길상화를 모신 사당. 오주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이 김영한을 위해 쓴 詩)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길상사 사찰 조감도. 오주석 기자
길상사 사찰 조감도. 오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