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날] 나루터의 노부부
[부부의날] 나루터의 노부부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0.05.20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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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푸르고 기념일도 많은 가정의 달이다. 그 중에서도 21일은 둘(2)이 하나 (1)가 된다는 부부의 날이다. 건강한 부부가 이루는 행복한 가정은 밝은 사회를 만든다.

2007년 5월, '부부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목적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를 널리 알리고, 건강한 가족문화를 정착하기 위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해마다 혼인율은 낮아지고, 이혼율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남녀 모두 40대에 이혼하는 경우가 두드러졌으며, 30년 이상 함께 산 부부들의 황혼 이혼도 이혼율의 도표를 높이는 데 한 몫을 했다고 한다.

황혼 이혼이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자식들을 중심으로 영위되던 부부 관계는 노후엔 부부 중심으로 바뀐다. 은퇴 후,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당혹감에 부딪히는 부부가 늘고 있다.  노후에도 부부가 원활하게 지낼 수 있는 경제적인 준비는 물론, 각종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으로 지혜롭게 함께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언젠가 강변에서 멋진 노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사문진 나루터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노부부가 타고 온 자동차(승합차) 안을 들여다 보니 뒷좌석을 없애고, 바닥을 편편하게 만들어 카펫을 깔아 방처럼 꾸며놓았다. 뒷칸에는 가재도구며 생필품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 몇 마디 질문을 해 보았다. 부부는 여행 중이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은퇴를 하고, 퇴직금으로 조그만 가게를 시작했어요. 남의 말만 듣고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은 1년을 겨우 버티다가 폐업을 하고 말았죠. 폐업 후 느낀 게 있다면 전문적인 지식도 없이 소일거리로 대충 하려던 안일함이 폐업을 앞당긴 것 같다는 겁니다. 몇 달째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삶의 충전이 필요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벼르던 여행길에 오른 겁니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나니 어느새 황혼이 되었습니다. 살기 바빠서 변변한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했어요. 집을 떠나 여행을 한지도 벌써 열흘이나  되었으니 말년에 이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허허." 

어쩌면 폐업의 쓴맛을 몰랐다면 여행길에 오르지 못했을 거라며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승합차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여행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둘이라서 견딜 수 있었고, 외롭지 않았다.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 된장국을 끓이고, 함께 갈매기사랑을 노래했다. 파도소리 들으며 신새벽을 맞으면, 수평선 저 멀리 붉은 띠를 두른 여명을 보며 살아 있음에, 함께 있음에 감사했다.

'열심히 일한자 여행을 떠나라'는 CF 광고처럼 여지껏 성실히 살았으니 인생 2막은 자연을 벗삼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은 소박하지만 실현 가능한 희망 하나를 품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 길을 걸어온 그들의 뒷모습이 나루터의 석양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들과 헤어지며 '반 고흐'의 명언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전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