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날] 아흔 넘게 해로한 노부부 "여전히 사랑 넘쳐요~"
[부부의날] 아흔 넘게 해로한 노부부 "여전히 사랑 넘쳐요~"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0.05.20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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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8일 ‘어버이날’,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가자는 취지로 2007년에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특히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다(21)’는 뜻이 들어 있다니, 그 의미가 더 새로운 것 같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부산 수영구에 있는 한 아파트. 아흔 넘게 해로(偕老)하시는 노부부, 허호 할아버지(94)와 김명옥 할머니(92)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은발이 반짝이는 허호, 김명옥 부부가 오래된 친구처럼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허봉조 기자 
은발이 반짝이는 허호, 김명옥 부부가 오래된 친구처럼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허봉조 기자 

은발이 반짝이는 노부부는 오래된 친구처럼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두 분이 처음 만나신 것이 언제냐’는 기자의 첫 물음에, “스물 둘에 만났으니, 올해로 꼭 70년이 됐네요”라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귀가 조금 어두운 것을 빼고는 매우 건강하신 편으로, 척추와 허리가 꼿꼿했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느냐’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심심해서 하루에 두 번씩 밖으로 나가 걷기운동을 합니다”라며 빙그레 웃으셨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나가지는 못하고, 집에서 보행기를 밀고 다니며 운동을 합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놀러 오거나 TV를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몇 안 되는 꽃나무와 이야기를 하고 지냅니다”라고 하셨다.

역시 평소 운동에 관심을 갖고 계시니 이렇게 해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몇 가지 더 여쭤보기로 했다.

-만난 지 70년이 되셨다는데,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요?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을 다 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참 어려운 시절 아니었습니까. 온 식구가 연탄가스에 중독된 적도 있었고, 물이 귀해 도랑에서 빨래를 하고,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생활했던 이야기, 살기가 어려워 거지와 도둑이 득실거렸던 이야기를 다하려면 며칠이 걸려도 모자랄 겁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단칸방에서 옹크리고 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오래 살아서 그런지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은 눈처럼 녹아 추억이 되어버렸어요.

-슬하에 자녀는?
▶1남 3녀, 모두 예순을 넘었어요. 손자손녀가 여섯이고, 예쁜 증손녀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떨어져 살고 있어서 보고 싶을 때 볼 수가 없으니,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큰딸과 아들은 서울에, 둘째딸은 대구에, 막내딸은 더 멀리 프랑스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꼼지락거리며 끓여먹고 있는데….

-아직 건강하신 것 같은데, 장수의 비결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음, 그런 건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자식들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 비결이라면 몰라도. 요즘은 예전보다 병원에도 자주 다니고, 먹는 약도 종류가 많아요. 오래 쓰면 기계도 고장이 나는데, 90년 넘게 썼으니 사람인들 고장이 안 나겠어요?

치매는 절대로 안 걸리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는 안 되겠지요. 이제는 말도 잘 안 나오고, 생각이 잘 안 나서 깜빡깜빡할 때가 많다니까요. 참,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원불교 교전 읽고, 가계부를 쓰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원불교 교당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손에 힘이 없지만 매일 글씨 쓰는 연습만은 빼놓지 않고 합니다.

은발이 반짝이는 허호, 김명옥 부부가 오래된 친구처럼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허봉조 기자 
김명옥 할머니는 꽃나무와 이야기를 하는 게 큰 즐거움이다. 허봉조 기자

 

-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인데, 젊은 부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과 앞으로의 희망은?

▶옛날에 비하면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 아닙니까.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보다는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을 실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데, 살다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서로 주장은 적게 하고, 믿을 수 있어야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된다니까요.

90살이 넘고 보니, 너무 오래 산 것 같지요.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영감님과 한 날 한 시에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자식들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게 제일 큰 희망입니다. 오래 아프지 않고, 잘 죽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할머니가 주로 대답을 하시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웃고 계셨다. 아흔이 넘은 노부부의 밝은 표정은 구수한 된장찌개보다 새콤달콤한 겉절이 같은 맛이었다. “다시 살아보라고 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얼굴을 붉히는, 아직도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두 분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해드렸다.

“종일 집에 있으니, 누구라도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는 것이 제일 고맙다”고 하시는 노부부는 기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문 앞에 서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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