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대구 금호강(琴湖江)을 걷다 ③
봄날, 대구 금호강(琴湖江)을 걷다 ③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5.18 10: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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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교에서 노곡교(하중도)까지 걷다

5월의 둘째 수요일 오후, 대구 금호강 공항교에서 노곡교 구간(10.5 km)을 걷다. 금호강은 이 구간에서 대구종합유통단지와 검단공단을 안고 돌아 신천을 흡수해서 낙동강으로 내려간다.

복현오거리에서 노선버스(719)를 타고 복현 우방아파트 입구에 하차하여 공항교 우측으로 내려가다. 잔디 공원을 지나 강가 보행로를 따라서 금호2교로 향하는데, 군데 군데에서 날파리 떼들이 달려들어 방해한다. 이곳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채소밭이 널려 있었는데, 아직도 잔해들이 왕옥산(王屋山) 하식애(河蝕崖)에 남아 있다. 남북으로 뻗은 해발 200여 미터의 왕옥산에는 삼한시대의 토성(검단토성, 檢丹土城)이 있었다고 한다.

왕옥산과 금호강(상), 압로정(하). 정신교 기자
왕옥산과 금호강(상), 압로정(하). 정신교 기자

불로천과 만나는 여울에 백로와 왜가리가 상념에 잠겨 있다. 좌측 산 중턱, 회화나무 거목 아래에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1529~1584) 선생이 건립하고 강학하였다는 압로정(狎鷺亭)이 보인다. 부근에는 송담 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있으며 인천 채씨 문중에서 정자를 새로 단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압로정(狎鷺亭)에서

비파강 유유자적 왕옥산 검단토성

불로천 합수하는 회화나무 정자 아래

팔공산 조망하는 천하명당 배움 자리

庚子年 雨人

 

고수부지에 경작금지의 팻말이 서 있건만, 군데군데 임시로 마련한 텃밭에 노인들이 보인다. 대파 밭에 주저앉아 웬 중늙은이가 부른다.

“아저씨, 내 손 좀 잡아 당겨서 일으켜 주시오!”

나이 들어 밭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주저앉은 노인의 심정을 모른다.

‘손이 따뜻하네. 얼마 만에 사람 손을 잡아보지? 그놈의 코로나 덕분에…’

민들레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이내 금호2교(2km)가 나오고 다리 아래 자전거족들이 쉬고 있다. 팔공산을 바라보고 약 1km 정도 금호1교로 향해 가니 강물이 절벽에 막혀서 기역자로 방향을 틀어 서진한다. ‘물은 강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의 법칙이다. 하식애 지형은 무태까지 거의 십리에 걸쳐 있는데, 예전에는 나룻배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이른 봄 진달래와 복사꽃이 피는 언덕이 그대로 강물에 투영된다고 하여 화전담(花田潭)에서 화담(花潭)이 되었다. 북구청에서는 동변동 화담산 일대에 주민들이 피크닉과 일광욕,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숲과 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금호강 하식애 지형(상)과 화담마을(하). 정신교 기자
금호강 하식애 지형(상)과 화담마을(하). 정신교 기자

좌측 고수부지에는 야구장과 축구장, 파크골프장들이 잘 정비되어 있고, 오토캠핑장에서는 바베큐 냄새가 솔솔 난다. 금호1교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산격대교를 지나서 무태교로 향했다. 산격대교는 외곽지에서 대구종합유통단지로 진입하는 관문으로 국우터널이 생기고, 연경 지구가 개발되면서 자주 교통 체증이 일어나고 있다.

검단 고수부지 파크골프장(상)과 오토캠핑장(하). 정신교 기자
검단 고수부지 파크골프장(상)과 오토캠핑장(하). 정신교 기자

해는 이미 기울어서 거의 한 뼘 정도 남겨 두고 바쁘게 서산으로 달려가고 있다. 무태교 교각 아래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신천과 금호강이 합세한 기류가 좁은 교각을 비집고 힘들게 빠져 나오느라 애쓰는 소리다. 침산 잠수교에서 금호강으로 들어가는 신천에서 “펄쩍”, 잉어가 뛰어 오른다. 1980년대에 금호강은 죽음의 강으로 불릴 만큼 오염이 심했는데, 이제는 붕어와 잉어, 수달이 살 정도로 정화되었다. 며칠 전만 해도 노란 풍광을 자랑하던 갓꽃 무리는 이제 키만 무성하다. 곤두박질치듯 서산으로 달려가는 태양을 따라 서변대교와 조야교를 바삐 지나니 고관절이 뻐근하다.

무태교(상)와 신천(하)의 금호강. 정신교 기자
무태교(상)와 신천(하)의 금호강. 정신교 기자

오후 7시 10분, 노곡교에 이르니 해는 방금 넘어가고, 유채꽃이 화려하던 하중도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화려함 뒤에는 누군가의 노고가 따르는 법이다. 팔공산이 묵묵히 지켜보는 가운데 강물은 조용히 제 길을 가고 있는데, 왜가리 두 마리가 저녁거리를 찾느라 넋을 놓고 있다.

노곡교에서의 금호강 일몰. 정신교 기자
노곡교에서의 금호강 일몰. 정신교 기자

노곡교에서 공단길로 나와서 노원로 횡단보도를 건너니 만두집에서 김이 무럭무럭 난다. 간식거리를 주문하고 잠시 여정을 정리해 본다.

오후 4시 40분에 시작해서 2.5시간 동안 8개의 교량을 지나고 10.5 km, 14,000보를 걷고, 검단토성과 압로정, 화담과 신천, 하중도 일몰을 감상하다.

금호강 공항교에서 노곡교 구간 약도. 정신교 기자
금호강 공항교에서 노곡교 구간 약도. 정신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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