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60)-군종 스님의 포경수술
녹슨 철모 (60)-군종 스님의 포경수술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5.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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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도지던 태원의 우울증이 몇 해 동안 뜸한가 했더니 올 가을은 유독 태원을 괴롭혔다. 그가 배운 정신과 병리학을 떠올리며 스스로 진단을 해보았다. 그의 우울증은 조울증의 단극성 우울증일까? 혹은 신경증적 우울? 그러나 썩 옳은 진단 같지는 않았다. 가치 있는 대상의 상실에서 오는 신경증적 우울? 스스로 자신의 정신상태를 되짚어보는 이유는 그를 괴롭히는 증상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그의 노력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전문의가 아닌 그로서는 진단도 확실하게 붙이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치료에 대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선영이 있었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하자 갑자기 가슴이 뛰며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왜 그녀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을까? 아직 확인할 수가 없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만난 선배의 말 속에도 뭔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렇게 뭔가 간질간질한 재채기가 나기 전의 느낌은 안 좋은 일이 진행될 때 느끼는 태원 특유의 신체적 신호였다.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그리고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린다. 꿈자리가 어지럽다. 하지만 조금 더 참고 보자. 정 안 되면 야전병원 정신과 선배를 한 번 찾아가 모든 이야기를 터놓고 의논해보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의무실에서 태원이 포경수술을 하고 있었다. 환자는 의무대 뒤에 자리잡고 있는 절의 주지였다. 여기는 군대니까 정확하게 호칭하자면 송 대위 혹은 송 법사라고 해야 옳았다.

“법사님은 포경이니까 수술을 하셔야 해요.”

“포경수술은 무엇 때문에 권하세요, 실장님?"

“저도 법사님이 동진출가한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스님이라도 여기서는 고기도 드시고 술도 마시고 하잖아요. 그리고 앞으론 오입도 하시게 될 거고요.”

"그래, 수술하면 어떤 점이 좋은데요.”

법사도 썩 거절할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우선 오래할 수 있어요. 껍질이 덮여 있으면 귀두가 보드라워져 자극에 민감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조루가 돼요. 그리고 성병 예방에도 도움이 되죠. 덮여 있으면 지저분해지기 쉬워 감염이 잘 돼요. 그리고 부부생활하는 사람들은 남편의 치후(귀두에 끼인 때)가 여성의 질에 많이 들어가면 나중에 자궁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어요.”

"나야, 뭐 마누라가 있나.”

"지금이야 그렇지만 앞으론 모르잖아요?"

“하여간 오신 김에 잘라냅시다.”

태원은 손 솜씨가 좋아 비록 비뇨기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자그마한 수술은 깨끗하게 잘 한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게다가 그의 포경수술 솜씨는 군단 내에서 잘 알려져 있어 여러 장교들의 그것들도 그의 칼에 날아갔다. 태원은 꼭 스님을 수술해주고 싶었다. 성직자가 무슨 특권층처럼 신비감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꼴도 보기 싫고, 도가 높은 신부나 중이라면 그까짓 오입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포경수술을 권하는 건 앞으로 여색을 가까이 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남녀의 친밀함의 끝은 성교에 이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많은 성자가 그들의 성욕을 참았다는 기록은 많지만 그들이 여자 자체를 싫어했다는 말은 없다. 남자는 여자를 좋아해야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하고 말고는 각자의 자유다’ 라고 태원은 생각하였다. 성직자의 수술이니까 예우를 하는 차원에서 실시했다. 즉 조수로 평소 위생병에서 이번에는 박 하사를 세웠다.

 

박 하사는 능숙한 솜씨로 송 대위의 음경 위에 둥근 구멍이 난 푸른색 포를 씌웠다. 귀두를 싸고 있는 살 껍질을 뒤로 젖히고 국소마취를 한 뒤 태원을 쳐다봤다. 사실 박 하사가 시술한 포경수술 건수는 태원보다 많았다. 태원의 지시로 되도록 많은 수의 사병에게 자료가 돌아가는 한 많이 ‘까주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수술 건수가 더 많은 것이다. 하지만 장교들은 이런 사실은 잘 모르니까 의사인 태원에게 수술받기를 원했다. 그가 태원을 쳐다본 것은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제가 할까요?” 라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태원은 그 시선을 무시하고 “법사님, 시작합니다” 하고는 자신이 가위로 피부의 양쪽을 잘랐다. 그리고 잘라진 피부의 두 껍질을 가위로 잘라내었다. 피가 줄줄 새나왔다. 정맥 피이므로 튀어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기보다는 직경이 굵어 피가 제법 흘렀다. 박 하사가 거즈로 그 피를 닦아 시야를 확보하자 태원은 잘려진 정맥 들을 지혈감자로 모두 집었다. 그리고 그 감자를 박 하사가 잡자 태원이 실로 묶어 나갔다. 박 하사는 묶인 실을 가위로 잘랐다. 둘은 호흡이 항상 이렇게 척척 맞았다.

수술이 끝난 뒤 태원이 그의 진료실로 군승을 데리고 가서 칡차를 대접했다.

"아이고,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좋은 차는 어디서 구하셨어요?"

법사가 묻자 태원은 말없이 손으로 뒷산을 가리켰다. 송 대위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거긴 우리 법당이잖아요.”

“맞습니다. 법당 쪽이죠. 그 뒤로 조금 더 올라 산 정상에 가면 좋은 칡이 많죠. 그놈을 캐다가 이렇게 차로 만든 거예요.”

"그래, 장님들이나 참모님들은 좋아하세요?"

"그분들은 모르죠. 만약 안다면 전 혼납니다. 일과 중에 일하는 위생병과 쉬는 환자들 데리고 놀러 다녔다고. 그래서 전 캐온 칡을 얇게 잘라 말렸다가 그것들을 주전자에 넣어 하루 종일 끊이지요. 그리고 오는 사병들에게 한 잔씩 줍니다.”

"아, 그러니까 이번 군단장 표창의 비결은 바로 이 칡차에 있었던 거군요?"

송 대위는 웃으며 아부를 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렇기도 하네요. 하지만 장님들이 그만큼 사병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뜻이고 또 그분들도 그만큼 우리 애들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표창은 사병들이 시동을 걸고 윗분들이 운전을 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 군의관님은 장기복무하실 거예요?"

“아니, 스님 왜 그런 이상한 말씀을 하세요?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우리 부대 내에선 실장님이 군의관 이전에 장교의 FM이라고들 하잖아요. 출근 시간에 늦으신 일 없고 퇴근은 오히려 늦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았죠. 그리고 휴가도 간 적 없고, 소문에는 전방에서도 휴가 간 적이 없다더군요. 그리고 영내에 계실 땐 아침마다 병들과 구보를 같이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왜, 그러면 장기복무해야 합니까?"

태원은 약간 심기가 뒤틀려 말투가 삐딱해졌다.

“그런 건 아니죠. 참모들 이야기가 실장님은 학생운동도 했던 사람이라고들 하더군요. 그래서 처음 부대에 올 때 지휘부에선 군의관님에게 관심을 갖고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는군요. 물론 중앙정보부나 보안대나 헌병대에서도 말이죠. 불교 신자인 참모들에게 간혹 들은 이야기인데 군의관이 변한 건지 표시를 않는 건지 도무지 사회경력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아가서 '역시 의식 있는 놈이 더 나아'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군단장님도 은근히 실장님에게 호감을 갖고 계시고요. 특히 삼사 가신 부군단장님은 실장님을 매우 좋아하셨다는군요. 참모장님은 성질이 그래서 그렇지 이번 표창은 그분이 앞장서 상신하신 거라더군요.”

"글쎄요. 저도 군에 입대하면서 군바리들은 전부 무식한 놈들이다. 장교는 깡패와 정치꾼, 사병은 무지렁이에 빽 없고 돈 없는 놈들의 아들과 그 집단쯤으로 생각을 했죠.”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던가요?”

“네. 제가 책에서 보고 선배에게서 듣던 군인들에 대한 생각이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체험해보니 차이가 많더군요. 전방에서 어떤 장교들은 우리 애들이 전시에는 북괴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는 바람에 쓰레기짓을 한 거고요. 전방에서 군인 대접 해주고 사람 대접 해주니까 그들은 군인으로서 사람으로서 제 구실들을 다 하더라고요. 군단에 와서 직접 고급 장교들과 장군들을 가까이 모시고 몇 달 살아보니까 그분들 역시 단순하고 저돌적이며 독선적인 면이 다분히 있더군요. 때로는 억지 쓰고 유치한 짓도 하고 뭐 그런 웃기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분들도 뿌리를 보면 제가 전방에서 본 무학자, 깡패, 데모꾼 같은 사병들과 같은 계층 출신들이더라고요. 즉 사회에서 밑바닥의 돈 없고 빽 없는 기층세력의 자녀들에 지나지 않아요. 다시 말하자면 잘 먹고 잘사는 집 출신은 없어요. 다만 그들은 머리가 좋거나 또는 남보다 부지런한 덕에 육군사관학교나 갑종이나 삼사를 나와 장교가 되었을 뿐이지 질적으로는 전방이나 후방이나 모든 직업군인은 한 색깔이더군요.”

"그럼 군의관님은 입대 후 생각이 바뀐 건가요?"

“아니오. 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죠. ‘군인을 빙자한 정치적 군인들, 총칼을 이용한 독재는 역시 악이다’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많은 군인은 그렇지 않은데 밖에서는 이 사람들을 아무 줏대 없는 독재자의 하수인쯤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점은 새로 알게 된 거예요. 스님, 그런 이야기는 이쯤 하고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무슨 도움이 될까요? 수술하신 값을 할 테니 말씀해보세요.”

“제가 어떤 여자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 여자는 유부녀예요. 이런 경우 전 어떻게 해요? 저는 나쁜 놈인가요?"

태원이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태원은 자주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 버릇이 있어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는 경우가 있었다.

“뭐, 실장님 이야기라고요? 실장님은 'field manual(야전규범)이시잖아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죠.”

법사도 슬쩍 아는 체 모르는 체하며 대답을 해주었다.

“실장님의 질문은 시쳇말로 사랑이냐 불륜이냐는 말도 되고, 소유냐 삶이냐의 문제도 되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비유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랑이냐 불륜이냐는 본시가 서로 비유될 수 없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태원의 귀가 솔깃해졌다.

“비유로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사과가 좋아요 아니면 개가 좋아요?' 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죠. 당신은 사과가 좋아요, 배가 좋아요 라고 묻거나 혹은 개가 좋아요, 고양이가 좋아요 라고 물어야 그게 합리적인 질문이죠. 즉 사랑과 불륜은 전혀 같은 상한에서 비유할 그런 문제가 아니죠. 우리가 많이 본 주홍글씨를 예로 들면 의사 부인과 목사가 벌인 불륜의 이야기이죠. 그러나 그건 도덕이란 상한에서 평가하면 그렇지요. 하지만 그 일을 사랑이란 상한에서 놓고 보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해가 갑니다. 전 항상 마누라를 빼앗긴 의사 로저 칠링워스를 동정하고 외간 남자 딤즈데일 목사와 사귄 헤스터 프린을 죽일 연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일을 도덕이란 잣대를 버리고 사랑이란 잣대로 보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겠네요.”

"아유, 실장님도. 실장님의 독서량과 기억력은 우리 군단 전체에서 알아주는 분 아닙니까? 다 아시면서 소승을 이런 식으로 한 번 또 테스트해 보시는군요. 제 아랫도리가 슬슬 아파오네요.”

“오늘 법문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마취가 풀리려고 해서 그래요. 그럼 더 아프기 전에 법당으로 올라가세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마디 듣고 보내 드리지요. 소유냐 삶이냐와 그 사랑이야기는 어떻게 연결시킬까요?"

“아랫도리가 아파 생각이 잘 안 나네요. 그건 다음에 또 한 번 이야기해보죠”

송 대위는 법당 쪽으로 어기적어기적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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