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온 여인...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한밤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온 여인...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05.15 20:0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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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오랜 이웃이자 혼자 살고 있는 이웃집 여인이 찾아와 제안한다.
괜찮으면 우리집에 와서 같이 자면 안 되겠느냐고...

넷플리스(NETFLEX)의 소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 컷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의 한 장면.

길고 긴 칩거의 시간동안 답답함과 우울함을 푸는 방법을 나름대로 모색하며 살았을 것이다. 산책, 신문이나 책읽기, 카톡방과 유튜브도 들락거려 보지만 그 모두도 심드렁할 때 슬금슬금 지루함과 무료함이 고개 든다. 다 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고 싶다.

그런데? 그럴 땐 TV 앞에 앉아 영화 한 편을 골라 보면 어떨까. 앉은 자리에서 시공간을 떠나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남짓,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들의 삶에 몰입하다 보면 때론 멀리 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일상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 하나를 얻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며, 빠르게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한다.

요즘 영화 마니아들에게 인기있는 플랫품 넷플릭스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찾아 보자. 넷플릭스에서는 영화 뿐만 아니라 TV프로그램, 오락, 연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검색을 하다 ‘밤에 우리 영혼은’ 이라는, 영화라기엔 묘하게 어색한 제목이 눈에 띈다. 2017년 작품. 감독은 리테쉬 바트라. 원작은 켄트 하루프(1943~2014)의 동명 소설이다. 제인 폰다(1937~ )와 로버트 레드포드(1936~ ) 주연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초원의 밤, 축음기에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걸어 놓고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를 감겨주던 ‘데니스’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환상이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두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 컷
'밤에 우리 영혼은'의 한 장면.

낡고 작은 식탁에서 신문을 뒤적이는 노인의 방. TV에선 끊임없이 일기예보 방송이 지직대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같은 블록에 사는 ‘에디 무어’가 성큼 들어선다.

어색하게 마주 앉은 두 사람. 오래 전에 사별하고 혼자 살아 가는 이웃이지만 서로 교류가 없었던 ‘루이스 워터스’에게 ‘에디’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청혼은 아니고(그렇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지도 너무 오래 됐어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을까 하고, 이야기도 하고..., 섹스 이야기가 아니고 밤을 견뎌 내는 거 누군가와 함께 침대에 누워 나란히 밤을 보내는 거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이런 발칙한 제안에 생각해 보겠노라는 답으로 ‘루스’는 ‘에디’를 보낸다.

날이 밝아 오래된 친구들과 까페에 앉아 잡담을 해보지만 무료하긴 마찬가지. ‘루스’는 죽은 아내가 남겨둔 묵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에디’와 약속한다. 내일밤 가겠노라고. 이렇게 놀랍고 다른 사람에게 이해 받을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두 사람의 이야기 기둥 줄거리이다.  

첫 번째 밤

양치를 하고 셔츠를 고르고 잠옷을 쇼핑백에 넣어 들고 인적없는 거리를 건너 그녀의 집 뒷문을 두드린다. 왜 뒷문으로 와요? 사람들이 수군댈 수도 있잖아요.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이웃으로 수십 년 살아왔지만 그들은 사실 아는 게 별로 없다. 와인잔을 앞에 두고도 할 말이 없다. 집구경을 하겠느냐고 에디가 묻는다. 48년이나 된 집, 2층에는 11살에 교통 사고로 죽은 딸 코니의 방, 아들 진의 방, 부부가 쓰던 침실이었다. 이상한 상황에서 침대에 몸을 뉘어 보지만 루스는 잠이 쉬 오지 않는다. 불을 끄고 에디는 곧 잠이 들지만...루스는 다음날 아침 쇼핑백을 들고 돌아 온다.

돌아와서 퍼즐 맞추기를 하고 TV를 켜두고 맥주를 마셔 보지만 하루가 무료하긴 마찬가지. 저녁이 되자 루스는 다시 쇼핑백을 들고 길을 건넌다.

두 번째 밤

잠옷을 두고가지 않아서 이제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에디의 말에 너무 뻔뻔해 보일까봐 가져 갔다고 말하는 루스. 에디가 말한다. 난 늘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주관이 확실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들의 삶을 생각하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다음번에 뒷문 말고 현관으로 들어오세요. 난 평생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세 번째 밤

구겨진 종이백을 들고 뒷문을 두드리는 루스를 내다 보던 에디는 매몰차게 커튼을 닫고 돌아선다. 발길을 돌려 현관 초인종을 누르는 루스를 에디가 환하게 맞는다. 이제 그 여자 얘기를 해 봐요. 수십 년 전 마을을 떠돌던 루스의 불륜에 대해 묻는다. 딸 하나를 낳고 살던 젊은 시절 아내와 다툼이 잦을 때였어요. 싸움 끝에 집을 뛰쳐 나가 그녀의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함께 2주를 지냈어요. 어느날 그녀와 그녀의 딸과 저녁을 먹는데 자신이 갑자기 역겹게 느껴져요.

그날밤 집으로 돌아 갔어요. 아내보다 그녀에게 상처준 게 더 미안했어요. 평생 누구에게도, 심지어 함께 살다 죽은 아내에게조차 말해본적 없는 한때의 일탈과 자책을 그날밤 에디에게 털어 놓는다. 암으로 오래 고생하는 아내를 보내며 난 아내의 영혼이 떠나 가는 걸 보고 싶었소. 그런데 아직도 아내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아요....

밤을 함께 보내며 마음을 잇댄 자리에, 얼어붙어 있던 마음 속 상처와 가족간의 문제들이 하나 둘 흘러 나온다. 무거운 죄책감과 후회,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채 어린 아들에게 주었던 상처이다. 해결하지 못한 채 봉인돼어 있던 부부간의 문제들이 말이 되어 풀려 나온다. 얼음장 밑을 졸졸 흐르는 봄물에 강물 전체가 풀려 흐르듯 두 사람의 힘들었던 시간도 차츰 풀려 나간다.

'밤에우리 영혼은' 스틸 컷
'밤에우리 영혼은'의 한 장면.

에디의 7살짜리 손자 제이미의 등장. 평생 원망을 달고 살았던 아들의 분노. 분노의 뿌리에 대한 뒤늦은 알아차림. 손주 제이미를 위해 입양한 반려견 보니를 가족으로 맞는 과정. 루스의 외동딸과의 조우. 에디의 부상. 오래된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 에디와 루스, 손주 제이미와 반려견 보니와 함께한 여행. 비로소 가지게 된 따뜻한 교류. 둘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홀로 된 아들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손주를 돌보기 위해 떠나는 에디의 선택. 아들 진에게로 간 에디의 일상은 새로 시작된다.  아들 진과 손자 제이미의 생활에는 윤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홀로 남겨진 루스는 화구를 장만하고  오래 전 자신의 꿈이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손주 제이미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침대로 돌아온 에디. 어둠 속에서 신호음이 들리고 둘은 수화기를 통해 얘기를 나눈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느냐고. 대화는 어떠냐고. 날씨 얘기라도 하면 어떻겠냐고.... 두 사람의 표정에 환하게 깃든 미소. 마치 영혼의 불빛이 들어온것 같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 삶의 내용들은 각자의 얼굴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어 의심치 않고 선택하며 비난 받지 않을 만한 답. 그 답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정답이라 믿고하는 선택. 어쩌면 우리 내면에는 그런 습관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그 선택을 하지 않는 노년의 두 주인공을 보며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의 완결 되지 않은 듯한 문장에 새로운 문장 하나를 덧대게 될지 모르겠다.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지만 떠나 보라고.

소품이지만 깔끔한 수작이다. 노년에 두 명배우의 연기를 보는 커다란 기쁨도 누릴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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