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도 문도 없어요...신천둔치 '자전거 카페'를 아시나요
지붕도 문도 없어요...신천둔치 '자전거 카페'를 아시나요
  • 김영근 기자
  • 승인 2020.05.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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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교~칠성교 사이 고가도로 하단 신천둔치
노인들 모여서 놀고 있는 광장에 이색 카페

코로나19 여파로 한동안 열지 않던 '카페'가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가정에서만 생활하던 시민들이 평상시 모여서 장기, 바둑을 두며 하루를 보내던 카페에 다시 모인다. 대구 북구 경대교와 칠성교 사이 신천고가도로 하단(북구 칠성시장로 52) 신천둔치에 있는 '카페'이다.

이 카페는 좀 색다르다. 지붕도 기둥도 문도 없는 '자전거 카페'이다. 커피를 만들 재료와 도구를 자전거에 싣고 와서 즉석에서 커피를 제조하여 판매한다.

자전거 카페에서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영근 기자
자전거 카페에서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영근 기자

건물의 실내에서 판매하면 사서 야외나 벤치에 앉아 먹는 게 보통이지만, 이곳은 기둥도, 바람막이 칸도 없는 넓은 공터에 자전거가 매장이다. 음료를 판매하는 곳이 없는 신천둔지에 있는 유일한 커피점으로 60대 여성 한 분이 매일 나와 비가 오는 날도 손님을 기다린다.

신천둔치 광장에는 매일 50~60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운동을 하거나,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낸다. 차를 마시고 싶으면 자전거 카페 주인에게 손짓만 하면 1잔 500~1천원 하는 커피를 배달해준다. 광장에 오는 분들은 가격이 저렴해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커피로 인정을 나누고 안부를 물으며 대화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150평 정도 되는 둔치 공터에는 주민 건강증진을 위해 지압길, 철봉, 평행봉, 구름사다리 등 여러 종류의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운동기구 이용보다 내기 장기나 바둑을 두어 커피를 대접받는 걸 더 좋아한다. 장기나 바둑을 두는 사람은 이기기 위해 자기의 작전을 쓰고 있지만 곁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바둑이나 장기 실력이 좋은 사람은 주변에 모여 구경하는 사람들의 수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비가 내리거나 기온이 낮아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중형 텐트 2동이 마련되어 있다.

실버들이 바둑을 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김영근 기자
시민들이 바둑을 두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영근 기자

이런 휴식공간에서 실버들에게는 장기나 바둑두기가 유일한 낙인 것 같다. 집이 가까운 분은 걸어서 오고 멀리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분도 있다. 만나는 친구끼리 적수가 되는 사람과 짝을 이루어 아침 10시경부터 저녁 어둠이 올 때까지 게임을 한다. 해질 무렵이 되어 한 사람이 그만하자고 해도 "이번만, 한 판만" 하는 말이 몇 번이고 나온다. 잠시의 시간도 아낀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여도 잠깐 참으라 하며 눌러앉힌다. 결국 패한 사람이 아쉬운 듯 손을 높이 들어 커피를 주문하여 이긴 사람에게 대접한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바쁠 때는 카페까지 갈 여유가 없다. 큰 돈이 아니니까 몇 판이고 계속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기분 문제이고 돈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시간도 정하지 않고 한다. 다른 특별한 일이 없으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이곳에서 친구와 장기, 바둑을 두고 카페를 이용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 판이 끝나면 쉬는 겸 머리를 식히면서 커피를 팔아주기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반가운 인사로 커피를 사서 같이 드시며 옛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오거나 주변의 자동차 소리가 시끄러우면 멀리 있는 카페 주인에게까지 전달이 안 되기도 한다. “왜, 나는 커피 시켜도 안 주느냐"고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주문을 안 받아준 것에 마음이 상하여 "앞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조용한 시간이면 카페 사장이 쉬고 있는 분의 곁에 가서 “커피 한 잔 안 하셔요” 하며 권하기도 한다. 그제서야 본인이 속이 상했던 이야기를 한다. 사장은 “내가 못 들어서 그랬어요. 마음 푸세요. 다음에 잘해 드릴 게요” 하고 사과한다. 

오락기구나 광장을 이용하는 분들이 담배꽁초를 그냥 버리기도 한다. 주변에 재떨이가 없다. 카페 사장은 오시는 분들이 신경쓰지 않고 잘 놀다가 가시고 내일 또 오라는 뜻으로 넓은 광장 담배꽁초, 빈 담뱃갑, 오물을 빗자루로 쓸어 담아 버린다. 사장은 “내가 좀 수고를 더하면 되지요” 하면서 쓰레기 청소를 매일 한다고 했다. 

내일을 기약하라는 신호로 주변이 어두워지자 카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뒷 정리 및 청소를 하시는 카페 주인 김영근 기자
뒷정리와 청소를 하는 카페 주인.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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