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의 그늘, 폐지 줍는 할머니
노인복지의 그늘, 폐지 줍는 할머니
  • 김정호 기자
  • 승인 2020.05.08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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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들
폐지 줍는 할머니
폐지 줍는 할머니가 수레를 밀고 있다.  김정호 기자

 

완만한 경사로를 힘겹게 유모차를 밀고 간다. 혼자 걷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연세에 유모차에 폐지를 가득 실었다. 뒤뚱뒤뚱 곧 쓰러질 듯하지만, 용케도 잘 밀고 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얼마나 피곤하실까 싶지만, 이 일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실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마스크는 착용하였으나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 때가 꼬질꼬질하다. 마스크 한 장이라도 마음 놓고 살 형편이 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저렇게 힘들게 일을 하지만, 하루 벌이는 고작 1만 원도 못 되는 돈을 손에 쥔다고 한다.

김말여(84·대구 북구 태전동) 할머니는 폐지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일이 힘들어짐을 느낀다. 폐짓값도 옛날하고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박스 등 일반 폐지는 kg당 50원이고, 신문지 헌책 등 고급폐지는 60원 받고 인근 자원센터에 넘긴다. 하루 100kg을 주워 모았다 해도 5천 원 남짓하다. 그러나 하루 파지 100kg을 주워 모으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쩌다 만나는 고철은 kg당 250원 하지만, 고철이나 양은 제품의 폐품을 줍는 일도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서 가물에 콩 나듯이 만날 뿐이다.

어쩌다 골목길 쓰레기더미에서 소주병과 맥주병이라도 만나는 횡재하는 날이다. 소주병은 1개에 100원, 맥주병은 130, 150원을 받는다. 약간의 무게는 있으나 부피가 적어서 많이만 발견하면 제법 돈이 된다.

폐지를 줍는 일에도 경쟁이 있다. 워낙 경기가 좋지 않으니 노인들이 너도나도 리어카, 유모차를 끌고 골목 골목을 샅샅이 훑고 다닌다. 남보다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지역의 텃세 싸움도 가끔 일어난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동네 한 바퀴 돌면서 폐지 등을 줍고 나면 서너 시간 정도 걸린다. 아침 겸 점심으로 한술 뜨고 해질 무렵 또 서너 시간 정도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추위나 더위 따위는 헤아릴 틈도 없다. 이런 일도 날씨가 좋을 때나 가능하다. 어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공치는 날이다.

김 할머니는 노인들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병원비라고 한다. 국가에서 주는 경로수당 등 복지 혜택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두 노인네 입치레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집에 앓아 누워 있는 할아버지와 당신의 병원비라도 보탤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전업이 되었다고 씁쓸히 웃는다.

기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도 단골 할머니가 오신다. 두어 달 신문이나 헌책들을 모아 놓으면 라면 박스로 두 개 정도 모인다. 때 맞추어 찾아오는 할머니 얼굴에는 고마움이 잔뜩 묻어 있다. 매번 그냥 가져가기가 미안하신지 가끔은 요구르트 한 병을 주머니에 넣고 온다. 한사코 그러지 마시라고 하지만, 할머니 마음은 편치 않은 기색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 한다고 했다. 저 노인들이 여생을 편히 쉬시며 살아갈 그런 세상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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