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오늘날 어머니로 살아 간다는 것
[어버이날] 오늘날 어머니로 살아 간다는 것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05.07 21:1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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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를 아우르는 어머니가 되는 일은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일
세대와 문화가 교차하고 디지틀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혼돈의 자리

우리 인간은 태어 나서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역할을 하다 죽는다. 세상의 반이 남자라면 그 나머지 반인 여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딸로 태어나서 소녀, 처녀, 새댁, 며느리, 엄마를 거쳐 할머니가 된다. 그동안 부모와 시부모는 대부분의 경우 먼저 세상을 뜨게 되니 딸이나 며느리는 자동 소멸되고 끝까지 남는 호칭은 어머니와 할머니이다. 나이든 여자는 모두 할머니가 되니 자신의 정체성의 마지막 이름은 가족 내에서 불리는 어머니라는 호칭이 아니겠는가?

베이스캠프를 찾은 대원들. 강지윤 기자

 

‘인간은 모방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환경에 따라 역할을 다른 이들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처한 환경에 따라 본능적인 행동들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라 불리는 사진작가 최민식(1928~2013) 선생님의 사진에 보면 예닐곱살 먹은 소녀가 젖먹이 여동생을 들쳐없고 어머니 젖을 빨리는 장면이 있다. 이상하게도 여인은 축 늘어진 젖가슴만 내어주고 뻣뻣이 옆으로 서서 양손을 뒤에서 깍지 끼고 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여인은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사람이였다는 걸...

1960년대에 찍은 사진이었다. 전후 아수라장이 된 세상에서 젊은 어미가 잎에 풀칠을 위해 생선 좌판을 앞에 두고 팔다가 배곯는 젖먹이를 기르는 방법이었다. 본능적인 깨달음의 방식. 지금의 시니어 세대들은 직·간접으로 경험 했음직한 어머니의 자리이다. 조국 근대화의 이름으로, 도시로 올라와서 산업 현장으로 심지어는 머나먼 독일로도 떠나 가족을 돌본게 그녀들 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먹고 사는 일로부터 차츰 생활의 질을 추구하는 세태로 바뀌었다. 농경 사회, 산업 사회, 정보 사회를 넘어 디지틀에 기반을 둔 스마트 혁명에 까지 도달했다. 2010년 전후로 본격화 되기 시작한 흐름은 혁신 인프라로 사회 전반을 바꿔 놓았다. 교통, 교육, 의료 등 세상의 모든 길은 포털을 통해서라는 말이 맞는 말이 되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예전엔 오래 산 사람들이 많이 알고, 경험으로부터 얻은 그들의 지혜는 세상을 살아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서 경험 보다는 혁신이, 노인의 지혜보다 더 훌륭한 답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코로나19로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학교와 유치원과 어린이 집이 문을 닫고 맞벌이 자식들은 발을 구른다. 이때야말로 엄마 찬스가 필요한 때이다. 이집 저집에서 구원 요청이 들어오고 마음대로 나갈수도 없을 때 손주 손녀들을 데리고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여러 가지 놀이가 시작된다.

운이 좋게도 버려지지 않은채 남아있는 엄마 아빠가 읽던 동화책 소리내어 읽어 보기, 그 책을 읽던 시절 어린아이였던 엄마 아빠의 개구쟁이 좌충우돌기 흉보기, 오랫동안 기르던 반려견의 죽음의 과정 가만히 함께 지켜보며 죽음과 이별에 대해 자연그럽게 알게되기, 다육식물의 분가르기 함께하기. 화분 물주기, 자기네들의 필살기-유튜브 틀어 놓고 하는 힙합 댄스- 댄스 타임 감상하기, 타이밍이 맞으면 한 두집이 모여 기획 연출 출연자를 모두 겸하는 그네들의 기상천외한 복합공연의 열혈 관중되기, 끝말잇기 등 수많은 놀이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 나오고 함께하게 된다.

고여있는 물처럼 잔잔한 일상이 크게 요동치고 대식구의 끼니치레도 쉬운일은 아니지만 엄마 본능이 되살아나 활력이 돋아난다.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탓에 기사 송고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식들 손을 빌때의 그 열패감과 무능함에 대한 자책도 사라진다. 똑같은 질문 수도 없이 해대는 엄마를 향해 ‘엄마 처음하는 일이야 누구나 다 어렵지 그래도 엄마는 우리보다 잘하는게 훨씬 많잖아’하고 헤실헤실 웃어주는 딸도 있다. ‘컴퓨터 쉽게 배우기’ 유튜브 영상 엄마랑 공유 했다면서. 득달 같이 달려와 문제 해결사를 자처하는 아들은 여러번 질문하면 엄마 그냥 내가 해드릴게요 불러만 주세요 하고 얼렁 뚱땅 빠져 나간다.

내 생애 마지막까지 남은 역할 어머니는 이제 그리 심각하거나 엄숙하지 않다. 오히려 활력소가 되거나 도움을 주고 받는 새로운 장이 되는 것이다. 이름하여 베이스 캠프! 그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지쳐 돌아올 때 다음 행보를 위한 쉼터, 세대와 문화를 공유하고 내안의 작은 지혜들을 바쁘게 사는 자식들 대신 손주들과 나누는 일, 그들이 품고 있는 새기운을 받아들여 세상과 함께 흘러 가는 것, 어머니의 마지막 종착점은 베이스 캠프가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