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에 왕의 묘가? 숨겨진 명소 '광릉'
경북 영천에 왕의 묘가? 숨겨진 명소 '광릉'
  • 김황태 기자
  • 승인 2020.05.04 17: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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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안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 담긴 묘소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가면 광릉이 있다. 광릉 하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무덤이 떠오르지만  이름은 같으나 여기는 일반인이 묻힌 곳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에 묘소를 둘러싼 구불구불한 노송들이 고즈넉하다. 묘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은 길지이고 명당임을 암시하듯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묘로 오르는 언덕 초입에 광주 이씨 시조 묘 비석이 길손을 맞는다.

왕의 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광릉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광주 이씨의 시조 묘가 영천 최씨 선산에 있음도 의문이다.

영천시 북안면 광릉 전경. 김황태기자
영천시 북안면 광릉 전경. 김황태기자

어느 자료에는 무덤이 둥글게 왕의 능(陵)처럼 생겼다는 데서 광릉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경기도 이 씨 집성촌 광릉 골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광릉 묘역은 두 개의 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맨 위는 천곡(泉谷) 최원도의 모친 영천 이씨의 묘이고, 아래는 광주 이씨 시조 이당(李唐)의 묘이다.

광주이씨 후손이 세운 비석. 김황태 기자
광주 이씨 후손이 세운 비석. 김황태 기자

영천 최씨 천곡(泉谷) 최원도는 고려 말 공민왕 시절 신돈의 횡포로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와 살았다. 천곡의 친구 광주 이씨 둔촌(遁村) 이집도 바른말을 하다가 신돈 일파에게 밉보여 화를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집은 편찮은 부친을 등에 업고 야반도주를 해서 최원도의 집을 찾았다.
마침 최원도의 집에는 생일잔치가 벌어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집이 행랑채에 머물며 최원도에게 피신을 부탁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최원도는 화를 버럭 내며 이 집을 쫓아내 버렸고 그가 머문 행랑채를 불태워 버렸다. 이집은 친구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가까운 산 속에 숨어들었다. 그의 눈빛 하나로 마음을 읽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원도는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이집을 찾았고 그를 자기 집 다락에 숨겼다.
다락방에 숨긴 이집 부자를 위하여 최원도는 식사 때마다 공깃밥을 소복이 담고 반찬도 많이 담아 오도록 하였다. 평소 식사를 많이 하지 않던 주인이 밥을 많이 달라고 하고, 싹 비우니 몸종 제비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문구멍으로 살펴보니 다락에 밥을 올려 보내는 것이었다. 제비는 별당 마님께 말하였고, 마님은 첩을 숨겨 둔 것으로 오해하였다. 부인은 최원도에게 따져 물었다. 최원도는 이집 부자를 숨긴 것이 탄로난 것으로 지레짐작하였다. 부인의 발설을 막기 위하여 혀를 손상해 벙어리가 되게 만들었다.
제비는 자신의 실수로 주인집이 멸문지화를 당할까 봐 스스로 자결하였다. 최원도는 애처롭고 가상히 여겨 제비를 자신의 어머니 묘 인근에 묻어 주었다. 그 묘가 지금 광릉 아래에 있고, 자그마한 봉분에 연아총(燕娥塚)이라는 비석과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 연유로 영천 최씨와 광주 이씨 후손들은 지금도 묘사를 지낼 때면 연아총에 음식을 올린다고 하였다.

천곡 최원도의 종 제비의 무덤 연아총. 김황태 기자
천곡 최원도의 종 제비의 무덤 연아총. 김황태 기자

묘사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후손들이 제를 지내기 위해 떡을 하면 시루가 깨졌다. 후손들이 광릉에 제를 올릴 때 연아총에 시루떡과 음식을 먼저 바치고부터 시루가 깨지는 일이 없었다고 하니 제비의 주인에 대한 충심이 돋보인다. 
몇 년 후 이집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최원도는 자신을 위해 마련해 놓은 수의를 내주고 자기 어머니 묘 밑에 장례를 지내도록 하였다. 이것이 영천에 광주 이씨 시조 묘가 들어선 연유라고 한다. 생사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가 스민 광릉!

천곡 최원도 모친의 묘. 김황태 기자
천곡 최원도 모친의 묘. 김황태 기자

  대형버스가 접근하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주차장이 잘 갖추어져 있고 입장료도 없어서 한 번 찾아 가볼 만한 곳이다.
 

광주이씨 시조 둔존 이집 부친묘 비석. 김황태기자
광주이씨 시조 둔촌 이집의 부친묘 비석. 김황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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