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 칼럼-김영란법 이후 달라진 풍속도
[스승의날] 칼럼-김영란법 이후 달라진 풍속도
  • 이한청 기자
  • 승인 2020.05.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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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작은 선물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작은 선물

오래된 영화지만 '선생 김봉두'란 영화가 생각난다. '봉투'를 밝히던 교사가 시골 학교로 좌천되고 거기서도 그 버릇을 못 고치던 선생의 이야기다. 오죽했으면 가난한 가정의 학생이 봉투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못 가고 돈을 마련할 일을 하러 간다. 일부 일탈한 교사들이었겠지만 봉투를 준비한 학생과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을 차별하니 억지로라도 촌지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선생님과 부모 그리고 학생들 간에 입장과 생각이 너무 다르고 그 폭 또한 너무 넓고 깊어 메우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김영란법을 만들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퀴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면 바퀴는 잡았겠지만 집이 없어졌으므로 그 불편함 또한 감수해야 한다. 일부의 부조리 때문에 인간사를 모두 법으로 제한하고 강제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우리말에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다. 임금님과 스승은 부모같이 존경하라는 뜻일 게다. 과거에 잘사는 부자 동네에서 영화 내용처럼 선생님들과 학생 그리고 부모 사이에 촌지 문제로 한동안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 부자 동네가 아닌 곳에서 교편을 잡은 선생님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법 제정 당시에는 1년에 한 번 맞는 스승의 날에 꽃다발 하나도 못 드리게 했다. 심지어 수업 시간 교탁에 음료수 한 캔도 못 올리게 했는데 과연 음료수 한 잔도 뇌물인가. 매사 인간사가 그렇게 삭막해서야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직원 10명도 안 되는 어느 조그마한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매주 월요일 일과시작 전에 예배를 드리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하여 돈을 모았다. 몇 년 지나자 꽤 큰돈이 되었다. 4년 전인가 겨울철, 연탄 구입도 힘든 달동네에 독거노인 분들을 동사무소에서 추전을 받아 20가구에 200장씩을 전해주기로 계획했다.

겨울이라 골목길에 눈도 쌓이고 리어카도 못 올라가는 언덕 위 동네였다. 가게에서 집까지 연탄 배달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아 가져다 쓰시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관내 K고교의 협조를 받았다. 방학인데도 교사 인솔 하에 학생 여러 명이 동참하였다. 큰길에서 어르신들 댁까지 학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옆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운반했다. 손에서 손으로 20가구 모두에 연탄을 전달하니 어느덧 점심 때가 훨씬 지났고 이마엔 땀이 흘렀다.

연탄 배달이 끝날 때쯤에는 땀도 나고 숨이 많이 찾다. 하지만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작은 일이나마 성취한 만족감을 맛볼 수 있었다. 일도 끝이 났고 점심 때가 되어서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학생들하고 함께 식사하러 가시지요?” 하자 정색을 하며 “아닙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먹겠습니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는 중에 학생 하나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요즘엔 식사 대접받으면 큰일 나요.”

무슨 이야긴지 빨리 알아듣긴 했지만 열심히 일한 일꾼들에게 밥을 먹이면 큰일이 되는 국가가 되었나?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일탈을 방지하자고 좋은 취지로 법을 만들었겠지만 이런 법은 고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