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사연
유채꽃 사연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4.29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장춘 박사와 유채
제주도 수학여행 기념사진(1995. 4. 경북대학교 식품공학과)
제주도 수학여행 기념사진(1995. 4. 경북대학교 식품공학과)

 

해외여행이 비교적 수월해진 1990년대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지 뿐만 아니라 효도관광지로도 인기가 있었다. 푸른 수평선을 배경으로 노란 유채 꽃밭에서의 한 컷은 온 국민들의 로망이었다.

유채는 기원 이전부터 유지 자원으로서 재배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에는 명나라로부터 도입되어서 운대(蕓薹) 또는 평지로 불리며 봄나물로 먹거나 기름을 이용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매우며, 지혈, 식욕 증진 등에 좋고, 기름은 머리털을 검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채는 십자화과 배추(Brassica)속 식물로서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이른 봄부터 꽃이 핀다. 열매를 맺으면 기름을 짜고, 유채박을 가축 사료로 이용한다. 십자화과 식물에는 우리나라의 주요 채소인 배추, 무, 양배추를 포함하여 갓, 순무, 겨자,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유채 기름은 연료나 윤활유 등으로 사용되며 보습력이 좋아서 화장품 원료로도 이용된다. 그러나 함황 성분인 글루코시노레이트(glucosinolate)와 에루신산(erucic acid)이 함유되어 있어 사람과 가축의 갑상선과 심장의 장애를 초래하므로 최근에는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1970년대 들어서 유전자조작법에 의해 독성 성분이 저감화된 유채 품종이 개발되어서 캐나다에서 주로 재배되므로 캐놀라(Canola, Canadian Oil Low Acid)유로 불린다. 유채 기름은 경유와 섞어서 화석연료를 절약하는 신재생에너지 자원으로도 활용성이 높다.

우장춘 박사(위키백과)
우장춘 박사(위키백과)

우장춘 박사는 대한제국 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동경제국대학 농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농무성의 농업시험장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나팔꽃과 페튜니아꽃의 품종 개량에 관한 육종 연구를 하였다. 여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 자료를 수집하여 동경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청구하였다. 그런데, 학위 논문 발표를 앞두고, 시험장에 원인 미상의 화재가 일어나 모든 연구 자료가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은 이에 상심하지 않고 바로 유채 연구에 돌입하였다. 튀김용 유지 자원으로 많이 쓰이던 일본 재래종 유채의 품질 개량 연구를 하면서 그는 양배추와 교잡시켜 서양 유채를 만들고 이를 염색체 분석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이는 동종 간에만 교배된다는 당시의 이론을 깨트린 획기적인 결과였다. 이 연구 결과로 우장춘 선생은 1936년도에 드디어 동경제국대학으로부터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 사실이 NHK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다. 또한 우박사는 동속 식물인 배추, 양배추, 흑겨자를 각각 인공적으로 교잡하여 유채와 갓, 에디오피아 겨자를 만들었으며, 합성된 종의 염색체 특성을 분석하여 이를 확인하였다. 이 연구로 우장춘 박사는 동속이종(同屬異種)의 식물들 사이에 인공교잡으로 새로운 종의 합성이 가능하다는 ‘종의 합성’ 이론을 제창하여, ‘서로 다른 종들이 각각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도록 하였다. 배추속 식물들의 유전적 특성의 계통도는 ‘우장춘의 삼각형(U’s triangle)‘으로 알려져 세계의 모든 유전학 및 육종학 교재에 인용되고 있다.

배추속 식물의 유전적 계통도(우장춘 삼각형, 필자 제작)
배추속 식물의 유전적 계통도(우장춘 삼각형, 필자 제작)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고국에 돌아온 우장춘 박사는 초대 농업과학연구소장을 맡아서 순직할 때까지 십여 년 동안 헌신적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과 농민 소득 증대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우박사는 농작물 재배와 육종 분야의 부족한 인재들을 양성하고, 우량 품종을 개발하고 육종하여 수입에 의존하던 농작물의 종자들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예 1, 2호와 같은 우량 배추와 무 종자를 개발하여 한류 식품의 세계화에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기생충 감염이 없는 위생적이고 청결한 채소 재배법을 개발하였다. 제주도의 유휴지에 유채 재배를 권장하고 감귤 재배를 활성화하였으며, 대관령에서 무병 씨감자를 재배하도록 하였다. 향년 61세로 영면하기 직전에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고는 ‘조국이 나를 인정하였다’ 하면서 기뻐하였다.

대한제국의 백성으로 일본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여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해방된 조국에서 봉사하고 순직한 우장춘 박사의 생애는 그야말로 한국과 일본 근대사의 운명적 서사시(敍事詩)이다.

불우와 고난 속에 진리를 토파내어

종자합성 새 학설을 세계에 외칠 적에

잠잠턴 학문의 바다 물결 한번 치니라

온갖 채소종자 우리 힘으로 길러 내어

겨레를 위하시니 그 공로 얼마던고

빛나는 문화포장을 웃고 받고 가니라

흙에서 살던 인생 흙으로 돌아가매

그 정신 뿌리 되어 싹트고 가지 뻗어

이 나라 과학의 동산에 백화만발하리라

 

이은상 시인이 지은 수원 여기산에 있는 우박사의 묘비문이다.

지난 4월 8일은 우장춘 박사의 제 122회 탄생일이며, 해마다 부산과 제주도에서는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유난히 긴 봄날에 갓 꽃이 화사하게 핀 강가를 걸으며 고인을 회고해 보는 것도 코로나 시대의 소확행(小確幸)이 아닐까?

참고 문헌

1. 우장춘의 마코토, 이영래, HNCOM, 2013

2. 나의 조국, 츠노다 후사코, 북스타, 2019

갓꽃이 화사한 산책로(금호강교 부근)
갓꽃이 화사한 산책로(금호강교 부근)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