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쌀집 가족' 4대 "쌀맛보다 찐~한 부모님 내리사랑"
[어버이날] '쌀집 가족' 4대 "쌀맛보다 찐~한 부모님 내리사랑"
  • 권오섭 기자
  • 승인 2020.05.07 09:4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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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46년간 늘 가족과 함께
매일 온가족 모여 정 나눠
오른쪽부터 아내 오필선 씨, 어머니 엄정옥 씨, 아들 박홍기 대표, 박무완 대표, 손녀 시현 양, 며느리 강령경 씨. 권오섭 기자

 

“어머님이 말없이 베풀어 주시는 내리사랑은 끝이 없죠. 그 마음에 반도 못하는 것이 자식인 것 같습니다. 항상 부족하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모시는 것이 효(孝)라 생각하고, 실천하면 자식들도 자연히 따르고 있습니다.”

4대가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살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가족이 있다. 대구 북구 팔달로27길(노원동3가) 대곡농산의 화목한 4대 가족이다.

대곡농산 박무완 자문위원(60·대구원대새마을금고 이사장·의성군 명예안평면장) 가정에는 엄정옥 회장(82·어머니), 오필선 관리부장(60·아내), 박홍기 대표(35·아들), 강령경(35·며느리) 씨, 박시현(5·손녀) 5명이 살고 있다. “왕(증조)할머니, 대구(친)할머니, 포항(외)할머니, 대구(친)할아버지, 포항(외)할아버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다섯 살 어린 손녀 시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렇게 부른다. 박 씨 가족들에게는 재미난 공통점도 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3대 부부가 서로 동갑이라는 점이다.

할머니와 손녀의 다정한 한 때.  박무완 씨 제공
할머니와 손녀의 다정한 한 때. 박무완 씨 제공

아침 7시가 되면 대곡농산의 하루가 시작된다. 각종 곡물의 상하차 작업과 분류를 거쳐 주문처에 배송하고 그날 재고를 점검한다. 맛있고 신선한 쌀 등을 소비자에게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매일 매일 점검 작업으로 분주하다.

박 씨의 부모님들은 지난 1974년 의성 안평에서 맨몸으로 대구로 나왔다. 쌀가게를 하고 있던 진외삼촌(아버지의 외삼촌)의 도움으로 북구 노원동3가 팔달신시장 인근에 의성양곡상회를 열었다.

“어렵던 시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봉양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두 분은 드시지도 않고 제대로 된 옷도 입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 알뜰함에는 도가 넘쳤던 부모님이었다”며 박 씨는 말끝을 흐렸다.

올해로 46년째인 대곡농산은 3년 전 고인이 된 부친 박정수 씨(해병대 46기)가 1994년 위암수술을 받은 이듬해, 함께 가게에서 일을 하던 아들 박 씨가 맡아 운영했다.

박 씨가 양곡상을 운영하던 1980∼90년대 쌀 구입을 위해 전국을 다닐 때 비포장도로가 많았고 집집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짚으로 짠 가마니로 양곡을 구입해 운반하던 시절 차량사고 등으로 아찔하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삶의 버팀목과 교훈이 된다고 한다.

박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자식들이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선물했던 새옷들이 한 번도 입지 않은채 나왔다”고 회상했다. “살아 생전 양말 한 짝이 떨어지면 기워 신으셨고 자식들이 신지 않는 크고 닳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셨다. 사치라는 단어를 모르고 사신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대표인 홍기 씨의 알뜰함과 절약정신도 할아버지 못지않다고 한다. 초창기 북구 팔달동에서 가게까지 왕복 약 20km의 거리를 차량 기름 값이 아깝다고 매일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는 항상 말이 없어도 성실함과 믿음이 몸에 배어 있다. 홍기 씨는 최근 관리부장인 모친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10년 이상 타던 차를 소형 새차로 바꿔 드렸다.

34년 동안 부모님을 모셔 온 박무완·오필선 씨 부부는 “요즘 들어 혼자되신 어머니가 외로워 보인다. 고생하시며 힘들게 키워주신 데 대해 나이가 들어 갈수록 항상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를 섬기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기본 도리이니, 자식과 함께 편안하게 사시도록정성껏 섬기는 마음으로 효를 하나씩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4대가 살면서도 가족이 화목할 수 있었던 것은 가훈 ‘최선을 다하자’를 늘 실천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화목을 강조해 온 박 씨 부부는 어머니와 아들의 사생활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4대가 낮에는 가게에 모여 얼굴을 보지만 퇴근 후나 일요일에는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특별한 날, 집안의 대소사나 경조사가 있을 때는 온 가족이 모여 정(情)을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 실천하고 있다.

박 씨는 “효(孝)는 가족 윤리 중 최대의 덕목(德目)이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족의 화목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4대가 함께 살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다섯 살 손녀의 "사랑해요"라는 애교 한마디에 쌓인 "스트레스여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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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 가족의 일터, 대곡농산

대곡농산은 박무완 씨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터이다. 지난 2012년 의성양곡상회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개발되자, 주변 3층 건물을 구입하여 이전, 상호를 대곡농산으로 바꾸었다. 2014년부터는 아들인 홍기 씨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박 씨가 대구원대새마을금고 이사장에 당선 후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아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직원 3명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주, 부산 등 전국 식자재마트, 병원, 뷔페 등에 차량 배송하고 있다. 밤새 이메일이나 팩스를 통해 주문된 쌀 등 각종 곡물을 소포장하느라 늘 분주하다.

양곡상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오직 80kg 가마니와 마대로 포장되었으나 지금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1.6kg, 2kg, 10kg 등으로 포장해 판매한다. 말과 되로 구분되던 단위도 kg으로 표준화했다. 마을 단위로 있던 시골 정미소도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곡물에 돌이나 피 등 이물질도 이제는 석별기로 골라낸다. 도정 과정에서부터 양곡상 포장 때까지 색채선별기를 통해 소비자가 걱정이 없도록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다.

지금은 14분도로 도정된 쌀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쌀이 귀하던 시절 14분도의 쌀은 팔지 못하게 구청에서 단속을 나왔다고 한다. 부잣집에서나 사서 먹었던 시절이라 장롱에 이불이나 옷가지 대신 14분도 쌀을 감추어 놓고 한 되 두 되씩 몰래 팔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대곡농산은 고향사랑도 깊다. 의성군 안평면 기도정미소에서 도정한 쌀을 매달 14t씩 수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