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죽음에 관한 언어적 표현
(2) 죽음에 관한 언어적 표현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3.08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즉 죽음에 대한 개념 정의에 앞서 먼저 죽음을 의미하는 언어적 표현을 살펴본다.

일반적, 객관적, 공식적 사실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로 보통 죽다’, ‘사망하다라고 표현한다. 사망(死亡)의 경우 사()는 죽었지만 아직 장례를 치르기 전을 가리킨다. 당연히 사자(死者)는 사망 후 장사(葬事)를 마치기 전의 사람이다. ()은 사람이 죽어 장례까지 다 마친 뒤를 말한다. 따라서 망자(亡者)는 사망 후 장사(葬事)까지 마친 사람을 가리킨다.

이밖에 죽음에 대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표현하는 나라도 없다. 한글 본래의 어휘의 풍부성에 기인하는 면도 있으나 죽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죽은 자의 나이와 신분을 고려해야 하고, 예우와 겸양의 뜻을 표해야 했다. 거기다가 죽은 자의 사후에 대한 기대와 기원까지 담아야 했다.

신분에 따라, 황제나 임금이 사망하면 붕어崩御), 승하(昇遐)이고, 관리나 일반인이 죽으면 졸()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죽으면 별세이고 나이가 적은 사람이 죽으면 그냥 사망이다. 귀인이 죽으면 타계이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세상으로 가서 다시 살아갈 것을 기원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서도 표현이 달라진다. 군인이 전사하면 산화(散華)이다. 한창 젊고 꿈이 많던 아까운 청춘이 꽃잎처럼 흩어져 죽은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순국(殉國)이다. 만인이 우러러 보는 가치 있는 죽음인 것이다. 아내가 죽는 것은 단현(斷絃)이다. 현악기의 줄이 끊어짐에 비유하여 부부 금슬의 줄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죽음의 표현 방법에도 품격과 귀천이 있고 등급이 있다. ‘가다하면 천하고 속된 말이 되고, ‘돌아가다하면 보다 귀하고 고상한 말이 된다. ‘골로 가다는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곤란한 비속어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 설이 있다.

골은 서울에 있는 공동묘지 터인 고태골의 준말이라는 설

골은 곡()의 뜻으로 골짜기로 묻히러 간다는 설

골은 널 즉 관()의 뜻으로 관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

등급에 있어 사망하다는 낮은 등급의 표현이고, ‘타계하다’, ‘별세하다는 조금 높은 등급이다. ‘서거하다는 최상위 등급이다. 가끔 친구나 학교 동기생의 죽음을 알리면서 별세했다고 전하는 것이 왠지 어색한 것은 등급 표현의 오류 때문일 것이다. 높은 신분의 사람이 죽었을 때 별세라고 해야 할지 서거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은 등급에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죽음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보다 완곡한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이고, 영서(永逝)는 영원한 길을 떠나다는 뜻이다. 웃어른이 죽으면 돌아가()라고 한다. 가끔 궂기다는 순우리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돌아가다의 어원은 ()로 가다이다. 원래의 집 즉 태어나기 전의 고향인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모두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숭이로 이 세상을 떠나리라는 이솝(Aesop)의 표현이 생각난다. 신라 30대 국왕인 문무왕의 유언 중 지난 날 모든 일을 다루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된다.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파게 된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천상병 시인이 귀천(歸天)’이라는 시를 통하여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읊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돌아가다와 비슷한 용례로서 거꾸러지다가 있다. 천한 말에 속하지만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져 가쿠레루(れる)’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신분에 있는 천황이 죽었을 때 이 말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숨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천황은 신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몸을 감춘다는 의미를 가진다.

동물의 죽음에는 보편적으로 죽다’, ‘폐사하다는 용어를 사용한다. 특히 반려동물 죽음의 경우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과의 깊은 유대감이 반영되어 좋은 곳으로 가기를 희망한다는 의미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이나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작자 미상의 산문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천국과 우리의 땅을 이어주는 무지개다리가 있으며, 죽은 애완동물이 그곳으로 가면 항상 먹을 것과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던 이들이 없어 한없이 그리워한다

사람의 경우 죽음을 "황천장(黃泉場)에 깨() 팔러 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전라도 사투리인 ()벗다는 벌거벗은 몸을 의미한다. 죽으면 깨()벗고 염()해서 땅에 묻으러 가는데 그것을 저승을 의미하는 황천이라는 장에 내놓는다는 뜻이다. 조선 중엽에 콩이 풍부했던 경북 영천장에 주변지역의 상인들이 콩을 사러 갔다가 술집과 노름판에서 돈을 잃고 행방불명이 된 경우가 많았다. 이때 "영천장에 콩 팔러 갔다"고 한 것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죽음에 대해 각 종교별로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승려의 죽음을 열반(涅槃), 적멸(寂滅), 입적(入寂), 귀적(歸寂). 입멸(入滅) 등으로 표현한다. 특히 열반은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가톨릭에서는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의 죽음을 선종(善終)이라 한다. ‘착하게 살다 복되게 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때 한국 천주교계가 선종으로 표현하기로 공식 결정하면서부터 사용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의미로 소천(召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우리말 사전에 없는 신조어로서 기독교에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용을 지양하자는 의견도 있다. 대신 별세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현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굳이 사용하자면 능동형인 소천하였다대신 수동형인 소천되었다”, “소천을 받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천도교에서는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궁극에는 우주로부터 와서 살다가 다시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으로 돌아간다는 천도교의 사후관이 담겨 있다.

이밖에 도교에서는 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반진(反眞), 정교회에서는 편히 쉰다는 뜻으로 안식(安息), 대종교에서는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조천(朝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죽음에 관한 표현의 특징>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다양성)

우리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표현이 많다  (독창성)

죽은 자의 신분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죽은 자의 나이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죽음의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종교에 따라 죽음의 표현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