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으며] 내리사랑...네 손주와 함께한 시간들
[가정의 달을 맞으며] 내리사랑...네 손주와 함께한 시간들
  • 김동남 기자
  • 승인 2020.04.29 17: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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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이란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단어가 뉴스를 도배할 무렵 안동시에 거주하는 김정란(70) 씨는 서울에 사는 둘째 딸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에 다니는 형제를 오프라인 개학할 때까지 할머니에게 좀 맡겨야 되겠다는 것이다. 

교직에서 은퇴한 어머니인지라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딸의 호소에 김 씨는 그러마 하고 흔쾌히 승낙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둔 김 씨는 지난해 막내아들의 딸이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겨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코로나 사태의 소용돌이는 할머니를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상으로 밀어내었다. 해외에 거주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돈들에게는 전혀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 1남2녀의 아이들은 졸지에 오로지 김 씨의 몫이 되었다.

먹고 살기 바빠 어쩔 수 없이 조부모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자녀들의 심정도 편하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김 씨는 이견 없이 손주들을 받아들였다.

공직에서 은퇴한 남편은 "이 사태가 몇 달 갈 것도 아닐 것"이라며 "이참에 우리 손자손녀들에게 조부모의 존재감을 단단히 각인시킬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반겼다.

맏딸의 딸까지 모아 놓으니 성별도 평등하게 손자가 둘 손녀가 둘이다. 학년도 1학년, 3학년 각 하나에다 4학년이 둘이라 가히 분교장 수준에 버금가는 숫자이다. 고작해야 1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던 사촌들이 몇 날이고 함께 자고 먹고 어울려 놀 수 있다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없다. 

가장 예민한 시절의 아이들이고 경쟁심도 가장 왕성한 때이다. 자신이 섭섭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을 아이들이 가지면 큰일이었다. 가장 먼저 딸들과 아들에게 이왕 조부모에게 맡겼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간섭하지 말 것을 다짐받았다.

새 학년이 시작된지 두 달이 넘었지만 담임선생님과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한 녀석들이다. 정식으로 개학하였을 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할머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생활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시간표를 작성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온라인 개학의 사전 활동으로 EBS에서 송출하는 학년별, 과목별 교육방송을 점검하고 간식시간과 놀이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빼곡하게 만들어 놓으니, 남편은 아이들보다 할머니가 먼저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방송을 시청하는 시간도 아이들마다 각각이어서 할머니의 하루는 텔레비전 앞에서 시작되어 텔레비전 앞에서 끝이 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잠시만 내버려둬도 아이들은 한눈 팔기 일쑤였고 4학년부터 시작된 온라인 개학은 김 씨를 더 정신없게 만들었다. 할머니의 수고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개인별 과제까지 주어지는 상황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할머니의 노하우가 비상시국에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아이들의 모든 학습준비와 진행은 할머니 담당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놀이 위주로 아이들을 돌보았다. 주말이면 강변으로 나가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를 타며 함께 놀아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꾸 잔소리를 하는 까칠한 할머니보다 놀아주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했다.  멀리 사는 아들 딸이 그들의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핑계로 격주제로 모여들었다. 김 씨에게는 그 또한 일이었지만 몸은 고단하여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였다. 살아 생전에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 몇 번이나 있을까 할 정도로 그간 자식들 얼굴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딸들은 말하였다.
"우린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도 엄마처럼 못해요. 정말 못할 것 같아요."
세 자녀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집으로 갈 생각도 않고 조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김 씨는 70세가 된 올해 그동안 틈틈이 써놓은 시들을 모아 시집 한 권 내는 꿈을 갖고 있다. 지난 70세 생일에는 첫째 사위로부터 멋진 기타 선물도 받았다. 기타를 배워서 좋아하는 노래를 자신의 반주에 맞추어 한 번 불러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던져본 것을 첫째 사위가 용케도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제 자녀들도 저들만의 독립된 가정을 꾸렸고 손주들도 그만큼 자라 더 이상 조부모의 손길도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나를 위한 삶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코로나 사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었지만 가족 간의 결속과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도 베풀었다.

김 씨는 생각한다. 언젠가 나의 아이들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될 것이고,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낌없이 다 내어 주리란 것을. 

내일이 밝으면 꼬마들과 전쟁 같은 하루가 또 펼쳐지겠지만 이 사태도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고, 손주 녀석들은 그들만의 일상으로 돌아 갈 것이다. 김 씨는 손주들이 어른이 되어도 먼 훗날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이란 이 국가적인 재난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어떻게 잘 견뎌내었는지 좋은 경험으로 추억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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