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으며] 손자들 재롱에 ‘풍덩’ 빠져 사는 할미
[가정의 달을 맞으며] 손자들 재롱에 ‘풍덩’ 빠져 사는 할미
  • 최종식 기자
  • 승인 2020.04.29 17: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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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손자 둘, 외손녀 한 명의 재롱 속에 세월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살아가는 초로의 '할미'(손자들이 부르는 말)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장경연(61·대구 수성구 황금동) 씨이다.

장 씨는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으며 자녀들이 일찍 결혼하여 자녀들을 두는 바람에 억울하게 할머니 소리를 듣는다고 야단이다. 동창들 중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젊어서 새댁처럼 보이고, 딸이 결혼 전에는 해마다 해외여행을 즐기던 꿈많은 '소녀'였다.

친정으로는 5남매 막내로서 아흔 넘은 친정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 앞에서는 언니 둘, 오빠 둘 속에 온갖 애교를 떨며 어머니의 주름을 펴주는가 하면 언니, 오빠들에게도 철없는 막내요, 어른 아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교 동창 모임이나 직장 모임 등에서도 앞장서서 활짝 웃음 보따리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여 뭇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각설이 타령으로 대중을 오로지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웃음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타인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달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시니어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때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들어 애지중지 키워온 딸의 대학 진학을 앞뒀을 때였다. 고등학교때 성적이 우수하여 서울의 스카이 대학으로 보내느냐, 아니면 대구에서 교육대학을 시켜 안정된 교직을 택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주위 의견을 들어 대구교육대학교에 진학을 시켰다. 그런데 딸은 교육대학이란 조그만 테두리 안에서 꽉 막힌 캠퍼스 생활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딸은 차츰 학교생활에 나태해지면서 성적이 떨어졌고, 급기야 졸업이 다가왔지만 임용고시 준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한 자녀를 위하여 장 씨는 헌신적인 기도와 노력을 다했다. 어머니의 노력에 힘입어 딸은 임용고시를 거쳐 교사가 되었다. 올해로 10년이 지난 중견교사가 되었고 결혼하여 할머니에게 예쁜 외손녀를 안겨주었다.

언제나 웃음 띤 얼굴로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장 씨는 사위와 며느리 사랑도 지극하다. 사위는 장래가 촉망되는 공무원으로 장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며느리도 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며느리인지 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섬기고 있다. 어머님이란 말 대신 그저 ‘엄마’로 부르며 한 달에 몇 번씩 잠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서로 꼭 안고 잘 정도로 고부간의 틈을 찾을 수 없다. 사위와 며느리가 아들과 딸이 되는 아름다운 모습, 오늘날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진 데는 장 씨의 타고난 끼와 노력이 있었다.

아들과 딸이 분가하여 따로 살고 있지만 실지로는 한 집에 3대가 함께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직장생활하는 부모들을 대신해 손자 둘과 외손녀를 장 씨가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부모들이 아이들을 찾으러 와도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단다. 아이들도 할머니와 함께 잘 때가 대부분이다.

할머니와 손자 3명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그저 웃음 보따리다. 방바닥에 늘어선 장난감 열차는 길게 늘어져 발디딜 틈도 없다. 할머니와 손자들이 함께 ‘뛰뛰빵빵’ 방구석을 돌고 돌아 굽이굽이 헤엄쳐 다니고 있다. 할머니가 하늘 향해 뻗은 두 팔과 다리에는 손자 둘과 손녀의 의자가 되어 있다. 커다란 나무 위에 걸터 앉은 아이들 같다.

남들은 손자를 돌보느라 병이 생기고 힘들다고 하지만 장 씨는 예외다. 손자들로 인해 더욱 즐겁고 행복바이러스를 전달받는다고 자랑이다. 첫돌 맞은 손자들에게 예쁜 옷을 사 입히며 손편지를 써서 장차 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되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손자가 할머니에게 애교를 떠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할머니가 손자에게 더 애교를 떤다. 세상에 어느 손자 자식이 이처럼 예쁠까? 

장 씨가 외손녀 첫돌을 맞아 쓴 축하편지를 소개한다.

"설아 공쥬, 첫돌을 맞이해서~♡

1년 전 오늘 봄꽃들이 앞다투어 움츠렸던 꽃망울을 떠뜨릴 때에 세상에 소풍 나온 아가 설아야~^^

첫 생일을 맞이한 걸 외할머니가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무도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방긋방긋 웃는 네 모습에 할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했고, 부리나케 기어와 할머니 품에 꼬옥 안겨 설아의 체온이 할머니께 전달되는 순간에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기뻤지. 이제 할머니께 총명한 두 눈 질근 감으면서 윙크도 하고 작은 손으로 빠이빠이도 하고~ ㅎㅎ

너무도 사랑스런 나의 손녀, 홍설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앞으로도 건강하고 사랑스런 아가로 잘 자라주길 바라면서 다시 한번 너의 첫 생일을 축하해~♡"

오늘도 물고 빠는 할머니와 손자들. 할미와 손자가 한 몸이 되어 엎치락뒤치락 방바닥을 뒹구는 모습에서 가족간의 한없는 사랑을 느낀다. 오늘날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모와 자식간의 다툼이 보편화되어 있는 잘못된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장 씨의 모습에서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온 가정에 행복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기를 기원해 본다.

 

장 씨는 옛 은사들에게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이 되면 친구들과 식사대접을 하며 ‘스승의날 노래’를 직접 불러드리는 착한 제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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