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가지마라! 여기서 조금 벌어 조금 먹자
[어버이날] 가지마라! 여기서 조금 벌어 조금 먹자
  • 이한청 기자
  • 승인 2020.05.07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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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건설 현장에서 동료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한청 기자

 

가난하던 시절 직장생활을 하다 조금 더 벌어 보겠다고 해외 건설현장 근로자로 나가기로 지원을 했다. 어머니는 무슨 예감이라도 드셨던 것일까 이번에는 극구 말리셨다.

딸 삼형제와 아내, 어머니를 집에 두고 말레이시아로 출발하기 하루 전 어머니가 손을 잡으며 "얘야, 가지 마라. 그냥 여기서 조금 벌어 조금 먹자. 어떻게 고만고만한 딸들과 에미만 남겨두고 그렇게 멀리 가니. 안 가면 안 되니?" 하시며 몇 번을 말씀하셨다. 가슴이 꽉 막혀서 아무 소리 못하고 보르네오로 출발하였다.

그 더운 열대에서 유일한 기쁨은 하루 걸러 보내오는 아내의 편지였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숙소에 들어왔을 때 베개 위에 얹혀 있는 편지는 하루의 피곤을 풀기에 충분했다.

하루는 어머니 생신에 맞춰 연세가 비슷한 장모님, 처형네 시모 세 분을 제주도 여행시켜 드리기로 했다는 편지가 왔다. 나는 참 잘 생각했다고 칭찬을 했다. 평생 일밖에 모르시던 분을 비행기 태워드리려고 한다는 생각에 내가 못 한 일을 며느리가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이 지났는데 아무소식이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해 하는 내게 아내는 '어머님은 잘 계시니 건강하게 잘 있다 돌아오라'고 했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무언가 확실치 않는 불안감이 나를 계속 사로잡고 있었다.

공항에는 큰형님과 누님 그리고 작은어머니까지 나와 계셨다. 차 안에서 누님께 "어머니는?" 하고 묻자 누님은 그냥 나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형님은 차창 밖으로 먼 산만 바라보고 아무 말도 없으셨다.

어머니는 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한 며칠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단다. 그것도 불의의 사고가 아닌 예견된 사고로 친척이 운전하는 차에서 즉사하셨단다.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어머니가 형님 댁에 다녀오시겠다고 가셨는데 늦은 밤에 친척 형이 술이 잔뜩 취해서 형수보고 춤을 추자고 추태를 부렸단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얘야 너 술 많이 취했으니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친척 형은 마지못해 집에 가겠다며 어머니가 함께 가야 가겠다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그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고 친척 형은 과속으로 달리다 얼마 못 가 큰 나무를 들이 받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차 안에서 앞이마가 깨져 운명하셨다고 했다. 아내가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보니 어머니는 눈을 뜨고 운명하셨고 얼굴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더란다. 형님은 출장 중이었고 둘째 며느리인 아내가 어머니 눈을 감기셨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얘야 가지마라, 그냥 여기서 조금 벌어 조금 먹자"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평소에도 풀리지 않는 가슴 깊이 묻어둔 멍울이지만, 바쁘게 사느라 때때로 잊었어도 해마다 오월이 오면 또 가슴을 찌르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어떤 자식인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사람 없겠지만 나는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우리 세대는 모두가 가난한 시대를 참으로 힘겹게 살아왔지만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집이 너무 가난해 대학에 가겠다는 이야기는 할 수도 없어서 한입이라도 덜겠다고 공군에 지원입대를 했고 대학공부를 할 수 있다는 모병관에 말에 선뜻 장기지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이었고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떠난 것이 부모임종도 못 지키는 불효의 길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