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의 '차례'
김춘수의 '차례'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9.30 10:0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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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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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차례’

 

추석입니다.

할머니,

홍시하나 드리고 싶어요.

서리 내릴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기러기 올 날은 아직도 멀었지만,

살아생전에 따뜻했던 무릎,

크고 잘 익은

홍시 하나 드리고 싶어요.

용둣골 수박,

수박을 드리고 싶어요.

수박 살에

소금을 조금 발라 드렸으면 해요.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할머니,

어젯밤에는 달이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내고 있었어요,

오십 년 전 그 날처럼.

 

김춘수 詩전집 1994. 민음사

 

추석이 바로 코앞이다. 때때옷 얻어 입을 희망으로 손꼽으며 기다리던 명절은 아니지만 보름달처럼 환한 자식들 얼굴 볼 생각에 설렌다. 멀리 떨어져 살던 피붙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긴 안부를 묻고 들으며 쌓인 정을 나누는 것, 바로 이런 점에서 명절이 만들어진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옛날에는 교통도 불편하고 자가용은 아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동의 고단함을 무릅쓰고 이루어진 만남이니 오죽 반가웠을까. 대가족 속에서 자란 나의 어릴 적 기억은 명절이 그야말로 잔치와 같았다. 요즘은 미리 성묘를 마치고 여행을 떠나는 실속파들도 많다는데 세월의 변화를 거스를 수야 있겠는가.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국가에서 귀향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는 실정이니 어쩌랴.

'차례'란 시를 읽는다. 원래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을 장만하여 올리는 것이 예의다. 요즘에야 외국 먹거리들이 워낙 많이 들어와서 옛날 풍습과는 거리가 있다. 화자는 생시에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홍시를 올려놓고 할머니를 기린다. ‘살아생전에 따뜻했던 무릎’ 엄마 대신 할머니의 따사로운 손에서 자란 나는 이 부분에서 울컥한다. 시인은 왜 수박 살에다 소금을 발라드리고 싶다 했을까? 다음 행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를 읽으니 헤아려진다. 예전엔 더위를 먹으면 소금물을 마셨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달이 앞이마에 서늘하고 훤한 가르마를 내고 있’다는 구절은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오십 년 전 그 날처럼 생생하다는 것이리라. 나는 엉뚱하게도 내 할머니의 가르마 타서 쪽진 얼굴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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