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의 '우시장의 오후'
곽흥렬의 '우시장의 오후'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7.08 10:00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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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이미지, 예천 새벽 우시장

 

곽흥렬의 '우시장의 오후'

 

아버지의 몸에서는 언제나 쇠똥 냄새가 배어났다. 그 냄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장철 소와 함께 방방곡곡으로 떠돌아야 하셨던 아버지의 고단한 세상살이의 체취였다.

그때 나는 그림자처럼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그 말로는 풀어내기 힘든 야릇한 냄새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너희 아버지 소 장사 한다며?” 마을의 어른들이, 어린 내가 사랑스러워 건넸을지도 모를 이 말에 쥐구멍이라도 파고들고 싶었다. 그래서 제법 철이 나서까지도 어딜 가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한사코 숨긴 채 살아야만 했다. 그 쇠똥 냄새가 우리 가족의 생계를 걸머메고 있던 끈이었음이,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한참이나 지나온 지금에서야 비로소 헤아려진다. 이렇듯 삶에의 깨달음에 있어 나는 늘 지각생인가 보다.

시골장의 정취 가운데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우시장 풍경이다. 사람들의 왁자그르르한 소란스러움이 없다면 정작 장다운 맛이 날까. 생짜로 뱉어내는 거간꾼들의 걸쭉한 욕지거리가 오히려 정겨움으로 다가드는 곳, 그곳이 바로 삶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우시장이다. 특히나 거기서 오가는 대화는 대화라기보다는 숫제 싸움질에 가까워, 그 투박스럽기가 뱃사람들의 악다구니에 하나도 못잖다.   

장도막을 이용해 소를 사서는 장날을 기다려 내다 파셨으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한 주일은 닷새였던 셈이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버지는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같이 길을 나서야 했다. 어미 소를 앞장세우고 뿌연 입김을 푸푸 내뿜으며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넘을 때, 송아지는 꽁무니에 달라붙어 졸랑졸랑 종종걸음을 친다. 녀석들은 잠시 뒤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슬픈 종족이다. 그저 고분고분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들처럼, 주인의 뒤를 따라서 꾸벅꾸벅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이윽고 희붐하게 동녘하늘이 밝아오면 워낭 소리가 정적에 싸인 산골의 아침을 깨웠다.

사 와서 시장에다 내놓기까지 짧으면 며칠, 길어야 채 보름을 넘기지 못하는 기간이지만, 아버지는 그 동안에도 부지런히 빗기고 쓰다듬고 매만져 주며 정을 붙이셨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팔려 가는 소들의 뒷등을 보면 늘 마음이 짠하다고 하셨다. 미혼모의 아기를 맡아 한동안 돌보다가 입양가정으로 넘겨주는 위탁모의 심정 같다고나 할까. 움머 움머 새끼를 부르는 어미 소의 길고 느릿한 여음 뒤로 음매 음매 어미 소 찾는 송아지의 여린 울음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는 우시장의 오후, 생이별한 어미 소의 연신 껌벅거리는 그 커다란 눈망울에 맺혀 있던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부디 크고 맑은 눈에는 정 주지 말지어다. 가슴에다 우물 속 같은 공동空洞을 내어놓는 까닭에.

팔리는 순간 그들은 운명이 갈린다. 수 좋은 놈은 농우가 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수사나운 녀석은 도수장으로 끌려가 육보시肉布施로 세상과 하직을 고해야만 한다. 마치 갓 생산된 승합차가 날이 날마다 팔도강산을 유람하는 관광버스가 되기도 하고, 허구한 날 시신을 싣고 다녀야 하는 영구차가 되기도 하는 이치처럼. 수십 년 세월 동안 아버지의 손을 거쳐 간 소만도 어림잡아 수백 마리를 헤아릴 수 있으리라. 그들 가운데 몇 놈이나 타고난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슬픈 최후를 맞았을까. 그 애들을 생각할 때면, 영화 ‘워낭 소리’의 마지막 장면이 그려지곤 한다. 

소를 사서 파는 일이 아버지에게는 하나의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옛날 할머니께서 정화수 떠놓고 소지를 올리시듯, 아버지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장날을 맞이하셨다. 장이 서는 날이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외양간의 불을 밝히고 정성을 들여 쇠죽을 끓이셨다.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걸쭉한 쇠죽으로 소의 배가 어지간히 탱글탱글해졌다 싶으면, 등허리와 목덜미의 잔털을 쓸고 다듬으며 곱게 손질을 하셨다. 반들반들 윤기가 나 보여야 제값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곱 식구의 생계와 다섯 형제자매의 학비는 고스란히 아버지의 손을 거쳐 간 그 소들이 도맡아 왔던 셈이다. 오늘은 또 어떤 작자가 나타나서 흥정을 붙여올는지……. 매번 장을 맞이할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은 설렘 반 걱정 반이었으리라.

이따금 시장 길을 지나치다, 좌판을 벌여놓고 애원하는 듯한 눈길로 오가는 길손들을 치어다보는 노점상들의 고단한 표정에서 지난날의 아버지 모습을 만나곤 한다. ‘저 행인들 가운데 누가 우리 생계에 도움을 줄까.’ 그들은 노상 그런 기대와 초조감으로 긴긴 하루해를 보낼 것만 같다. 내 손을 거쳐 건네지는 이 알량한 몇 푼의 돈이 오늘 그들 식구의 한 끼 치의 양식이 되어 줄 수도 있으리라. 한 접시의 찬거리를 마련케 해 줄 수도 있으리라. 이런 생각이 들 적마다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대강 두량하고 난 아침나절쯤이면, 어머니는 그때서야 내 손을 잡고 장 구경을 나서곤 했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우시장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무슨 경기라도 관람하듯 멀찍이서 흥정 장면을 지켜본다. 아녀자가 끼어들면 부정 탄다는 옛말을 어머니는 철석같이 믿고 계셨던 것이다. 한참을 쑤군쑤군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가고 밀고 당김이 거듭되다, 잠시 후 돈다발이 건네진다. 마침내 흥정이 성사되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쉬움인지 만족감인지 모를 엷은 미소가 번져나고, 초조하던 내 마음도 덩달아 울렁울렁 파도를 탄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을 이끌어 아버지께로 다가갔다. 뜨끈뜨끈한 장국밥에다 걸쭉한 왕대포 한 사발로 장판의 열기는 후끈 달아오르고, 기분이 거나해진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의 손에 지폐 몇 장이 쥐어진다. 우리 모자의 장보기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이곳저곳 난전을 돌면서 다음 장도막까지 쓸 찬거리와 생필품을 구입하고, 내 운동화며 누비바지며 그리고 학용품 몇 점을 사 주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시절의 시장 풍경은 이처럼 따듯하고 정겹고 애틋한 모습으로 기억의 곳간에 고이 갈무리되어 있다.

어쩌다 고향집을 들를 때면, 장터의 정취가 그리워져서 우시장으로 발길이 닿곤 한다. 아직도 여기저기에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듯싶어, 눈으로 쓸며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 본다. 아버지의 부푼 꿈과 쓰디쓴 좌절, 설레는 기대와 아쉬운 한숨이 교차했던 곳, 당신으로서는 이곳이 평생을 바쳐 가족이란 힘겨운 등짐을 짊어지고 거친 세파와 싸우셨던 삶의 터전이 아닌가. 아버지는 만일 소라는 동물이 없었다면 세상살이의 의미 자체를 잃어버리고 마셨을는지도 모른다. 재래시장 장사꾼들이 두세 평 남짓한 점포에 자리를 틀고 앉아 꿈을 일궈내듯, 아버지도 이 우시장을 당신의 점포 삼아 팍팍한 삶을 꾸려 나가셨으리라.

거센 세월의 물살을 어찌 이곳인들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인가. 이제 우시장도 개방화의 파고에 떠밀려 더 이상 지난날의 그 흥성했던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드문드문 박혀 있는 주인 잃은 빈 말뚝 사이로 휘익 한 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해질녘의 쓸쓸한 장터 풍경에서, 십여 년 전 어머니와 사별하고 홀로 늘그막의 외로움을 달래며 조용히 생의 끝자락을 마무르고 계시는 아버지를 만난다.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장꾼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 뒤로, 소들의 길고 느릿한 울음소리가 환청 되어 들려온다.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 북랜드. 2013.7.20.

 

‘우시장의 오후’가 표제작이다. ‘아버지의 몸에서는 언제나 쇠똥 냄새가 배어났다.’로 서문을 연다. 남들은 이 구절을 패러디한다면 어떻게 할까? 나는 ‘우리 아버지의 몸에서는 언제나 술 냄새가 배어났다.’라고 쓸 것 같다. 비교마저 구차스러우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만들어질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게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자식에게 부모의 기여도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못난 부모라도 회상 모드로 들어가면 왜 짠해지는지. 타인의 작품에 동화되어 묵은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추억은 힘이 없고 이젠 원망마저 삭아서 상처의 부스러기조차 남지 않을 만큼 세월이 흘러버렸다. 아버지의 불콰한 옆얼굴이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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