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의 사진 이야기⑧ 대구시립중앙도서관-국채보상기념관
할배의 사진 이야기⑧ 대구시립중앙도서관-국채보상기념관
  • 정지순 기자
  • 승인 2020.04.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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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광장 야외벤치에서 독서하는 노신사
도서관 야외벤치 노신사의 독서에 열중인 모습이다.  정지순 기자
도서관 야외벤치 노신사(?)가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   정지순 기자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 전경,   정지순 기자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 전경.   정지순 기자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 전경에서,  정지순 기자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 전경.   정지순 기자

도서관 광장 야외벤치 노신사가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 

대구 중구 공평로 10길 25 (구 동인동 2가 42)소재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 광장 야외벤치. 도서관 분위기에 걸맞게 독서 삼매경에 빠진 듯 보이는 노신사가 홀로 앉아 있다. 넓은 야외 정원에 아름다운 봄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좋은 날, 많은 사람들이 붐빌 시간이지만 코로나19로 외출자제, 거리두기를 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인다.

독서에 여념이 없는 노신사의 모습에도 한참 동안 움직임이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화강암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벤치 의자 한 켠에 남는 공간이 좀 허전해 보인다. 여기서도 거리두기를 하는가?

가지고 있던 꽃 화분을 하나 곁에 놓아 보니 분위기가 훨씬 나아 보인다. 독서를 하고 있는 노신사 기분도 나아졌을까?

화강암 설치물 벤치의자 한 켠에 허전한 것 같아 꽃화분을 하나 놓아 본다.   정지순 기자
화강암 설치물 벤치의자 한 켠이 허전한 것 같아 꽃화분을 하나 놓아 본다.    정지순 기자
독서를 하는 설치물 여러방면으로 촬영 해 본다.  정지순 기자
여러 방향에서 본 도서관 앞 조형물.   정지순 기자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은 1919년에 개관했으니 100년도 넘은 역사가 깊은 도서관이다. 지하 1층에 구내식당과 휴게실이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현재는 전체가 임시 휴관 중이다.

열람실은 4층에 있고 4층의 양 끝에는 열람식과 별개로 '소담'이라는 이름의 북카페 2실이 있다. 4층에는 남녀공용 열람실이 2개 있고 나머지 열람실 2개는 성인 여자, 남자로 나뉘어 있다.

공식적인 휴관일은 매월 1, 3번째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이다. 열람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기타시설은 오전 9~오후 7시(휴일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건물 연면적은 1만148㎡이며, 좌석 수는 1천911 석이다. 

4층 – 제1열람실(공용), 제2열람실(여자전용), 제3열람실(남자전용), 제3강좌 실, 제4강좌 실, 제5강좌 실, 제6강좌 실, 도서관정책과, 토론 실, 북 카페1, 북 카페2,

3층 – 디지털자료실, 인문자료실, 정기간행물, 서고1, 정기간행물, 서고2, 제2강좌실, 노인독서 대,

2층 – 종합자료실, 낙육재(고문헌실), 정기간행물실, 제1서고, 제4서고, 창의 실, 복사 실,

1층 – 평생교육실, 어린이열람실, 북 스타트 룸, 영유아실, 국제정보센터, 장애인열람실, 전시실, 안내실,

지하 – 시청각실, 구내식당, 제2서고, 제3서고, 신문서고, 이다.

 

2019년 12월 30일 발표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독서 인구는 2011년 61.8%에서 2019년 50.6%까지 매 조사 시마다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 통계청 그래프 참조 )

독서 통개청 자료 그래프  정지순 기자
독서인구 통계청 자료 그래프 

우리나라 국민은 여전히 책을 멀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갤럽이 지난해 9월 전국 만18세 이상의 남녀 1천6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서 실태와 의식에 관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전 국민의 55%가 한 달 동안 신문, 잡지를 제외하고는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있으며 여자에 비해 남자가, 연령이 높을수록 책을 덜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 있으니 시간이 있다면 국채보상운동기념관도 한 번 들러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기도 현재는 임시휴관 중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과 국채보상기념관 모두 휴관 중이다.  정지순 기자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과 국채보상기념관 모두 휴관 중이다.   정지순 기자
중앙도서관 바로 뒷편에 있는 국채보상기념관 뒤편 전경 이다.  정지순 기자
중앙도서관 바로 뒤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뒤편 전경.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기념관 전경,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등재 안내 조형물,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안내 조형물.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이란,

1907년(융희 1) 2월 대구에서 발단된 주권수호운동(主權守護運動). 서상돈 제안 김광제 등의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천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시작했다.

1904년의 고문정치(顧問政治) 이래 일제는 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借款)을 도입하게 하였고, 통감부는 이 차관을 한국민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경찰기구의 확장 등 일제침략을 위한 일본인 거류민을 위한 시설에 충당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1905년 6월에 구채상환(舊債償還) 및 세계보충비(歲計補充費)로 도쿄(東京)에서 200만 원의 공채(公債)를 모집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1907년 한국정부가 짊어진 외채는 총 1천300만 원이나 되었다. 당시 정부의 세입 액에 비해 세출 부족액은 77만여 원이나 되는 적자예산으로서, 거액의 외채상환은 불가능한 처지였다.

이에 전국민이 주권수호운동으로 전개한 것이 국채를 상환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져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국운동으로 승화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내에 있는 김광제, 서상돈,  흉상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내에 있는 김광제(왼쪽), 서상돈 흉상.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있는 달구벌 대종, 매년 12월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 재야의 종이 울린다. 타종을 통해 화합과 번영을 바라는 뜻이 있다.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있는 달구벌 대종.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 재야의 종이 울린다. 타종을 통해 화합과 번영을 바라는 뜻이 있다.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전경,   정지순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전경,    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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