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빈의 ‘삶은 찰옥수수 먹는 저녁’
장하빈의 ‘삶은 찰옥수수 먹는 저녁’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5.20 07:15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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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삶은 찰옥수수 먹는 저녁’

 

부부 싸움한 날은 찰옥수수 사러 불로시장 간다

길바닥 난전에 쌓여 있는, 굵고 단단한 놈들 골라

한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수염 거꾸로 잡아채고 한 겹 두 겹 속곳 벗긴다

볼썽사나운 알몸들 펄펄 끓는 냄비에 한식경 삶아

밥상보 씌워 식탁 한쪽에 밀쳐놓았다가

시무룩하게 들어오는 남편 저녁상에 올린다

-삶은 찰옥수수예요!

-삶∙∙∙은∙∙∙찰옥수수∙∙∙라고?

찰옥수수 하나씩 통째로 집어 든 채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서로 지그시 바라보면

웃니 빠진 갈가지 모습 떠올라 절로 웃음 짓거니와

-찰지고 쫀득쫀득한 이 맛이 바로 삶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 앙금이 원앙금으로 바뀌고

그런 날 저녁은 요요한 달빛 깔린 자리 나란히 누워

찰옥수수 잎 수런대는 소리 밤도와 듣는다

 

시집 “총총난필 복사꽃” 시와시학. 2019. 4. 30.

 

이 시를 읽노라니 옛 생각이 소환된다. 입덧이 유별나게 심했었다. 맹물 한 방울을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삼키는 순간 마중물이 돼서 창자에 깃든 것까지 모조리 토해냈다. 두 아이가 다 그랬는데 그 뒤치다꺼리를 신랑이 했다. 신기하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꾀병처럼 증상이 사라졌다. 전에 없던 입맛까지 생겨 체중이 10kg 느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남편 초임지인 봉화에서 딸애를 가졌을 때다. 난감하게 한겨울에 옥수수가 먹고 싶었다. 그이가 옆집 할머니 댁에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처마에 걸린 씨옥수수를 몽땅 걷어주시더란다. 바싹 마른 것을 연탄불에 푹 삶아주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지금도 여름만 되면 경북 끝자락, 봉화군 현동 계곡으로 휴가를 간다. 추억이 서린 그 시절의 장면들이 그립기 때문일 게다.

21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인 ‘부부의 날’이다. 안 싸우고 사는 가정이 있겠는가만 그래도 시인은 왠지 고상하고 품위가 남다르리란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소심한 복수 아니면 애먼 화풀이라고 할까? ‘수염 거꾸로 잡아채고 한 겹 두 겹 속곳 벗기’는 행위자는 시인의 아내겠다. ‘볼썽사나운 알몸들 펄펄 끓는 냄비에 한식경 삶’으면서 끓는 자기 속을 달래는 정황이 그려진다. ‘삶은 찰옥수수예요!/삶∙∙∙은∙∙∙찰옥수수∙∙∙라고?’ 시인은 쑥스러운 듯이 반문어법으로 화해의 말꼬를 연다. 명사인 ‘삶’과 타동사인 ‘삶다'의 언어유희가 고단수다. ‘앙금이 원앙금’도 마찬가지인데 말을 부리는 솜씨가 시의 품격을 드높인다. '요요한 달빛' '찰옥수수 잎 수런대는 소리’ 감각적 이미지에 부부애가 아롱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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