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의 '외상 장부'
백무산의 '외상 장부'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6.17 10: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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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 김채영 기자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 김채영 기자

 

백무산의 ‘외상 장부’

 

인간이 처음 문자를 만들면서 한 일은

하늘의 음성을 받아 적은 것도

지모신에게 올리는 기도문도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시도 아니다

곡물 수확량을 조사한 세금 장부였다

 

사실, 글이 어두운 시대에 한 동네의 최초

기록은 주막집의 외상 장부 아닌가

 

힘 있는 인간들 우리가 발 뻗고 사는 꼴을 못 봐

세금 뜯어낼 온갖 지혜를 다 짜내었고

주막집 주모는 외상으로 먹은 자의

용모와 금액을 그려두어야 했다

인간에게 문자가 필요했던 것은 태어나면서 우리가

이 땅에 역사에 외상을 먹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기에 모든 책은 외상 장부 같다

내게 뭔가를 전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 갚을 거냐고 묻고 있다

사랑의 이야기도 혁명의 기록도

내게서 뭔가를 받아내려고 한다

지난 것 갚지 않으면 더는 외상을 주지 않을 것 같다

 

그 외상 장부가 말의 가락을 담아내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창작과비평사. 2020년 3월 27일

 

이 시대의 마지막 주막이라 일컫는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에 다녀왔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만났다 하여 삼강三江이라 불리는데 원래는 나루터였다고 한다. 봇짐장수, 방물장수들에게 숙식처가 되었던 곳이다. 지금도 초가지붕과 흙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막걸리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였던 고 유옥련 할머니의 독특한 ‘외상 장부’가 흥미롭다. 글자도 숫자도 모르는 할머니의 장부는 부엌 벽이었다. 한 잔 외상은 짧은 작대기, 한 주전자 외상은 세로의 긴 줄로 표시한 할머니만의 기록을 엿볼 수 있다. 6.25때 남편 잃고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시작한 주막 일을 60년 간 하셨다니 숙연함마저 들었다.

위의 작품은 "인간이 처음 문자를 만들면서 한 일"의 출처를 찾거나 외상 장부의 효시를 더듬는 것 같다. 행간 속에 삶의 애환이 묻어있다. “글이 어두운 시대에 한 동네의 최초/기록은 주막집의 외상 장부”가 맞을 수 있겠다. 까막눈인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외상 장부'를 관리했다. 돈의 흐름을 모르는 어머닌 얼마나 답답했을까. “힘 있는 인간들 우리가 발 뻗고 사는 꼴을 못 봐”서 그랬는지 귀 얇은 아버지는 노름방의 호구셨다. 애초에 장부를 아버지께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집 운명을 갈라놓는 계기였다. “모든 책은 외상 장부 같”아서 오늘만이라도 책을 멀리하고 싶다. 백무산의 ‘외상 장부’가 AI 시대에 고전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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