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온 달구벌고등학교 남효덕 교장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온 달구벌고등학교 남효덕 교장
  • 김영창 기자
  • 승인 2019.03.08 13: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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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이상, 낮은 자세를 몸소 실천하여 학생들을 가르친 스승
달구벌고등학교 전경
달구벌고등학교 전경

지난 2월 28일,  49년간 오직 교육자 길만을 걸어온 한 교장의 퇴임식이 있었다. 가정 형편상 정규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등 숱한 일화를 남기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화제의 주인공은 달구벌고등학교 남효덕(南孝悳) 교장이다. 남 교장은 전문대학을 거쳐 4년제 대학교수라는 경력을 가졌지만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가정교사와 야간 교사를 하면서 사범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장학금 등 사회적으로 받은 은혜를 갚고자 사제를 털어 ‘재단법인 덕성장학회’와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인 ‘달구벌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41년 6개월간 이어지는 대학교수를 조기은퇴하고 손수 설립한 달구벌고등학교에 7년 6개월간이나 무보수 교장을 하였다. 이제 후학들에게 학교 경영을 맡기고 은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목을 끌었다.

“저는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인도하신 길을 걸어왔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걸림돌을 만났습니다만 지나고 보니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뀌었음을 알았을 뿐입니다”라고 남 교장은 말했다.  ‘걸림돌이 디딤돌로’라는 회고록도 남김으로써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퇴임하시는 남효덕 교장
퇴임하는 남효덕 교장

⁃퇴임을 앞둔 지금의 심정은/ 작은 시련 큰 축복

▶적수공권으로 설립한 달구벌고등학교를 위해 개교 15년이 되는 지금까지 내 모든 것을 바쳐왔다. 아직도 내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이 있다는 아집 때문인지 학교 교정이 자꾸만 뒤돌아 보인다. 오늘 아침에도 나눔관, 섬김관, 새순관을 둘러보면서 이게 교장으로서는 마지막 순회구나 하는 감회에 젖었다. 내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는 교정을 구석구석 어루만져 보았다.

⁃어린 시절이 궁금한데/ 교회 성경구락부에서 수학, 고입 검정고시 합격

▶가난한 선비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졸지에 가장이 된 어머니는 어린 6남매를 거느리고 위로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9대 종부라 매달 제사를 모셔야 했다. ‘없는 집안에 제사 자주 닥친다’는 속담은 실제로 당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정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이웃 마을 교회에서 마을 청년들이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중등성경구락부를 찾았다. 교회 마루바닥에서 칠판 두 개를 걸어놓고 1학년은 북쪽으로 2학년은 남쪽으로 보며 공부를 하였다. 이것도 여의치 않아 이웃집 헛간채를 빌려 가마니를 깔고 앉은뱅이 책상에서 공부를 하였다. 마을 유지들의 도움으로 조그만 교실 3개를 지을 땐 학생들은 지게를 지고 등교하여 돌을 나르고 흙을 이겨야 했다.

⁃고등학교는 어떻게 진학하였는가/ 계성고등학교 진학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책보다 지게를 더 가까이 하면서 고등학교는 꼭 진학해야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간직하였지만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조차 없었다. 이틀간 시험을 치른 고등학교입학자격검정고시를 거쳐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계성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다행히도 후생장학생이란 이름으로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한두 시간 학교일을 도와주고 공납금 반액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3학년에 진급했지만 입시공부를 제쳐놓고 중학생을 가르칠 때도 있었다. 대학입시 원서대를 구하기 위해 이 집 저 집 다니는 어머니를 보면서 집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공부만 고집한 자신이 한없이 죄송하였다.

퇴임식 중 기도시간
퇴임식 중 기도 시간

⁃대학은 어떻게 진학 하였는가/ 국립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진학

▶어느 대학교를 진학해야 하는가의 답은 이미 정해졌다. 첫째로 학교 등록금이 싸야 했고 둘째로 재학 중 가정교사를 할 수 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졸업 후에는 바로 취업이 되어야 했다. 다행히 입학금과 수업료가 면제되는 국립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학비감면 수단으로 택한 사범대학 입학이 반백년 교단을 지키게 하였고, 물리교육과 선택이 전자공학과 교수가 되는 지름길이 되었다.

⁃대학졸업 후에는/ 삶을 변화시킨 하나님을 영접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가정교사를 계속하면서 어렵게 공부했던 대학시절의 전환점이 되는 두 가지 큰 축복을 받았다. 첫 번째 축복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고등성경학교에 강의를 맡게 된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계기가 되어 대학 3학년 새해 첫 주 제 발로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두 번째 축복은 매사 부정적이었던 사고가 차차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뀐 것이다. 대학 3학년 때부터 연간 3만5천 원의 국비장학금을 졸업할 때까지 받게 되었다. 친구들에게는 잡비에 불과하겠지만 이 돈은 나에게는 학교 등록금과 책값으로도 넉넉할 만큼 거금이었다. 처음으로 학비걱정에서 해방되고 너무나 감사해서 나도 조그만 장학회를 만들 수 없을까? 나도 조그만 배움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환상에 빠졌다.

야간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대학원을 마칠 수 있었다. 전문대학 교수를 거쳐 4년제 대학의 강단에도 설 수 있게 되었으며 해외 유학의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다. 결혼 후 7년간 자녀가 없던 우리 부부에게 귀한 선물도 주셨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내까지도 대학 교수로 섬기게 되었다.

퇴임식 중 축하의 노래 시간
퇴임식 중 축하의 노래 시간

⁃덕성장학재단은 어떻게 설립 하였는가/ 재단법인 덕성장학재단 설립(1996년)

▶교수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자 학창시절 때 간직했던 작은 꿈들이 떠올랐다. 그 꿈의 하나는 어려운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조그마한 장학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꿈을 마침내 실현시켜 주셨다.

장학회 설립에 필요한 최소 자금 1억 원을 어렵게 마련했지만 설립요건이 강화되어 2억 원이 더 요구되는 시점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조그마한 채소밭 절반이 도로에 편입되었고 그 보상비가 공교롭게도 2억2천만 원이었다

⁃달구벌고등학교도 설립하셨는데/ 학교법인 덕성학원 설립(2002년)과 달구벌고등학교 개교(2004년)

▶학교설립을 위한 부지를 마련하면서 5억 원의 추가 돈이 필요했다. 편입되고 남은 땅은 시가가 급상승하여 매도가는 정확히 5억 원이 되었다. 2천만 원에 매입한 땅이 10년 만에 원금을 제하고도 7억 원이 남았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꼭 필요한 시점에 꼭 필요한 액수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감사하기만 하였다. 2002년에 학교법인 덕성학원을 설립하였다. 2004넌에 달구벌고등학교를 개교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나 세심하셨다. 예를 들면 당초 계획했던 평광초등학교 폐교부지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위로 돌아가게 하고 이보다 더 좋은 새로운 부지를 예비해 두셨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여정을 되돌아볼 때 나 혼자 감내할 수 없을 만큼 화급을 다투는 수많은 사건들이 지나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다급하고 긴요한 일을 어느 하나라도 때를 놓지지 않고 해결해 주셨다. 때로는 험난한 길을 걷게도 하셨지만 이는 ‘걸림돌들을 디딤돌’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고백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