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열의 ‘봄꽃 하나 붙들려 했는데’
하재열의 ‘봄꽃 하나 붙들려 했는데’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4.29 08:52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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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의 ‘봄꽃 하나 붙들려 했는데’

 

실개천 둑길은 아예 노란 물감을 짜내어 문질러놓은 풍경이다. 위쪽 계곡물을 받아 가두며 둑은 촌로의 등처럼 휘어져 들녘을 감싸 돈다. 고목들의 뒤얽힌 가지들이 바람을 막고 섰다. 버짐 같은 껍질을 덕지덕지 세워 달고도 수줍은 양 여린 솜틀 꽃을 달았다. 바람에 실린 새소리가 정겹다.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훌쩍 나섰다. 의성 산수유마을 꽃소식에 끌려서다. 벼르기만 하고 몇 해나 미루기만 한 터였다. 겨울 끝머리의 찬바람에도 남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라 애틋한 정이 쌓였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여린 노란색에 빠져든다. 개나리가 요염한 처녀 같은 꽃이라면 산수유는 수더분한 아주머니 같은 꽃이다. 멀리서 바라보아야 묵은 얼굴이 보이는 꽃이다.

산수유 그림 한 점 마무리에 요즘 헤맨다. 그리다 만 채다. 이전에도 봄을 붙잡아두려 몇 점 그려보았으나 돌아서면 영 아니었다. 글쓰기만큼이나 그림 소재 찾기도 어렵다. 어쩌다 그림 괜찮다는 입술 평에 홀려 무턱대고 그렸다. 아둔했으니 대들었고 아직 턱없다는 말귀인 줄 못 알아들었다. 거기에다 갖고 싶은 눈치를 보내는 몇 지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갈수록 붓질은 무뎠다. 뭔가 담아내지 못한다는 허함과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둑길에 봄 햇살이 뽀얗게 춤춘다. 이런 군락지의 산수유가 그리웠다. 집 가까이서 만나는 한두 그루만으로는 화폭에 차지 않았다. 몇 곳 군락지의 사진 풍광에 들떠 흉내를 내기는 했다. 둑이 휘어 돈다. 문득 낯익은 고목들의 풍치에 걸음을 멈춘다. 사진으로 만난 곳이다. 수령 이백 년도 넘는다는 나잇살의 위세가 당당하다. 늙은 뿌리가 제방을 움켜잡듯 엉켰고, 굵은 줄기는 휘감기고 비틀어지며 하늘로 뻗는다. 내 그림과 견주며 한참을 살핀다. 노회한 군락의 꽃무리는 나와 다른 이야기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알아챌 수 없는 속살거림이 바람을 탄다.

용케도 산수유축제 개막 전날에 발길을 맞추었다. 만개의 꽃이 계곡을 메웠다. 봄바람의 부산함이 화전리 마을 초입에 가득하고, 성급한 나들이객으로 둑길은 색색으로 싱그럽다. 소쿠리 같은 산협에 갇힌 좁은 들녘이다. 기슭 안쪽에 작은 마을이 들어섰고 꽃길 제방 주변엔 온통 마늘밭이다. 봄 햇살 속 연초록의 마늘잎이 노란 산수유와 정분 낸 듯 하늘댄다. 천지가 빚어낸 색의 조화가 자지러진다.

십 리 남짓 거슬러 올랐다. 산기슭 전망대에 올라선 풍경은 가히 노란색의 파노라마다. 걸어온 제방 둑에도, 밭둑 비탈에도, 산허리에도 온통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숲실마을이라고 불리는 이름 그대로 꽃동네다. 촌로에게 물었다. 좁은 계곡의 잦은 홍수로 먹고사는 일이 막연한 마을이었다. 약제도 얻고 방천이 유실되지 않도록 심은 나무였다고 한다. 고목이 된 지금, 이제는 마을의 살림 밑천이 되었다며 으쓱댄다. 전국 산수유 열매의 삼 할이 이곳에서 나오고 유명 관광지가 되었으니 이만한 데가 어디 있느냐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긴 렌즈의 사진기를 멘 사람들이 숲을 쏘다닌다. 풍경을 훔치는 이들이다. 옆에 붙어 명당인가 싶어 같은 곳을 따라 찍는다. 그림 소재 감하나 기대하지만, 어찌 이 태깔과 질감을 잡아낼 수 있을까 보랴. 턱없는 일인데도 짐승처럼 미련을 둔다.

산골 위쪽, 낡은 저수지 하나 계곡물을 가두었다. 화곡지라 했다. 건너편 둔덕의 산수유 숲이 물속에 거꾸로 선 채 노란 물빛으로 일렁인다. 반짝이는 윤슬이 고기떼가 튀는 것 같다. 축제를 앞둔 마을부녀회의 먹거리 마당에서 막걸리 한잔을 받았다. 짜릿하게 속을 훑었다. 천막 차양엔 봄볕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옆자리 젊은 두 아낙이 조심스럽게 건네준 잔을 또 거푸 마셨다. 내 점심으로 받은 모두부 양이 많아 건네준 데에 대한 답이었다. 그 여운이 아직 저릿하다. 함께 걸어 올라왔다. 두런두런 붙임성 있는 두 여자의 세상 사는 말도 봄바람처럼 일렁였다. 천지를 물들인 노란 꽃구름에 싸인 두 잎 꽃녀가 슬쩍 내 춘심을 건드린다. 그리지도 잡지도 못할 봄은 산촌에 그렇게 내려앉아 있었다.

두 달째 이젤에 얹어놓은 채인 그림을 어찌할까 싶다. 깜도 못 되는 걸 좋아하리라 여겨 떠나보낸 것은 세상모르고 던진 내 허물이었다. 갈수록 어렵다는 걸 알아챈다. 그림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일까 여겼는데 멀리서 아롱거리기만 한다. 취미일 뿐이라고 내세우면 그만인 것을 자꾸 용을 쓴다. 제풀에 꺾여 아픈 허리 핑계를 대며 몇 달째 붓이 게을러졌다. 어릴 때 품었던 그림의 꿈은 작은 글쟁이 되는 일로 해몽을 하고 깨어나야 하려나 보다.

숲실마을 산수유나무엔 골짜기를 훑어간 바람이 쌓였다. 밭고랑에 엎드려 입을 부지한 이들의 숨소리와 땀이 뱄다. 숲을 흔들던 청명한 새소리, 천둥과 소낙비 소리, 열매를 털어내는 가을걷이 소리가 창연한 이끼처럼 켜켜이 붙었다. 다시 봄이다. 채 떨치지 못한 지난해의 붉은 열매를 매달고도 노란 새 꽃을 피워낸 가지 하나를 쳐다본다. 생과 멸이 하나인 이 조화를 어찌 그릴 수 있겠는가. 햇살이 꽃숭어리에 억겁의 하늘시간을 실어 나른다. 원래 바라볼 뿐인 일을 가지려 했나 보다.

 

수필집 "밥그릇 춤" 수필과비평사. 2018. 12. 27.

 

작가가 그림 소재를 찾아 나섰던 날의 일화다. 회화엔 문외한이지만 정경을 담아와 화폭으로 옮긴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의성 산수유마을, 올해는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축제가 취소되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핀 꽃들마저 피해자인 셈이다. ‘봄꽃 하나 붙들려 했는데’, 이 작품은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섬세한 이미지가 글맛을 더한다. 담담한 필체, 감정과잉 없이 카메라 앵글 따라 흘러가는 필치가 부드럽고 담백하다.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읽힌다. 그림이든 글이든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음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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