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석달] 이 많은 막걸리를 어찌 할꼬?-김외남 기자
[코로나19 석달] 이 많은 막걸리를 어찌 할꼬?-김외남 기자
  • 김외남 기자
  • 승인 2020.04.10 17: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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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대구 수성구청 근처에 직장인들 지친 몸들을 막걸리 한 잔 나누면서 쉬어갈 수 있는 전국막걸리 주점, 고상하게 말하면 쉬어가는 공간 Lounge(라운지)를 열었다. 그러니 옛날식으로 치면 자녀들 혼삿길도 막힐 나는 주모다. 안주와 막걸리 목록 판을 조르르 갖다 보이고 주문을 받아 즉석에서 지지고 굽고 튀기어 한 쟁반 가득 안주를 푸짐하게 내어 놓으면 먹음직스럽다. 

아들이 여태까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차리고 싶어했다. 아들은 성격이 얼랑뚱당해서 자리에 앉아 사무 보는일보다 발로 뛰는 영업직을 선호하는 성격이다. 손자 손녀 3명이 날로 날로 자라서 올해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니 직장생활로는 늘 빠듯하기 마련이다. 올망졸망하던 놈들이 언제 이렇게 커버렸다. 고민 중에 시작한 것이 전국 막걸리라운지다. 전국 막걸리 공장을 다 다녀보고 몇 날을 고민하다가 적당하다 싶은 자리를 찾았고, 가게 이름도 거창하게 지었다. 전국막걸리 라운지 '안중'이다. 영어로 'Lounge', 쉽게 말하면 막걸리를 마시는 쉼터라는 것이다.  안중이라는 말은 '안주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세무서에 영업신고를 하고 점 잘 보는 철학관을 찾았다. 이것 저것 책자를 펴서 찾아보더니 엄마인 내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라고 했다. 나는 O형인 데다가 퍼주기를 잘 하고 남과 잘 어울리는 성격으로 사업이 잘 된다는 것이다. 등 떠밀려서 사업자 등록을 해서 보건위생 교육도 받아야 했다. 애들은 요리학원에 다니며 자격증도 땄다. 

하수도로 흘려보내고 일부는 더 삭혀서 마당의 나무에 거름으로 준다.

30평 넘는 점포를 월 150만 원 임대료에 얻었다. 주방 이모도 두어 명 두고 바쁜 요일 4일간은 알바도 썼다. 아들은 대구 시내 탁구 동호회원이고 대구시 탁구클럽경기에서 일등을 한 바도 있다. 개업도 하기 전에 동호회원들 탁구대회 하는 날 50명 예약을 받았다. 작은며느리도 거들고 해서 무사히 치렀다. 수성경찰서 옆골목을 지나면  있는 곳이라 장소가 장소인만큼 4시에 장보고 청소하고 문 열어 준비한다.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데 오후 6~7시면 소위 사(師)자가 붙은 분들이 시달린 일과를 풀기 위해 한 차례 들른다. 학원 골목이다 보니 10시쯤이면  학원 파하고 들르는 학원長들이 또 한 차례 자리를 메꾸어 매상이 꽤나 올랐다. 막걸리 하면 우리 대구의 불로 막걸리만 아는데 각 지방마다 특산 막걸리가 참도 많다. 공주의 알밤 막걸리, 한산의 모시막걸리. 부산, 강원도, 경기도, 김해, 충청도 등등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다. 나도 막걸리를 좋아해서 가끔은 한 잔씩 하는 편이다. 가게 안 냉장고에는 항상 각양각색 막걸리병으로 가득 채워 놓는다.

그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파하고 조르르 집에 오면 안방 구들목에 이불로 감싼 술단지가 묻혀 있었다. 뚜껑을 열고 코로 한 번씩 냄새를 맡으면 야릇한 냄새가 좋았다. 뽀로록거리며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옛날 빨대 (삼 속대궁)를 넣고 빨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실컷 먹고 나서는 마당가에 취해서 쓰러져 잤는데, 밭일 갔던 엄마가 안아다가 방 안에 뉘어 주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2월 초부터였다. 자리가 없어 손님을 돌려보내야만 하던 가게가 어느날부터인가 코로나 발병 이후로 하루 두 세 테이블로 마감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손님 한 분 없이 허탕을 치고 일찍 문 닫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행여나 설마 하고 가게 문을 아니 열 수도 없어  계속 문은 연다. 준비해둔 안줏감을 집에 가져와서 먹어치우느라 애도 먹는다.

전국 각고장의 막걸리 이름도 각양각색

난데없이 나타난 코로나19라는 괴물과 싸우는 중이다. 이번 달에는 임대료며 인건비 재료비를 카드로 긁어서 주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중소기업청에 자영업자 1.5% 대출을 신청 중이다. 거기도 밀려서 한 달 반이나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단다. 알바 내보내고 주방 이모들도 내보냈다.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병들을 80병, 60병, 40병씩 집에 싣고 왔다. 버리기도 아끼워 큰 항아리에 담아서 더 오래 숙성시켜 볼 셈이다. 윗물은 진딧물과 날파리 작은 개미 등 퇴치를 위해 분무기에 넣고 농약인 냥 살포해 볼 작정이다. 밑에 뻑뻑한 것은 방앗간에서 구한 깻묵 띄운 것이랑 물을 희석하여 나무 밑둥에 거름으로 주려고 많이 모아두었다.

 

이 봄날 속 터지는 마음을 봄볕에 화초들 해바라기시키며 진정시키고 달래며 내게 최면을 건다. 어려울 때일수록 참고 견디자. 지루하고 따분하던 매일의 일상들이 행복이고 좋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머잖아 좋은 일이 반드시 올 것이란 믿음,  코로나가 물러갈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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