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석달] 할머니와 손자 '코로나 동행기'-박영자 기자
[코로나19 석달] 할머니와 손자 '코로나 동행기'-박영자 기자
  • 박영자 기자
  • 승인 2020.04.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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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2일 교육이 끝나면 시험을 치른 후 치매예방전문가 자격증 2개를 따게 된다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시험 대비를 위해 공부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모든 생활에서 줄줄이 펑크가 났다. 2월 16일 산악회 취소, 19일 사협 서울총회 취소, 22일 시험 취소 등등.
대구에 31번째 확진자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멈췄다. 불안하기 시작했다. 
20일 서문시장은 점포 반 이상의 문이 닫혀 있었다. 사진 몇 장 찍고 코로나19 기사를 썼다. 이튿날 궁금해서 또 갔다. 서문시장은 죽어 있었다. 갑자기 시민들은 사재기를 시작했다. 생업이 이 지경이니 앞으로 굶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수님 물, 쌀, 라면, 1회용 가스렌지, 초까지도 준비하라"면서 시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불안했다. 동네 마트에 가니 라면은 동이 났다. 이름 모를 라면 몇 봉지와 국수를 넉넉히 사고, 쌀10kg, 손자 과자, 과일 등을 사니 16만원이 되었다.
배달시켜 놓고 보니 당장은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지만 조금 안심은 되었다. 그 물건들은 나의 방해자였다. 그것이 또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서울에서 동생들이 생필품이랑 라면도 박스 채로, 사골곰탕 등을 보냈다. 택배기사는 언제 왔다 갔는지 소리없이 왔다 간다. 이게 사람 사는건가?
사람을 보는 둥 마는 둥 슬슬 피하고 옆집도 서로 의심을 하고 산다는게 무척 힘들었다.
집에 꼭 들어 앉아 있으라고 멀리서 하루에 수 없이 안부전화가 오고 간다. "난 괜찮은데 넌 어때"라는 소식들이다.
울산 딸이 결제했다며 햄버거, 통닭 등이 집 앞까지 배달된다. 참 좋은 세상이다. 몇 년 전부터 연락 없던 지인들이 안부 전화를 하니 이산가족도 찾겠다.

코로나 덕분에 한 보름 집에 있으니 충분히 빈둥거리며 놀 수도 있고 좋았다.
손자는 겁 먹고 문도 한번 안 열어 보고 게임 삼매경이다. 울화통이 터져도 참자, 참아야지~~.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등짝이 아프다. 운동 부족에 맘이 우울했기 때문이다. 
감사함을 모르고 무심히 보낸 일상들이 그립고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손자 학교 보낸 후 복지관 가서 공부하고, 운동하고, 친구들과 2천원짜리 점심을 먹으며 마주 보고 재잘대고 웃는 것이 나의 일상인데, 리듬이 깨졌다.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시내서 차 한 잔 마시던 일상이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줄 이제사 깨닫게 되었다.
마스크 안 쓰고 립스틱 바르고 내가 멋을 부리던 때가 정말 좋았다.
두 달 동안 그냥 민낯으로 살다보니 세월의 흔적인 검버섯과 주름도 이제 당당하게 세상 구경 시켜주게 된 것이 코로나로 인해 비운 나의 첫번째 작품이다. 화장으로 가리고 변장을 하고 다닌 것이다.

집에 갇혀 있었지만 나의 생활은 그런대로 이어진것 같다. 겁도 나고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봉사는 못했다. 중구노인복지관은 중구보건소와 한 건물이다. 많은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긴장되고 위험한 가운데 밤잠을 설쳐 가며 봉사하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 영상제작반에 공지사항을 올렸다. 비록 몸은 집에 있지만 맘을 모아 성의를 전달함이 어떠냐고 했다. 그랬더니 십시일반으로 33명의 회원이 80만원이란 성금을 모아서 복지관에 전달했다.
마음잇기 하는 독거 어르신이 있지만 가지를 못하니 우리 아파트 노인을 돕기로 하고 국 끓이면 한 그릇, 된장, 나물, 빵, 떡 등을 나눴다. 우리 집엔 손자와 나 두 식구지만 3인분을 해서 나누어 먹으며 매일매일 얼굴을 보고 안부도 전했다. 혼자 사는데 나와 동갑이라 친하게 지낸다. 문만 삐죽이 열어 1회용 그릇에 담아 주고 재빨리 온다.
음식 가져가면 '적당히 한 끼 때우려고 했는데' 하면서 무척 고마워한다.

사춘기 접어든 손자 녀석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코로나 덕분에 많이 친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어서 나는 무엇보다 고마워하고 있다.
안방에선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침대에 배 깔고 차고 앉아 보내고, 거실은 유튜브 본다고 뺏아버리니, 나는 뉴스도 볼 수 없다. 매번 싸울 수도 없다. 나는 갈 곳이 없다. 

고민고민 하다가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음식을 같이 만들자. 좋아하는 라면 끓이는 법도 가르치고, 동영상 배우기를 좋아하니 그것도 함께 해보자.
그래, 나는 요리를 하고 손자는 동영상을 찍으면 될거야... 성공이다. 손자는 유튜브 게이머가 되겠다고 열심히 한다. 벌써 몇 개나 만들어 올린다. 서로 부딪힐 일이 없다. 할머니 이건 어떻게 해요? 라며 나에게 물을 수밖에 없으니, 이제 할머니를 인정하는것 같다. 죽어라 내 말은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고 날 무시하더니... 
바둑판도 창고에서 꺼내 반질반질하게 닦아서 하루 한두 번씩은 오목을 둔다. 내가 지면 국수 삶아주고, 손자가 지면 나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내기 바둑이다.
아토피 때문에 라면을 안 먹였는데 한 두번 먹여보니 별 이상이 없어 한 번씩 줬더니 요즘엔 라면 맛을 알아서 자꾸 먹으려 한다. 해로운줄 알지만 11살까지 어린 것이 참느라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애처로운 맘에 먹인다. 며느리 몰래 먹인다 '들키면 내가 책임진다 먹어라 먹어' 나는 할미니까~?
사회적 거리두기라도 영 안 나갈수는 없다.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나가서 이틀에 한 번씩은 4시간 정도 걷는다. 내가 좋아하는 골목들을 누비고 다닌다. 사진을 찍으러 하루는 밖으로, 다음날은 집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정리하고 편집해서 동영상과 기사를 만들어 시니어매일에 제출한다. 내가 살았던 골목, 알고 있는 골목들을 기억이 남아 있는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인터넷을 찾아가며 옛 기억을 더듬어 보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새벽 3시에 일어나 미뤄둔 글을 쓴다.
코로나 덕분에 일기처럼 써놓은 글이 어찌하다 보니 통신사에 알려져 방송도 타고 촬영도 하는 영광도 얻었다. 냉장고 파먹기 하다가 쓴 글이다. "비우니 채워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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