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석달] 조선 500년 역사 속의 전염병과 교훈
[코로나19 석달] 조선 500년 역사 속의 전염병과 교훈
  • 김동남 기자
  • 승인 2020.04.10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무렵 경기도 인천지역 콜레라 방역지 모습. 칼을 찬 위생경찰과 자위단원이 콜레라 유행지역 마을 입구에서 공동으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매일신문 제공
일제강점기인 1919년 무렵 경기도 인천지역 콜레라 방역지 모습. 칼을 찬 위생경찰과 자위단원이 콜레라 유행지역 마을 입구에서 공동으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매일신문 제공

 

인간의 유전자까지 선별하는 첨단의 시대에도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통신과 교통, 의료 시스템이 오늘날과 비해 턱없이 열악했던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노라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어느 왕이 통치하든 시대를 막론하고 전염병이 예외 없이 등장하여 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기까지 한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왕이나 자신을 희생하며 민초들을 구하는 주인공들의 활약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탄식하게 만든다.

그만큼 역사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정도였으니 전염병의 존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급,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어떤 전염병이 발병하였고, 전염병이 창궐하면 왕과 관리들은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백성들은 또한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당시의 사항을 소상하게 기록한 기록물들이 많아 후손들이 이 기록물을 토대로 역사적인 사실들을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과거 우리 선조들에게 주기적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발병하고 발생한 재난이라고 하면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굶주림, 전염병 등을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굶주림은 그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고 나름대로 대비도 할 수 있었겠으나 전염병만은 그럴 수 없었기에 수많은 인명손실과 고통이 수반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염병과 관련한 기록이 무려 1천 건이 넘는다. 1392년부터 1917년 근대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 동안 전염병이 발병한 기간을 합하면 320년에 달하고, 연평균 2.73회 발생했다는 어느 학자의 연구도 있다.

이처럼 조선의 역사는 전염병과 함께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개국 후 1396년 (태조 5) 3월에 처음으로 전염병이 발생하였는데 당시의 기록을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도성을 쌓기 위하여 소집한 인부들에게 전염병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1432년 세종14년에도 대규모의 전염병이 발병하였다. 초유의 재난에 맞선 세종은 워낙 지혜롭고 명철한 성군이었기에 당시 추진되던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전염병 대책에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파악하였다고 전해진다. 세종은 병에 걸린 백성들을 분산수용하고 질병을 얻은 자는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오늘날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최고의 예방법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미 500년 전에 실천한 세종의 혜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염병이 들불같이 번져 나가도 제대로 된 치료는 물론 병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의원마다 다르게 처방하여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는 위생 상태나 영양상태가 최악이었을 것이며, 대가족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농경문화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하면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왕 중 가장 오랜 기간을 통치한 영조 26년에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백성의 수가 22만3천578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염병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남을 간파한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홍역이나 콜레라,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등으로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간단하게나마 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처방법을 반포하였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큰 의미는 주지 못하였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측하였다.

‘전염병은 콧구멍으로 그 병 기운을 들이마셨기 때문에 생긴다. 전염병을 피하려면 마땅히 그 병 기운을 들이마시지 않도록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 환자를 문병할 때는 바람을 등지고 서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생활하면서 쓴 목민심서의 한 대목이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에 어떻게 맞서 싸우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무려 200여 년 전 일인데 선생은 미래의 사태를 미리 예견한 듯 하여 놀랍기만 하다. 세종 임금이나 정약용 선생의 병에 대한 대처방법을 보면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는 선천적으로 전염병과 싸울 수 있는 지혜와 강건함이 내재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그뿐이랴. 5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전염병과 싸워온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생긴 항체는 다름 아닌 서로 돕고 베푸는 아름다운 민족성이었다. 선진국이라고 추앙받던 어느 나라들처럼 혼자만 살겠다고 사재기하거나 약탈하는 추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는 아름다운 마음들이다. 그것이 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고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는 영원불변의 항체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