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60주년] 시작점은 대구 2.28민주운동이었다
[4.19 60주년] 시작점은 대구 2.28민주운동이었다
  • 우순자(파란꿈) 기자
  • 승인 2020.04.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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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 광장에 집결한 경북고 학생들. 2.28민주기념사업회 제공
‘학원의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청으로 향하고 있는 학생들. 2.28민주기념사업회 제공

 

2020년은 4·19혁명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는 또한 2·28민주운동 6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대구 학생들의 2·28민주운동에서 댕겨진 횃불이 3·15의거를 거쳐 4·19혁명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의를 숭상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대구정신이 담긴 이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권의 정치적 음모가 깔린 일요일 강제 등교였고, 이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이 ‘학원을 정치의 도구로 삼지 마라’를 외치며 교문을 뛰쳐나온 것이 발단이다. 4·19혁명의 시작점이 된 2·28대구학생민주운동을 되짚어본다.

장면 후보 수성천변 유세 모습.  2.28민주기념사업회 제공

1945년 해방으로부터 1960년 4·19 혁명까지 어떻게 해서 2·28민주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먼저 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1948년 제헌 헌법이 만들어졌다. 헌법의 핵심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였으며 이때 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 대통령의 임기는 4년 중임제였다. 48년 총선에서 이승만을 지지하던 국회의원이 대거 당선되나 50년에는 대거 낙선한다. 지지하는 세력들의 낙선으로 간선제로는 이승만정권이 당선될 수 없었기에 직선제를 위한 개헌을 단행한다. 이것이 발췌 개헌이라고 하는 1차 개헌이다. 개헌으로 대통령에 재선하지만 장기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철폐하자는 2차 개헌을 단행하게 된다. 1표 차이로 부결되나 막판에 가결 처리하여 중임제가 철폐된다.

2.28민주운동기념관내에 있는 조형물은 대구의 8개 고등학생 상징한다. 우남희 기자
자유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횃불. 2.28민주운동기념관 내. 우남희 기자

1956년 대선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게 되어 대통령에는 이승만, 부통령에는 민주당 장면이 당선된다. 5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농촌에서 민주당은 도시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이 나타난다.

1960년 2월 28일, 그날은 일요일로 3월 15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장면 후보의 선거유세가 대구 수성천변, 오늘날의 신천 변에서 하기로 예정되었다. 선거유세장에 모인 인원이 그 후보의 지지도를 나타내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승만 정부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당시 경북고 2학년이었던 홍종흠(78)씨는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 주최가 되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요 등교를 강요했기 때문이죠. 일요 등교 방침이 알려진 직후부터 각 학교별 긴급회의를 거쳐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등교 철회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오를 기점으로 반월당에 집결하기로 했습니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휴대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인구가 밀집했던 중앙통의 매일신문사를 거쳐 도청(현.경상감영공원)으로 가서 선언문을 낭독 했습니다”고 했다.

명덕로터리에서 두류공원으로 옮긴 2.28기념탑. 우남희 기자
대구상고(현 상원고) 교정에 있는 2.28민주학생기념탑. 우남희 기자

시위대는 경북도청에서 해산한 것이 아니라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당사, 경북도지사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불의를 규탄하고 시민들은 경찰에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숨겨주고 시위대에 박수치며 동조를 했다. 이때 참여한 학교로는 경북고를 비롯해 대구고, 사대부고, 대구여고, 경북여고, 대구농고, 대구상고, 대구공고 등 8개의 학교다. 시위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3.1절 기념행사에서 암암리에 사발통문을 돌리고 3월 8일 대전의 시위를 통해 전국으로 번진다. 4월 18일 고려대 시위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면서 시민들이 대거 봉기하여 급기야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한다.

대구 반월당에 있는 2.28민주운동 집결지 표지.   우남희 기자

홍씨는 “민주주의가 발전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정치적 민주주의는 발전이냐 후퇴냐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반성해야 한다. 또 2·28민주운동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도화선이 아니라 시작점, 또는 시발점이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횃불을 든 2·28민주운동은 2018년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었다. 4월 15일은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다. 60년 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민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 일꾼을 뽑는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